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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무라면 Dec 28. 2018

아저씨 아줌마가 된다는 것

노안 연하 남편과 동안 연상 아내


    조지 버나드 쇼는 이렇게 말했다.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에는 너무 아깝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연말, 아저씨가 된다는 사실에 새삼 서글프다. 서른 살 주제에 이런 말을 해서 대단히 죄송하지만, ‘세월에는 장사 없다’라는 말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20대에는 없던 두툼한 뱃살을 보고 있노라면, 세월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는 것만 같다(살 빼라는 아내의 구박에 서럽기도 하고). 마음은 여전히 청춘인데, 어느덧 아저씨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아직 아저씨는 절대 아니지! 라고 항변하는 친구들이 있기는 하다. 허나 헛된 희망일 뿐. 아저씨의 강력한 증거는 바로 정칠이라 불리는 친구 녀석이다. 그는 어릴 적부터 잔 근육의 슬림한 몸매를 뽐냈다. 평생 절대 살이 안 찔 것 같던 그조차도 30대가 되니 한껏 후덕해져 나를 놀라게 했다. 세월의 무시무시함을 직접 목격한 뒤로는 아저씨가 되었다는 말에 토를 달지 않기로 했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며 종합 비타민을 추천하고, 누구 이마가 더 넓어졌는지 앞머리를 들춰 서로 확인하는 건 우리에겐 흔한 광경이다.


2018.12.28. 오늘, 아저씨들의 대화 (feat. 친구들)


   처음 대학원 연구실에 갔던 날, 20대 중반의 선배님들께 많은 가르침을 주십사 인사를 한 적이 있다. 자기소개를 하며, 나이를 밝히고, 유부남이라 말하자 선배님들이 화들짝 놀랐다. 심지어 한 분은 90도로 꾸벅 인사를 하면서 저희야말로 잘 부탁드린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젊은 친구들에게는 변명의 여지없이 그냥 아저씨구나, 군말 않고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 반해, 아내는 아줌마 되기를 필사적으로 거부한다. 그렇다고 젊음을 위해 화장을 짙게 하지도 옷을 세련되게 입지도 않건만, 아줌마라는 말은 한사코 외면한다. 누님 아내에게 ‘아줌마 누나야~’ 라고 장난칠 때면, 발끈하며 본인은 아줌마가 아닐뿐더러, 아직 아줌마 될 준비는 전혀 안 됐다고 주장하는 그녀다. 애도 없는데 어떻게 아줌마냐며 애꿎은 어린 남편을 꾸짖는다.



   사실 아내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기는 하다. 워낙 동안이시다. 결혼 준비를 하며 신혼집을 보러 다닐 때였다. 부동산 사장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이고~ 새신부라니요! 중학생인 줄 알았지 뭐예요, 호호^^” 아무리 영업을 위한 과장이라도 그렇지, 중학생이라니요(아내는 하루 종일 싱글벙글). 어제도 어려 보인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하는 그녀는, 티는 안내도 내심 뿌듯해하며 슬쩍 자랑을 한다. 외모로만 따지자면 사회에서 통용되는 의미의 아줌마라 부르기엔 확실히 어색하다.



   반면 나는 어린 시절부터 노안에 가까웠다. 그 옛날, 버스 기사님의 말씀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아리며 눈물이 찔끔 날 것만 같다. 고등학생이 왜 어린이 요금을 내느냐고 어린 나를 나무란 것이다(어린이니까요ㅠㅜ). 그렇게 한 순수한 아이는 씻을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받았다. 대학교 2학년까지도 나이 들어 보였는데, 그나마 반전의 계기는 라섹 수술이었다. 안경을 벗고 나서는 거울을 보며 ‘흠… 이 정도면 20대 초반으로 보이겠지?’하며 흡족해했다. 시간이 흘러, 지금은 거울로 늘어나는 잔주름과 흰머리를 씁쓸하게 확인하곤 한다. 



   그런데 참으로 역설적인 점은 나의 마음과 행동은 세월을 거스르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주어진 환경에서 성실하게는 살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사회를 경험하고, 퇴사를 하고, 다시 학생으로 돌아온 지금은 오히려 호기심이 많아졌고, 유연하고 즐겁게 살고자 하는 마음이 크다. 철이 없어진 나를 보면 가끔 당황스럽기는 한데, 이는 낙천적인 아내의 영향이 크다. 외모뿐만 아니라 영혼까지도 젊으신 누님이다. 그녀는 매사에 충실하면서도 낭만을 즐길 줄 아는 여자다. 지금은 나도 주어진 일을 맹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되짚어보고, 좋아하고 관심 있는 것에 말랑한 애정을 주고자 한다. 동시에 인생의 동반자인 아내와 함께 소소하지만, 더 열정적으로 살고자 노력하고 있다. 



   조지 버나드 쇼는 젊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에는 너무 아깝다.’ 오랜 세월을 흘려보내고도, 그토록 아깝다는 젊음을 계속 누리고자 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 2분만 농구를 해도 숨이 턱 막히고 무릎이 시리지만, 청춘을 놓고 싶진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여전히 세상이 너무 궁금하기도 하고, 함께 하고픈 것도 많은 우리의 모습이 단순히 철없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녀와 함께할 내일이 기대된다. 그럼에도 세월은 막을 수 없기에 나는 아저씨를 거쳐 할아버지가 될 것이고, 아내 역시 아줌마가 되고 할머니가 될 것이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부부가 나이를 더 먹더라도 영혼의 젊음을 잃지 않는 것. 그렇게 둘만의 소박한 역사를 써나가고 싶다.






   갈수록 주름은 많아지고,
   배가 나오며, 흰머리가 늘지라도

   놓치고 싶지 않은 가치가 있기도 한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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