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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무라면 Jan 07. 2019

아내의 소개팅

연상 아내의 소개팅에 기겁한 연하 남편 이야기







   묘한 운명의 장난인지, 과거 아내의 소개팅남과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다. 배우자의 소개팅 전력은 금기의 영역이지만 동시에 궁금증이 폭발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대화의 성역이 사실상 무너진 우리 부부는 스스럼없이 지난날의 소개팅 이야기를 한다. 기혼자 선배님들께서는 배우자의 과거는 건들지 않는 것이 지혜라고들 하는데, 나와 아내는 지혜를 터득하려면 아직 멀었나 보다. 오히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본인의 소개팅 자랑을 하며 키득거리고 있으니, 둘 다 참 철이 없다.



   먼저 나의 소개팅 전적을 밝히자면, 3전 1승 1무 1패다. 3이라는 초라한 숫자에, 혈기왕성했던 지난날의 나는 대체 뭘 했는지 공허한 후회가 밀려온다. 지금도 소개팅에 앞서 설레하는 친구를 보면 새삼 부럽기도 하지만, 이미 강을 건너버린 나로서는 마땅히 감당해야 할 몫이다. 첫 소개팅 경험은 21살 때였다. 처음이기도 했고, 상대가 무려 의대생이었기에 매우 긴장했다. 결과적으로는 서로의 손을 관찰하며 힘줄이 뭔지, 뼈가 뭔지 정확하게 배웠던 알찬 시간이었다. 친구로 지내기로 했으나 그 뒤로 연락은 없었다. 두 번째는 역사적인 1승의 소개팅이었고, 그분과 잠시 교제했으나 금방 헤어졌다. 세 번째는 매몰차게 거절당했다.



   반면 주워들은 말을 종합해본 결과, 누님 아내는 소개팅 다(多) 경험자가 분명하다. 적게 잡아도 10번 이상 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인의 입으로는 애프터 신청이 빈번했다고 자랑을 하는데, 확인할 도리가 없으니 곧이곧대로 믿을 수밖에. 가끔은 그녀의 과거에 흠칫 놀란다. 앞에서 말한 아파트 단지에서 소개팅남을 목격했다는 얘기 같은 걸 듣는 경우다. 오랜만에 얼굴을 봐서 반가웠다고 환하게 말하는 아내를 보며 애먼 가슴을 쓸어내린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큰 타격을 입을 호락호락한 내가 아니다. 부부관계의 근간을 뒤흔들었던 더욱 무시무시한 일도 있었기 때문이다.





   우린 종종 집에서 영화를 본다. 하지만 서로의 취향에 맞는 영화를 찾는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이리저리 살피던 중, 평소 좋아하는 감독인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인터스텔라’가 눈에 띄었다. “이건 어때?”라고 묻자, 아내는 시큰둥하게 “아 저 영화, 소개팅남이랑 봤어.” 하며 거절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뭐 그럴 수도 있지, 대범하게 넘기려는 순간, 갑자기 아찔한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우리의 연애 시작은 2014년 10월. 영화 개봉일은 당해 11월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아량이 넓은 사람이라도, 배우자의 숨겨왔던 양다리 낌새를 포착하면 한껏 날카로워지기 마련. 배신감에 산산 조각난 정신을 가까스로 부여잡고, 아내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외치는 선량한 신랑의 모습은 참으로 딱하기 그지없었다. 개봉일이 잘못됐다고 뻔뻔하게 우기는 아내와 옥신각신하며 진실을 밝히고자 분투했다. 전말은 이러했다. 황당하게도, 아내는 영화 ‘그래비티’와 ‘인터스텔라’를 혼동해서 착각했던 것이다.


이놈의 인터스텔라;;;





   그 뒤로 우주 영화에 영 흥미를 잃었다. 스타워즈의 할아버지가 와도 보고 싶지 않다. 대신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아내를 놀려대는데 재미를 붙였다. 인터스텔라는 재밌었니? 그 남자는 어땠니~?” 그러면 아내는 발끈하며 되레 애꿎은 나의 과거를 들먹이며 반격을 하곤 한다. 그러나 티 없이 맑은 과거의 소유자인 남편은 별 타격이 없다. 그저 위와 같은 별 의미 없는 시간에 소박한 즐거움을 느낄 뿐이다. 이렇게 말하면 아내의 약점을 잡고 괴롭히는 악덕 남편으로 보일까 봐 심히 우려된다. 참고로 나는 주로 공격당하는 선량한 약자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한다. 그래 봐야 털릴 건덕지 없는 투명한 남자지만. 후훗.



   오늘도 돌아오는 길에 아내의 소개팅 장광설을 들었다. 누구는 빌딩이 있었고, 누구는 서울대생이었으며, 누구는 몸이 좋았고, 또 누구는 알고 보니 게이였다고도 한다(헉!). 연하 남편의 마음을 어루만질 줄 아는 노련한 아내는 이런 말도 빠뜨리진 않는다. 그래도 나는 우리 남편이 제일 좋아!”라며 다짜고짜 내 볼을 꼬집는 그녀를 보니 일종의 부채 의식을 느낀다. 쟁쟁한 인물들을 뒤로하고 나를 택한 그녀의 박탈감이 내심 걱정되기 때문이다. 당장 빌딩을 가질 수도, 학벌을 세탁할 수도, 바로 몸짱이 될 수도 없기에 주어진 하루를 더욱 열심히 살고자 되새긴다. 과거 아내의 소개팅을 떠올리며 스스로 성장하려는 의지를 불사른다는 것이 조금 어처구니없지만, 매일 한 뼘이나마 자라는 남편이 되길 바래본다. 그렇다고 배우자의 과거를 묻어주는 지혜를 터득할까 하는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 훗날 아내의 친구로부터 그녀의 별명을 듣게 되었다. 이른바 에프터리스(Afterless). 누구도 믿기 어려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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