결혼반지 로스트크 나이트 라이즈
* 2018.8.9.(목)-8.10.(금)에 직접 겪은 경험을
에세이화 한 실화임을 알립니다
(순도 98.185%, 극소량 MSG 첨가).
** 8.10.(금) 오전에 작성한 원고입니다.
*** '결혼반지를 잃어버렸다.' 1, 2화 를 먼저 읽어 주시길 바랄게요!!! : )
https://brunch.co.kr/@rhanfkaus/40
https://brunch.co.kr/@rhanfkaus/41
*** 3부작 대단원의 마지막 편입니다.
나는 지금 복잡미묘안도빡침해괴행복기괴한 감정에 휩싸여 있다.
아, 가방은 찾았다(결혼반지도. 오 주여.).
비루하게 이 글을 쓴다. 출근한 아내가 놓고 간, 허락되지 않은 노트북으로 (기록해야겠다는 인간 본능에 굴복하여) 글을 쓴다. 손에는 캔 비루가 들려있다. 지금은 오전 10시 30분이다.
8월 8일 가방과 결혼반지 분실, 8월 9일 예정된 서울 여행 일정 소화 및 부산 도착, 귀가 후 아내에게 반지 분실 정직한 보고, 8월 10일 오전, 유실물 소재 파악 완료.
늘 그랬듯이, 오늘도 힘겹게 돈을 벌어올 사랑스러운 아내의 아침 식사를 정성스럽게 차리고, 함께 오순도순 식사하고, 그녀를 출근시키고, 설거지를 마쳤다. 그러자, 지난밤 지하철수사대 담당 형사가 했던 당부가 떠올랐다. 다시 분당선 수원역 유실물 센터에 연락을 취해보라는. 최대한 감정을 배제한 채, 그 후 여정을 복기해 보았다.
1. 분당선 수원역 유실물 센터에 연락
(2018.08.10.(금) 09:31)
2. 본 유실물 센터에서는 노트북이 든
남색 가방은 보관하지 않고 있으며,
코레일에서 운영하는 렛츠코레일 사이트에서
확인해보라는 친절한 안내를 받음
3. 렛츠코레일 사이트 유실물 찾기에서 ‘가방’ 검색
4. 내 가방으로 추정되는 물품 발견
(물품명 : 가방 / 상세 내용 : 노트북, 책 등/
보관장소 : 수원역/ 등록일 : 2018.08.08.)
5. 코레일 대표번호로 바로 전화
6. ARS 먹통. 그 후 건너 건너,
어찌저찌 서비스 센터 유선 접선 성공
7. 목록에는 올라와 있는데, 어디서 올린 건지 파악
불가능하다는 상담원의 친절한 답변.
수원 기차역으로 연락해보라는 또 친절한 조언.
8. 수원 기차역 유실물 센터에 연락
9. 본 유실물 센터에서는 보관하지 않고 있으며,
분당선 수원역 유실물 센터에 연락해보라는
친절한 조언(딥빡)
10. (초인적인 의지로) 다시 분당선 수원역
유실물 센터에 연락
11. 재확인 결과 해당 물품을 보관 중이며,
안에 있는 물건이 정확히 나의 것으로
확인되었고, 결혼반지도 있음(ㅜㅠ)
12. 지하철수사대 담당 형사에게 전화해
사건 종료 요청(10:10)
13. 수원역 유실물 센터에서는 해당 물품을
7일 이내에 안 가져가면 경찰서로
이관한다는 친절한 안내 메시지^^
어제 아침, 하나의 단서라도 더 찾고자 교보문고 강남점으로 향했던 그 길을 다시 그대로 갔다. 친구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걸리는 시간, 지하철 시간표를 확인하며 정확한 탑승시간, 탑승했던 기차 칸, 가방을 놓았던 노약자석 선반, 선정릉 역까지 가는 시간, 환승 소요 시간, 신논현역에서의 동선 동영상 촬영, 교보문고까지 가는 길 수색까지(해당 위치마다 사진을 찍었다. 그 순간만큼은 진정 명탐정 코난이 되어 엄청난 추리를 하려 했다) 철저하게 시간 계산을 했고 복기를 하며, 시나리오를 짜 보니 확실히 분당선 기차 안에 놓고 내렸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담당 형사는 오늘 휴가라, 오전에 큰 기대 없이 유실물 센터에 연락 한번 해보고, 위 내용을 사진과 함께 철저하게 정리 분석한 파일을 이메일로 보낼 예정이었다. 결혼반지에 대한 강한 의지를 피력함과 동시에 수사 시간을 최대한이라도 단축하고자 했던 필사적 발악이었다.
하늘이 도와 결국 가방, 노트북, 책들 그리고 우리 부부의 결혼반지의 행방을 찾았다. 그러나 지금 느껴지는 이 오묘하고 기이하며 뒤틀린 감정은 잃어버렸던 소중한 물건을 찾았다는 환희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아니면 비루 3캔이 야기한 몽롱한 취기 때문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집에서 쫓겨나지 않고 온전히 부부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안도감에 의한 것인가.
지난 사흘간, 새로운 경험을 참 많이도 했다. 머저리같이 멀쩡한 가방을 지하철에 놓고 내렸고, 그 사실을 무려 20분 뒤에 인지했으며, CCTV에서 (가방이 없는지도 모른 채) 해맑게 유튜브에 온전히 집중하는 나의 모습을 목격했고, 경찰서를 무려 세 번이나 들락날락했으며, 몇 번의 상담원 및 ARS 전화통화 끝에 마침내 잃어버렸던 물건을 찾았다. 이 모든 사건을 반추해보면, (내가 등신이란 명제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절대적 참으로 박아놓고) 분실 인지 직후 세 곳의 유실물 센터로 했던 나의 전화가, 다른 세 곳의 경찰서를 찾았던 나의 집념이, 다른 센터로 연락해보라는 누군가의 친절한 유선 조언들이 조금은 허무하게 느껴지는 것은 대체 왜일까(나의 분실물은 8월 8일에 분실물 센터로 이미 들어와 있었다. 8/7 당일에 연락했던 유실물 센터에서는 분당선 모든 역에 이 분실 건을 공유했다고 전달받았고 들어오는 대로 연락이 있을 거라 했다).
누군가의 양심적인 행동 덕분에, 또 다른 누군가의 모범적인 일 처리 덕분에 또 누군가의 투철한 소명의식 덕분에 소중한 결혼반지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그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한심한 나의 꼬락서니를 보면 한숨과 함께, 그 누군가에 대한 감사한 마음보다는 왠지 모를 씁쓸함이 느껴지는 지금 순간이다. 유실물 센터는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위해 본질적 사명을 다하고자 효율적으로 협업하고 있는가, 이 사회는 아직 이 정도밖에 안되나, 라는 냉소적인 삐딱함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흠... 나란 사람이 원래 배배 꼬인 배은망덕한 인물이라서 그런가 보다 라고 스스로 채찍질하며 어물쩍 넘어가기로 하자.
어쨌든 결혼반지가 다시 나의 왼손 약지 껴있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행복하기도 하다. 결혼반지를 잃어버린 얼빠진 남편을 믿고 그래도 사랑한다 말하며, 그깟 반지보다 개인정보가 들어있는 노트북이 더 큰 걱정이지, 너무 상심 말라는 따뜻한 위로를 해줬던 아내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오늘은 금요일. 일찍 퇴근하시오면 상다리 부서지는 진수성찬을 차려드리겠사옵니다, 아내 마마님.
길 잃었던 한 마리 어린양이 목자를 만나 구원의 길로 향하는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며, 이 같은 기적은 사람의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신의 계획과 은혜 안에서 이루어졌다고 고백하며 감사 기도드리는 선교사. 그 모습을 가슴속 깊이 아로새기며 나 역시 이 같은 겸손한 감사기도를 드리고자 한다(무릎 꿇고). 그 후 저린 발을 부여잡고 비워진 비루 3캔을 치우고 나서 낮잠이나 자러 가야겠다.
* 아내에게 이 기쁜 소식을 알린 후,
그녀의 첫 반응.
** 장대하고도 위대한 3부작의 대단원이
마침표를 찍었다.
(고역이었지만 참고)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꾸벅)
*** (뜬금없게도) 개인적으로 다크나이트 3부작을 시리즈 영화의 한 획을 그은 위대한 성취라 생각한다. 1편 배트맨 비긴즈는 그냥 그런, 약간은 지루한 히어로의 탄생 영화지만, 위대한 악역(이자 역설적이고 배트맨을 완성시키는) 조커의 등장과 고담의 히어로인 배트맨의 몰락을 그린 2편 다크나이트, 그리고 추락한 다크나이트가 진정한 히어로로 날아오르는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유려한 비상에 거대하고도 뭉클한 감동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베트맨 비긴즈만 관람했을 때는 평점 7.8 정도. 그러나 다크나이트 라이즈까지 관람 후, 1편의 평점을 다시 매긴다면 9.2를 줄 수밖에 없는 수미상관의 완성도 있는 대서사시. 역사상 가장 어둡고 치열한 영웅, 배트맨이 종국에는 승천하여 소멸하는 이야기.
어느 평론가는 다크나이즈 라이즈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 다크나이트 3부작은 정말 훌륭한 이야기였다. 나는 그런 상상을 해본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어느 날 새로운 배트맨 이야기를 시작해주기를 말이다. 그 영화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될 것이다.
**** 그리고 이 위대한 에세이 3부작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에게 헌정한다.
(어디서 막내*가 짓나요?;;; 왈왈!!!)
* 막내 : 우리 집 강아지 이름
(실화란 증거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