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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무라면 Jun 18. 2019

연상 여친의 매력,
연상 아내의 마력.

연상연하 커플 부부 이야기


* 본 드라마 - <밥 잘 주는 예쁜 누나> 스틸 사진은 저희 부부와 전혀 관계가 없음을 미리 말씀드리고, 양해를 구합니다 (부럽다, 선남선녀).







   연애를 하든, 결혼을 하든 헛헛한 점이 두어 가지는 있기 마련이다. 물론 셀 수 없이 많을지도 모르겠으나 예의상 이 정도로. 우리 부부에게도 몇 가지가 있는데, 내 입장에서는 오빠라 불리지 못해 매우 아쉽다. 분명히 말하건대, 이건 치명적인 아쉬움이다.



   전통적이고 체계적인 호칭 문화를 가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남자라면 이런 로망이 있는 건 당연하다. 연인이 애교 넘치는 목소리로 오빠~’라 부르는 걸 싫어할 남자가 있을까(싫다면 뭐, 할 말은 없어요). 애초에 내게는 박탈된 기회이니 애통할 뿐이다. 연상연하 커플의 원초적인 애로사항이 아닐까 한다. 



   연애 시절에는 당연히도, 오빠라는 말을 듣기는커녕 그녀에게 꼬박꼬박 누님이라 부르며 존대했다. 연애 초기까지 그렇게 존댓말을 썼다. 왜 그리 눈치가 없었나 싶기는 하지만, 워낙 예의 바른 청년이어서 그랬다(고 넘어가자). 그녀로부터 핀잔을 듣기도 했다. 나이 든 거 티 나게 ‘누님’이 뭐냐고, 거리감 없는 예쁜 말을 듣고 싶다고. 평소 사랑스러움과는 무관한 나는, 뒤통수를 아무리 긁적여 봐도 다른 방도는 떠오르지 않았다. 호칭을 바꾼 계기는 순전히 누나의 공이었다. 그냥 편하게 부르는 건 어떨까?’ 그 따뜻하고 사려 깊은 제안에 순진하게도 그만,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말을 놔버렸다. 그리고 어리둥절하던 그녀의 표정을 목도하고 말았다. 지금까지, 어떻게 주저하지 않고 바로 반말을 했냐는 아내의 모진 구박을 견디고 있다.



   요컨대 주장의 핵심은, 연상의 매력이라 하면 부드러운 카리스마라는 것. 누님의 행동과 말에는 어떤 권위와 품위가 묻어있다. 그건 강압적이지 않을뿐더러, 재즈처럼 따뜻하며 바닐라 라떼처럼 달달하다. 노련한 누나들은 본능적으로 어린 남자를 어떻게 다루는지 아는 듯 같다. 말을 놓았던 것도 상냥한 권위를 그대로 따랐을 뿐인데, 새삼 억울함이 밀려온다. 덕분에 예의를 아는 후배는 꼼짝없이 위아래도 모르는 시건방진 남자가 되어버렸다. 온기를 담으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힘으로 상대를 홀리는 품격, 그것이 내가 경험한 연상의 매력이다(밥도 많이 얻어먹었죠. 히힛).





   문학적 성취를 위해 대구법으로 제목을 정하니, 그녀의 마력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한 가지 염두에 둬야 할 사실은, 그토록 부드러웠던 여자 친구는 이제는 내 아내가 되어 한 단계 진화했다는 점이다.



   밥 먹고, 소파에 누워 TV를 트는 건 내 즐거움 중 하나다. 딱히 TV를 열심히 보지는 않으나, 포만감을 만끽하며 잠시 몸을 누이는 게 그렇게 편할 수 없다. 물론, 좋은 습관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다(그래도 편한 걸 어떡해요). 하지만 건강 문제만큼은 집요한 아내는 이 습관에 불만이 많다. 어린 남편을 꾸짖으며, 자세를 바로 시킨다. 정말 너무하다.



   그런데, 막상 본인이 원할 때는 식사 직후라도, 같이 누워있자며 내 손을 거칠게 잡아끌고 침대로 향한다. 소파나 침대나 뭐가 다른지, 참으로 뻔뻔하다. 밥 먹고 눕지 말라 하지 않았느냐 항변해도 막무가내다. 결국 나는 모든 걸 체념하고 아내 옆에 조신하게 눕게 되는데, 방금 먹었던 양배추 볶음과 도토리묵 무침이 소화도 안 된 채 뒤엉키는 느낌이다. 남편의 속도 아랑곳 않고, 누님 아내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장난치듯 내 귓볼을 꼬집는다. 이토록 편의에 따라 말을 바꾸는 조변석개하는 연상의 그녀다(연애 때는 분명 안 그랬다고요).



   아내의 앙증맞은 뻔뻔함의 원천이 무엇일까 고민한 적이 있다. 결혼생활을 바탕으로 의심해볼 지점이 있는데, 그건 바로 그녀의 친구가 배후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무슨 얘기냐 하면, 아내의 절친한 친구들은 곧 나의 동아리 선배들이다. 네 기수나 높으신, 말도 붙이기 어려운 대(大)선배님. 가끔 그분들을 만나면, 꼼짝없이 막내 노릇을 할 수밖에 없다. 주문을 하고, 수저를 가지런히 놓으며, 분위기를 띄우고, 심지어 아기들이랑 놀아주기까지. 또한 대화를 하다 보면 호칭도 꼬여버리기 마련이라, 쩔쩔매게 된다. 야속한 아내는 이 모습을 흥미롭고 흐뭇하게 바라본다. 그럴 때면 마치 흑마법에 걸린 것처럼 더욱 당황할 수밖에 없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정말 뻔뻔하다. 그러나 이내 그녀는 뻔뻔한 애교로 내 마음을 녹이곤 하니, 이 같은 능숙한 유들유들함이 연상 아내의 마력이라 아닐까. 결국 나는 포기의 미학을 몸소 실천하며, 연상의 여인과 그럭저럭 살고 있다.




   다만 아내의 배후 세력은 여전히 무섭고, 오빠라 불리지 못하는 점은 두고두고 아쉬울 듯하다.






예진 누님의 미모는 여전하시네요!







* 고무라면 연상연하 부부의 다른 에피소드를 궁금하시다면?

아내의 소개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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