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독법에서는 속발음을 하지 않아야 독서의 속도가 빨라진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일명 포토 리딩(photo reading)식 훈련을 통해 속발음을 하지 않고 순간적인 시각의 움직임만으로, 마치 사진을 찍듯이 책의 모든 내용을 자세히 그리고 빠르게 기억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아래의 단어들을 대략 20초 정도만 봐주세요. 단, 조건이 있습니다. 무의식적인 속발음을 하지 말고 봐주세요. 20초가 지났다면 이제 방금 봤던 단어들 중 몇 개나 기억하는지 떠올려보세요.
자, 몇 개나 기억나시나요? 이 단어들은 러시아의 대문호인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인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이름입니다. 이 소설을 직접 읽어본 독자가 아니라면 이러한 러시아식의 이름을 속발음을 하지 않고서 순간적으로 모두 기억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아니, 설령 속발음을 한다 하더라도 이 많은 이름 중 단 하나라도 제대로 기억하기가 무척 어려울 겁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속발음을 하지 않고서 순간적인 시간적인 자극으로 기억할 수 있는 단어는 예전부터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이미 알고 있는 일부 단어들에만 한정됩니다. 즉 처음 보는 단어나 이를 포함한 문장은 단 한 번의 짧은 시각자극만으로는 절대로 그 뜻을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위에 예시로 든 단어들이 러시아어를 한글로 옮겼기 때문에 더 어려운거 아니냐고 따질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아무리 우리나라말이라 하더라도 그 뜻을 전혀 알지 못하는 생소한 단어가 나온다면 누구에게나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위의 내용는 소위 속독법의 대가라 자칭하는 여러 사람을 대상으로 제가 실제로 했던 실험입니다. 그 결과 속독법의 대가와 일반인이나 순간적인 기억력에는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시각만을 사용하는 속독법은 사기라는 결론이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