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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무라면 Jun 25. 2019

어쩌다 보니,
아내와 각방을 쓰게 되었다.

연상연하 커플 부부 이야기


   전 직장 선배 셋과 동기 하나를 만났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 혼자, 기혼자로서의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었는데, 어느새 모두들 가정을 이뤘거나 곧 이룰 예정이었다. 그래서 대화는 자연스레 부부 이야기로 흘렀다. 그중 지난가을에 결혼하신 누님께서 남편이 코를 너무 심하게 골아 고생한다 했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결과, 코골이의 원인은 혀가 두껍기 때문이라 한다. 의사로부터 혀뿌리의 일부를 제거하는’ 수술을 통해 코골이가 나아질 수 있다는 얘기를 들으셨단다. 



   기혼자 선배인 내게는 이 말이 참으로 무시무시하게 다가왔는데, 나 역시 코를 심하게 골기 때문이다. 그 누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술을 하게 되면 목소리가 달라질 수 있다고. 이 지점에서 크나큰 딜레마가 있었으니, 남편분께서는 매력적인 중저음의 목소리를 갖고 계신다는 점이다. 본인의 안락한 수면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신랑의 목소리를 지킬 것인가. 참으로 난감한 상황임이 틀림없었다. 더욱이 각방은 절대 안 된다는 투철한 신념을 가진 누님에게, 부부가 따로 잔다는 것은 애초에 대안이 될 수 없었다.





   나는 원래 쥐죽은 듯 조용히 자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약 1년 반 전부터 코골이를 한다. 아내에 의하면 그릉그릉 정도가 아니라 푸르르~~~~, 꽤 심하다고 한다. 20대 중반, 국토대장정에서 한 녀석은 내가 하도 조용히 자서 죽은 줄로만 알았다고 했을 정도로 전혀 코를 골지 않았다. 그런데 30대가 되어서인지, 유전적 요인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급격히 살이 찐 탓인지, 요즘은 코를 많이 곤다. 문제는 아내가 나 때문에 잠을 설친다는 사실이다.



   새벽에 눈을 뜨면, 옆에 있어야 할 아내가 사라지는 일들이 종종 벌어진다. 너무 시끄러운 나머지 안쓰럽게도 다른 방에서 요를 깔고 자는 것이다. 처음에는 짐짓 서운했으나 곧 익숙해졌고, 때때로 각방 쓰는 부부가 되었다. 



   선배의 문제를 아내에게 해도 되는지 고민이 많았다. 참으로 호쾌하신 아내가, 옳다구나남편의 혀를 자르면 되겠네!’ 하는 천진난만한 반응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아내의 포인트는 ‘검사’에 맞춰졌고, 건강을 위해 검사를 받아보라 권유했다. 사실 이 또한 그리 탐탁지 않았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가정의 평화를 위해 혀를 자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고 정중히 말씀하시면, 전문가의 권위를 존중하는 교양 있는 아내는 이에 선뜻 동의할 것만 같은 불안감이 있어서였다.




   현실주의자인 나는 각방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 부부의 사랑이 두텁다는 전제하에, 숙면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아내도 이런 마음이었기에 과감히 안방을 나갔을 것이다). 그렇다고 냉정한 현실주의자라고 손가락질은 하지 말아 달라. 그녀를 위한 내 나름의 배려 방법이 있으니.



   그건, 아내가 먼저 잠들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 우리는 주로 같은 시간에 잠자리에 드는데, 그럴 때면 서로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나눈다. 이내,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마침내 알아듣기 힘든 옹알이를 한다. 이 타이밍을 포착해 편히 자라고 이른다. 그동안 나는 똘망똘망 눈을 뜬 채로 잡다한 생각을 하면, 곧 아내의 호흡 결이 바뀌면서 스르르 잠이 드는 것을 느낀다. 이후에 나 역시 단잠을 청한다(때로 축구를 보러 살금살금 나가는 건 비밀).



   그러나 이 같은 헌신적인 노력을 한다손 치더라도 새벽에 아내가 깰 때가 있다. 이런 날에는 어쩔 수 없이 각방행이다. 그렇게라도 그녀가 편안한 숙면을 취할 수 있다면야 더 바랄 게 없겠으나, 방을 나가는 행위 자체가 이미 잠을 설친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코골이 검사를 받겠다고 하고, 대신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 일단 살을 빼보겠다고. 나는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내 신체와 목소리를 매우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딱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남편이 살도 빠지고, 코도 덜 곤다면 이야말로 그대에게는 일석이조이니 괜찮은 거래 아니겠는가.



   아내의 흔쾌한 허락으로, 운동에 정진하고 있다. 데드라인은 딱 두 달. 데드라인의 뜻에 부합해 목숨을 걸겠다는 각오로 러닝머신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 아내의 숙면은 소중하니까(물론 나의 혀와 목소리도 매우 소중하다).





   아, 그래서 그 누님은 어떤 결정을 하셨냐고? 참기로 하셨단다. 벌써 남편의 코골이에 적응이 되셨다나. 알고 보니 수술은 전신마취를 해야 하는 상당히 위험한 수술이었다. 참으로 훈훈하고도 지혜로운 결정이 아닐 수 없다. 






* 조금 지질해 보일 수 있으나 고백할 게 있다.

   사실 아내도 코를 꽤 고시는 편이다.




* 협객 맛짬뽕의 전설이 궁금하시다면?

협객 맛짬뽕, 궁극의 맛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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