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use he knows that it's me they've been comin' to see
To forget about life for a while
“피아노 맨, 노래 한 곡 부탁해.
오늘 밤, 당신의 그 노래를 들려줘.
우린 음악의 감성에 취했고,
그대는 우리의 기분을 풀어줄 수 있지. "
토요일 손님이 많은 날입니다.
매니저는 내게 미소를 짓네요.
손님들이 내 연주를 듣고자 왔다는 걸
알기 때문이죠.
잠시라도 그들의 고된 삶을 잊기 위해.
‘Piano Man’song by Billy Joel
믿기 대단히 힘드시겠지만, 나는 상당히 감성적이며 눈물이 많은 남자다. 라고 말하면 찔리는 구석이 있기에 정확히 말하자면, ‘였다.’ 과거형이라는 점이 중요한 포인트이며 최근의 고민과도 관련이 깊다. 요즘에는 뭘 해도 도통 눈물이 나지 않는다. 슬픈 영화를 봐도 눈물은커녕 왜 이 시점에서 주인공이 저렇게 비극적으로 죽어야만 하는지 개연성이나 따지고 앉아있으니 나조차도 당황스러울 지경이다. 정신이 번쩍 들어 옆을 돌아보면 역시나 아내는 잔뜩 상기된 얼굴로 한껏 눈물을 글썽인 채 훌쩍이고 있다. 어이쿠, 사람 된 도리로서 짐짓 슬픈 척이라도 해야겠군 하며 애써 슬픈 표정을 짓곤 한다. 이쯤 되니 내 남은 감성이 이미 다 증발한 것이 아닐까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허나 이런 냉혈한 같은 나도 한땐 말랑말랑한 감성을 뽐내던 시절이 있었다.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를 온종일 들으며 고독하며 센티한 척 블루한 하루를 보내기도 했고, 늦은 밤까지 ‘냉정과 열정 사이’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따위를 읽으며 눈시울을 적셨으며, 방구석에서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며 누군가의 사연에 마음을 담아 공감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분명 중2병스러운 정서적 허세가 흠뻑 깃들어 있던 것이 분명해 보이긴 하나, 촉촉한 감성이 숨 쉬며 살아있던 시절이 있었지 하며 아련하고도 뻔뻔한 회상을 해본다.
마치 마음에 어떤 견고하고도 끈끈한 막이 둘러져 외부의 자극을 차단하고, 뿜어져 나오는 날것의 감정을 방해하는 것만 같다. 그래도 평범한 이들처럼 귀에 이어폰을 꽂고 습관적으로 음악을 듣는다. 그러나 노래를 온전히 느끼기보다는 순간의 지루함을 삭히기 위한 행위가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한 때 내 마음을 어루만지고, 자극하며, 동요시켰던 음악이 언제부터인지 이다지도 무덤덤하게 다가오다니, 여간 서글프지 않다.
감성의 메마름을 겪고 있던 내가,
최근에 두 곡의 노래를 들으며
비로소 눈물을 글썽였다.
학기가 시작되고, 어느 날 한 친구 녀석이 집까지 데려다주고자 차를 끌고 왔다. 지친 몸을 차량 좌석에 뉘이고 나니 그때서야 들리던 노래, 빌리 조엘(Billy Joel)의 ‘Piano man’. 늦은 시각 집에 도착하니, 그 멜로디가 머리에 계속 아른거렸다. 영문과 졸업생이지만 영어와 그닥 친하지 않아, 든든한 구글 형님의 힘을 빌려 가사를 찾아본다. 노래에는 평범한 사람들의 애환이 담겨있었다. 음악이 흐르는 한 술집(Bar)에는 젊음을 추억하는 늙은이가, 꿈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중년 남성이, 손님들의 비위를 맞춰야만 하는 여종업원이 있다. 그리고 토요일 밤만이라도 지친 삶을 잊고 싶어 음악에 몸을 맡긴 사람들과 우리네의 이야기를 노래하는 한 피아노 맨이 있다. 어쩐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의 삶을 듣고 있노라니, 오랜 시간 동안 자취를 감췄던 뜨거운 눈물이 맺힌다. 부드러운 촉감을 머금은 감성도 함께 말이야.
또 다른 곡은 뮤지컬 ‘위키드(Wicked)’의 ‘Defying Gravity’라는 노래. 뮤지컬의 줄거리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극 중에서 초록색 피부를 가진 주인공이 중력으로 비유되는 자신을 향한 억압과 편견 그리고 현실에 순응하지 않을 것을 선언하는 노래다.“다시 잠들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더 이상 타인이 정한 규칙에 스스로의 삶을 맞추지 않을 것이며, 나 자신의 직감을 믿고 나아가고자 한다. 그 어떤 것도 나를 끌어내릴 수 없으리라.”어처구니없게도 지금 맞닥뜨린 현실을 노래에 대입해 보게 된다. 그렇다고 내가 세상의 편견과 억압에 맞서 싸우는 입장은 전혀 아니지만, 마음이 울컥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다시금 심장이 뛰는 것을 느끼며 뜨겁고 신선한 피가 손끝까지 전해진다.
어찌 보면 삶은 줄타기인 것만 같다. 의도치 않게 이리로 쏠리다가도 또 자연스레 반대쪽으로 힘을 주게 된다. 그렇게 균형을 맞추며 조심조심 한 걸음을 내딛는다. 잠시 가뭄이 들었던 마음이 어느새 정체 모를 감성에 젖어든다. 그리고 노래를 듣는다. 때론 위로가 되는, 때론 온기가 되는, 그리고 때론 용기가 되는 그런 노래.
가끔 젖고 싶을 때가 있다.
(공부하기 싫어서 궤변을 늘어놓는 건 절대 아니라고 할 수 없지 않습니다!)
* 마지막 문단은 스윗소로우(Sweet Sorrow)의 노래, ‘노래야’에서 모티브를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