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를 끄고 씁니다(양영희) 리뷰
영희가 정한 길, 쭈욱 가면 돼.
소설 한 편 읽듯이 읽었다.
그러니까 읽는 방식이 그랬달까. 내가 만약 저자의 상황이라면, 내 형제가 그런 일을 겪어야만 했다면, 부모님과 이데올로기로 갈등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면. 정치적 문제로 내가 원하는 공부를 다 마치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함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면.
비현실적인 현실.
그러나 이것은 누군가가 살아낸 현실의 삶이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나는 내 가족을 롱숏으로 바라보기 위해 렌즈의 힘을 빌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해도 미워해도 답답해도 멀리 떨어져 살아도 가족과 정신적으로 거리를 두기랑 쉽지 않다. 그러한 존재를 부감하여 다각도로 보기 위해서는 밀어낼 필요가 있다. 가족에게서 눈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원거리에서 응시하고 내가 어디서 왔는지 알고 싶었다. 살아온 날들을 해부하여 내 백그라운드의 정체를 넓고도 깊게 알고 싶었다. 그런 다음 가족과 나를 분리하고 싶었다.
87p
이 책은 부산 여행 중 방문한 동네 서점에서 만났다. 나는 가족 문제에 관심이 많다. 나 자신이 가족과의 크고 작은 갈등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으며, 그들과 보통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에너지를 정말 많이 쏟고 있는 장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고 각자의 성격 차이가 분명해지는 데에서 가족간 감정적 한계를 경험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난 더더욱 이야기에 매달렸다. 이것이 나만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라고 여기면서.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다시 생각했다. 멀어질 수 없다면 이해해야 하는 그 이름이 가족이라고.
작가는 재일코리안 2세로 오사카에서 나고 자랐다. 부모님은 결혼 전에 제주에서 오사카로 넘어와 조총련(일본 내 친북 성향의 재일조선인 조직)의 간부로 활동했다. 그런 사회적 지위 때문에 작가의 부모는 재일코리안 북송 사업 당시 아들 셋, 그러니까 작가에게는 오빠였던 세 명을 북한으로 보낸다. 작가는 이데올로기가 다른 부모와의 관계 속에서 갈등을 겪으며 오로지 가족을 더 잘 들여다 보기 위해, 그로써 자기 자신을 더 이해하기 위해 가족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로 한다. 이 책은 그 제작기라고 보아도 된다.
목적은 가족을 벗어나기 위함이었지만, 작가가 가족의 삶을 이해하려고 하면 할수록 그들 사이에는 사랑이 구름같이 피어난다. 사상의 차는 옅어진다. 그게 또렷이 보인다.
읽을 땐 이게 나에게 닥친 일이라면, 이라는 가정을 자주 했다. 부모는 어떻게 자식을 보고 싶은 만큼 보지 못할지도 모르는 곳으로 이주를 시킬 수 있었을까. 그런데 제 손으로 보낸 곳에서 자식이 잘 살고 있지 못하다는 걸 알았을 때의 심정이란 어떠했을까. 내가 나의 형제를 영원히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건 어떤 감정일까. 그리고… 예술을 즐기지 못하는 곳에서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작가의 첫째 오빠인 건오의 죽음이 가장 힘들었다. 이건 좀 다른 얘기지만, 소설 파친코에서 노아를 생각할 때의 마음을 짓누르는 아픔과 같았다. 눈시울부터 불거지는.
예술적 감수성으로 충만한 대학생이 북한으로 이주했다. 그는 클래식과 세계문학, 영화를 좋아했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그가 원하는 만큼 예술을 즐길 수 없었다. 그런 삶, 난 상상할 수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다.
가족이란 혈연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절절히 믿게 되었다.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기능하는 관계성이 있어야 집합체가 비로소 가족이 되는 건지도 모른다.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기억을 공유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비록 당사자는 될 수 없지만, 타인의 삶을 완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 하지만, 적어도 윤곽 정도는 알고 싶다는 겸손한 노력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알고자 하는 것이다. 사건과 사실을, 감정과 감상을, 그리고 말할 수 없는 상상과 망상까지도.
176p
작가 한 명이 견뎌낸 삶의 무게는 며칠이고 나를 자유롭게 해주지 않았다. 부모의 마음이, 저자의 마음이, 첫째 오빠의 마음이 때때로 불어와 멈칫하는 순간이 잦았다.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작가의 다큐멘터리 <수프와 이데올로기> 추천의 말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곁에서 우리와 다른 것을 믿고 살아가는 ‘저 사람들’. 그들이 어째서 그렇게 사는지, 왜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믿으려고 하는지. 감독이기도 한 딸이 촬영을 통해 어머니를 이해하듯이 이 작품을 보고 나면 ‘그 사람들’과 ‘우리’ 사이의 선은, 가늘고 또 옅어진다”라고. 내가 잘 알지 못한 시대와 사람들의 비극적이지만 숭고한 인생을 생각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을 곱씹고 또 곱씹어야 한다. 우리 사이의 갈등의 선이 조금은 더 옅어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