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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무라면 May 12. 2019

시키지도 않은
땀의 가치를 믿는다는 것

브런치 구독자 200명을 기념하며


누구나 살아가며 남이 요구하지 않은,

오로지 본인만을 위한 온전한 땀을 흘릴 때가 있다.







   이 글은 어느 카페에서 2,800원짜리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쓰고 있다.



   사실, 우아하게 커피를 홀짝이기엔 이를지 모른다. 장장 8개월 동안 무려 63편의 글을 브런치에 쏟았지만, 고작 200명의 구독자를 모았다는 건 그리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뻔뻔하게 호사를 누리며 향긋한 원두의 여유를 즐긴다.





   호기롭게 시작한 브런치였다. 그깟 에세이, 일필휘지(一筆揮之)로 단번에 써 내려가리라. 불후의 걸작을 업로드했다 하면, 단번에 수백 명의 대중이 열광하고, 며칠 만에 운집한 수천 명의 구독자가 자나 깨나 새로운 글을 갈망할 텐데… 지금처럼 전혀 예상 밖의 현실로 치닫는 데에는 필시 프리메이슨이나 일루미나티와 같은 비밀결사 단체의 조직적인 음모 혹은 방해 공작이 있었으리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눈치채셨겠지만 당연히, 거짓말이다. 또다시 B급 에세이라는 타이틀 뒤에 숨어본다. 프리메이슨이고 나발이고, 변방의 작가임에도 분에 넘치는 독자들의 애정을 받아, 이에 깊이 만족하고 있다. 충만한 감정을 만끽하며 이 글을 쓴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한다.





   이번에야말로 솔직히 고백하건대, 브런치를 시작할 즈음부터 구독자 200명이 목표였다. 그 정도면 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백이란 숫자는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은 없다. 다만 그 정도면 내 역량에 비해 과분하다고 느꼈다. 아뿔싸, 그런데 그 시점이 정말 와버렸네. 모자란 글에도 기꺼이 손을 내밀어 주신 고결한 인품의 독자님들이 무려 200명이다. 그래서 글이란 내게 어떤 의미인지 밝혀야 할 것만 같은 일종의 책임감이 든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5년 전 방문했던 아프리카의 어느 빈민가로 거슬러 올라간다. 운명적으로 만난 한 소녀는 스와힐리어로 “동방에서 온 오라버니의 글만이 이 가난한 마을에 희망을 불어넣을 수 있어요. 부디 저희를 위해 평화가 깃든 글을 써주셔요! 흑흑”이란 간곡한 부탁이 있었을 리는 만무하고, 다만 글쓰기가 즐거웠을 뿐이다. 또 다른 이유를 덧붙이자면, 시키지도 않은 행위로 흘린 땀의 가치를 믿기 때문이라 하겠다. 마치 주문에 홀린 듯 글을 쓰기 시작하며 그간 흘린 평범한 땀방울의 가치가 새삼 다르게 다가왔다. 일상의 삶을 버티며 살았다는 증거로서의 땀. 언젠가 말했듯 처절한 날것의 인생을 가공하기 위해 쓴 글이었다. 스스로의 삶을 납득하기 위한 행위였으니, 땀방울마저 소중할 수밖에. 고무라면의 브런치는 그 자발적 땀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세계평화와 희망을 위해, 혹은 누군가의 간절한 요청에 의해, 숨죽여 자신만의 일기를 쓰지도, 러닝머신에서 굵은 땀을 흘리지도, 소설의 한 구절을 노트에 옮기지도, 낯선 곳으로 모험을 떠나지도 않는다. 누구나 살아가며 남이 요구하지 않은, 오로지 본인만을 위한 온전한 땀을 흘릴 때가 있다. 그 땀 자욱은 평범한 삶의 흔적이자 은밀한 삶의 정수다. 그렇기에 한 방울 땀의 가치는 화려한 에메랄드보다 빛날 수 있다.





   역시나 뻔한 말을 늘어놓고 있다만, 이 글의 진짜 목적 역시 뻔하다. (뻘)글을 읽어주시고, 소통해주시는 선량한 인성의 독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자 함이다(복 받으실 거여요).



   어찌 생각하실지 모르겠으나, 독자님들은 내게 길동무가 되어 주셨다. 서로의 목적지는 다를지라도, 잠시나마 같은 길을 걷고, 담소를 나누며, 서로 땀을 닦아주는 길동무. 보통의 하루를 살아내며 삶을 나누는 벗이다. 함께 땀의 흔적을 새기고 발걸음을 내딛는 독자님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한 그간 브런치에서 많은 작가님의 훌륭한 글을 접했다. 감성적인 글, 진솔한 글, 입담에 빠져드는 글, 공감되는 일러스트 등, 분야와 장르도 참 다양하다. 그분들 덕분에 많이 배우고 느끼고 성장했으니, 이 기회에 존경과 감사를 표한다(수천의 구독자에 대한 부러움도). 그런 면에서 브런치 작가님들도, 적어도 나에겐 길동무다.





   그래서 나 역시 누군가에게 걸맞은 길동무가 되고자 한다. 함께 걷는 벗이 귀 기울일 만한, 덜 한심한 이야기를 쓰 노력하고 있다.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에 어울릴지는 여전히 의문이나, 일상의 땀이 배인 그런 글 말이다.



   부족한 작가에게 연민을 느끼는 숭고한 성품의 독자가 늘어나도, 세계 평화에 해가 되진 않을 테니, 구독해주신다면야 말리지는 않아요. 천명까지는 일루미나티의 음모 따윈 없을 거라 하니, 안심하셔요.







* 이 기회를 빌어 브런치라는 플랫폼에도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브런치로 인해 팔자에도 없는 ‘작가’라는 호칭도 듣고, 마음껏 글도 씁니다. 이렇게 공손하게 마음을 전달했으니,


이제 제 글도 좀 밀어주셔요(헤헷, 제발요 ^^).



이른바, "와이프 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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