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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무라면 Jan 24. 2019

할머니, 세 살 연상의 손자며느리도 괜찮은가요?

연상연하 커플 부부 이야기


     이제 증손자 혹은 증손녀를

     간절히 바라시며,

     우리 부부를 은근히

     압박하시지만,

     아내는 할머니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다.








   결혼하기로 마음먹었다. 평생 함께해도 괜찮겠다 싶을 상대가 있었고, 덜떨어진 아들 장가보낼 절호의 기회다!’ 하시던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지도 있었다. 역시나 결혼은 부담스러웠지만, 차근차근 가보기로 했다. 그러나 마음의 짐이 있었으니, 그건 할머니였다. 애지중지 키워왔던 장손자의 예식을 누구보다 기뻐하실 분이지만, 우리는 조금 특별한 연인이었다. 손자보다 세 살 많은 손자며느리를, 과연 할머니께서 받아들이실지, 그건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리고 나조차도 장담할 수 없었다.





   할머니와는 각별한 사이로, 어린 시절부터 붙어 다녔다. 매일 동생과 함께 바로 옆 조부모님 댁에 놀러 갔다. 언제나 분주하신 당신께서는 매번 과일이나 간식을 내주셨다. 때론 (가장 먹고팠던) 치킨 배달도. 초등학생까지 등교하는 우리를 매일 배웅하셨고, 때때로 피아노 학원, 태권도장에 찾아오셨다. 심지어 태권도 승단 심사까지도 관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따라오셨을 정도였다. 어린 마음에 부끄럽긴 해도 당신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할머니께서는 국민학교 선생님이셨다. 그 덕분에 당신으로부터 덧셈, 뺄셈부터 구구단, 곱셈, 나눗셈을 배웠다. 방학이 끝나갈 무렵이면 밀렸던 숙제는 당연하게도 공동의 과제였다. 할머니와 한 달 전 날씨를 찾고자 옛 신문을 뒤적이며 (가공의) 일기를 썼고, 같이 부추 전을 만들고, 화초를 키웠다. 나는 할머니와 추억이 많은 손자다.



   조금 과하신 면도 있긴 하다. 손자의 일상에 관심이 참 많으시다. 성적을 보시고는 수학을 못 따라가면 앞으로 고생할 거라고도, 영어가 필수인 시대라고도 하셨다. 머리가 크고는 그 애정에 지치기도 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대학생 시절, 할머니와 부모님께서 동아리 공연을 보러 오셨다. 공연이 끝난 후 부원들과 사진을 찍을 때였다. 한 여선배와 가벼운 하이파이브를 하니, 할머니께서는 화들짝 놀라셨다. 그리고 갑자기 그 누님께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시는 것이 아닌가. 손자의 여자 친구인 줄 아셨나 보다. 오해를 풀고자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여하튼, 본격적으로 결혼 준비를 해야 하는데, 할머니께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온 가족이 심각하게 고민했다. 세 살 연상의 누나와 결혼하려는 걸,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할머니께서 어찌 받아들이실지, 혹여나 나는 이 결혼 반대다! 그런 줄 알아라!’ 하시는 건 아닌지, 누구도 선뜻 예상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래도 말씀은 드려야 할 터. 의견이 분분하던 가족회의 끝에, 어머니와 함께 뵙기로 결정했다.



   디데이였다. 마침 할머니께서 손수 끓이신 곰국을 가져다주시기로 하여, 어머니와 대기 중이었다. 긴박한 최종 작전 회의가 이루어졌다. 초인종이 울리고, 할머니께서 들어오셨다. 엉거주춤 냄비를 받아들자, 어머니께서는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잠깐 드릴 말씀이 있다며 얘기를 시작하셨다. 할머니께서는 자못 진지하게 들으셨다. 마음을 짐작할 수 없는 모호한 표정이었다. 이제 할머니의 차례였다. 당신의 반응. “애미야, 세 살 많은 게 뭐가 문제라도 되니? 나도 아버님과 동갑이잖아. 연애 결혼했고. 나이, 그런 거 중요하지 않다. 마음 맞아 사는 게 진짜 부부지. 우리 손주 축하한다!”





   허무하지만 시시하게 승낙 아닌 승낙을 받았다. 미리부터 왜 이렇게 마음을 졸였는지조차 아득할 만큼 간결하고 확실한 대답이었다. 하긴, 당연한 결과였는지 모른다. 자손의 행복이 유일한 소망이신 분이니까. 돌이켜 보건대, 우리 모두 할머니의 사랑을 너무 과소평가했다.


   오늘도 돌아가신 할아버지 사진 앞에서 가족의 안녕을 빌고 있을 그분의 모습을 떠오른다. 부산에 내려갈 때 떡이든, 김치든 잔뜩 챙겨주시는 우리 할머니. 극구 거절해도, 끝까지 손에 쥐여주신다. 이 많은 짐을 어떻게 가져가냐고 툴툴거리지만 기어이 집어 든다. 이제는 증손자, 손녀를 간절히 바라시며, 우리 부부를 은근히 압박하시지만, 아내는 할머니를 진심으로 존경한다. 스마트 폰으로 카카오톡을 하시고, 치매 예방을 위해 스도쿠를 즐기시며, 금융권 종사자 못지않게 은행 금리에 바싹하신 세련된 할머니를 보며 많은 걸 느낀다는 그녀다.





   아내와 함께할 오늘의 저녁 메뉴는 강된장과 채소 쌈이다. 할머니께서 보내주신 경주 된장으로 남편 주부의 내공을 발휘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먹음직스러운 상차림 사진을 할머니께 보낼 예정이다. 효성이 지극한 척, 연락의 구실을 만들려는 수작이라 의심하시겠지만, 그야말로 정확한 의심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 한 번 제대로 안 하는 손자는 이렇게라도 인사드리고자 꼼수를 부려본다.






사진이 썩 맘에 들지는 않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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