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은 비가 참 많이 온다. 거의 맨날 우산을 들고 다녀야 한다니.. 이게 꽤 귀찮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운동화를 마음껏 신지도 못한다. 늘 날씨를 확인하고 눈치를 보며 신발을 고르는 요즘이다.
비가 많이 오는 날씨의 가장 큰 피해자(?)는 우리 집 강아지 놈이다. 이유는 산책을 자주 못 가기 때문이다. 우리 집 테리도 다른 강아지들처럼 산책을 매우 좋아한다. 평소 귀찮게 하는 형아가 부르면 잘 오지도 않는 녀석은, 내가 산책을 갈 것 같은 복장만 갖춰도 졸졸 따라다니고, 하네스와 줄을 챙기면 좋아서 낑낑거리며 매달린다. 이 맛에 귀찮아도 산책을 가는 것 같다.
테리는 산책을 나가면 여기저기 궁금해 킁킁 냄새를 맡으며 마구마구 움직이는데,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는 다르게 갈려고 할 때가 많아, 예전에는 이리로 가자 저리로 가자 하며, 요놈과 씨름을 자주 했다.
나는 상당히 목표지향적인 사람인데, 강아지 산책마저도 목표를 두고선 가자!라고 생각하며 갔었다. 마치 정해논 코스를 꼭 돌아야 하는 것처럼.. 우리 강아지가 원한 건 그게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혹시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이라는 책을 보셨는지 모르겠다. 그 책에서는 사막 여행자와 등반가가 나오는데, 거기서 나오는 등반가가 딱 내 모습이다. 산 밑에 서서 꼭대기를 바라보며 "저기까지 가야 해!"라고 말한다. 이때 느끼는 설렘이 좋다. 정말로 호르몬이 팍팍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는, 이미 동기부여가 충분히 된 상태이기에 웬만한 어려움은 다 감수하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즐겁게 산을 오른다.
그러나 다시 내려와야 하는 일도 생길 것이다. 이건 꽤 괴로운 일이 되기도 한다. 그동안 쌓았던 것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는 상황이 오면 느끼는 좌절감은 상당하다.
사막 여행자는 여태까지의 내 모습과는 조금 다르다. 사막이라는 곳 자체가 방향도 헷갈리고 표지로 삼을만한 무언가도 적다. 어떻게 가야 할지 막막한 곳이라, 목표를 정해놓고 파이팅 넘치게 가지 않는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오아시스가 나오면 충분히 휴식을 해야 한다고 한다. 사막에선 언제 또 쉴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충분히 쉬면서 체력을 비축해야 한다고 한다. 난 쉬면 불아해 하는 성격인데, 요즘그것이 독이었음을 처절하게 느끼는 중이다.
요즘 강아지 놈 산책을 할 때는 마치 사막 여행자가 된 것처럼 산책을 한다. 어디를 얼마큼 가느냐가 아니라, 산책시간을 충분히 채우고 돌아와야지 라는 생각으로 나선다. 10분 동안 아파트 앞을 벗어나지 못해도 괜찮다. 안전하고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기만 하면 된다. 강아지도 나도 예전보다 더 편한 산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