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마루 Mar 19. 2017

섹스 앤 더 시티의 브루클린 브리지에서

뉴욕 영화 여행: 영화에 담긴 브루클린 브리지 이야기

날은 겨울인데 햇살은 가을이다. 12월의 뉴욕은 그럴 수도 있는 모양이다.


월스트리트의 스타벅스에서 때늦은 모닝커피를 호로록 마시고 다음 장소, 그라운드 제로로 이동했다. 뉴욕은 걷는 행위만으로도 여행이 되는 도시다. 휘두른 고층 빌딩의 그늘을 밟아가며 상경한 시골쥐처럼 찍찍 누비고 돌아다녔다. 일행이 부끄러워할 만큼 흥이 나버렸다. 아침부터 과한 에너지를 보니 오늘은 저녁 6시부터 드러누울 자리를 찾아 골골거릴 게다.


그라운드 제로
Ground Zero


사실 그라운드 제로에 가볼 기회는 이전에도 있었다.

일정으로 고려할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 의문일 뿐. 뉴욕은 즐거워야 해, 뭐 이런 생각으로 자연히 휘황한 관광지만 찾아다닌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런 여행 성향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한껏 영화적 시선에 취한 나에게 그라운드 제로로 가보지 않겠냐고 제안한 건 일행이었으니까.


테러 사건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는 선희진희라는 드라마를 보며 아무 생각 없는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영문을 알 수 없는 생중계 속보가 자막으로 떠오르면서 일순간 굳어버린 가족의 표정을 읽어보려고 어떻게든 애쓰던 기억이 난다. 세상 모두의 비극을 먼 이야기로 거리를 두던 말랑말랑한 그때의 뇌는 영화와 소설로 다채로운 이야기를 접하면서 점점 어른의 것으로 (비슷하게) 성장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내 가족의 일이라면, 혹은 내가 그 건물에 갇힌 사람이라면, 이라는 식으로 사건이 떠오를 때마다 이입해보고는 했었다. 그러면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는 고통과 슬픔, 상실, 분노, 증오, 복수, 죽음을 끊임없이 순환하는 하나의 고리가 연상되곤 했는데 이는 드니 빌뇌브의 영화 그을린 사랑을 떠오르게도 했었다. 누군가 용서라는 이름으로 분노의 고리를 끊어내지 않는 이상 이 고리는 끝을 모르고 순환하겠구나. 라는 생각에 마음 한편이 서늘해지면서 뭉클했다고 할까.


그라운드 제로: 세계 무역 센터가 자리하던 곳에 만든 메모리얼 파크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라운드 제로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저 생각이 만들어낸 감정인지 몰라도 사진을 찍느라 일행보다 몇 발자국 뒤처졌던 나는 그라운드 제로로 다가갈 때 어떤 주저하게 만드는 힘을 느꼈다. 무서운 침묵이 되어버린 비명을 들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라운드 제로


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물은 졸졸졸 가운데로 수렴하고 있다.

작품의 정확한 의도는 모르겠지만 먼저 떠오른 것은 단 하나. 죽음의 이미지였다. 문득 한 생애가 형언하기 어려운 하나의 장면으로 압축되어 떠올랐다. 영화 컨택트처럼 미래를 기억하는 느낌과도 같았다. 그러니까 이곳은 이별과 죽음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한때의 마지막을 성찰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가운데로 흘러가는 물은 이곳에서 피어난 분노와 증오, 슬픔의 고리를 끊어내겠다는 약속으로 보이기도 했다. 영화 그을린 사랑에서 분노의 고리를 내 선에서 끊어주겠다고 약속한 어머니의 메시지처럼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절망적인 감정들을 죽음과 함께 삼켜버리려는 사각진 블랙 홀로 보였다고 할까. 그 순간, 흘러가는 물이 담아내는 세상이란 그토록 잔잔했다.



비석에 새겨 넣은 사망자의 이름도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훑었다.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기억해보고 싶었다. 이름에 따라 얼굴을 그려보며 상상했다. 나 한 사람에게도 이야기가 넘치는데 이들과 함께 소멸한 이야기는 얼마나 많았을까 못내 안타까웠다. 오자고 한 친구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그라운드 제로




도심 구역(Civic Center)까지 올라왔다. 목적지는 브루클린 브리지였다.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문득 지난 뉴욕 여행이 떠올랐다. 그때도 12월이었는데 볕이 이 정도로 따뜻했던가? 내 기억엔 폭설로 타임스퀘어의 TKTS(빨간 계단)가 차단되고 나는 추위에 굴복한 채 털 모자를 뒤집어쓰고, 우리는 장갑 한 짝씩 나눠끼며 불이라도 피울 듯이 손만 비벼댔던 것 같은데. 막상 생각하려고 하니 추위와 관련한 기억들이 증언을 하려는 듯 한 번에 떠올랐다.


어쩐 일인지 이번 12월의 뉴욕은 양껏 따뜻하다. 이것도 복이라는 걸 안다. 마치 늦가을로 계절을 거슬러 올라온 것처럼 따사로웠다. 나는 식물이라도 된 것처럼 턱을 치켜들고 그 햇살을 맞았다.


왼쪽: 시빅 센터 지역 맵


브루클린 브리지로 가는 길에 작은 공원이 있었다.


바스락바스락. 이 공원이야말로 계절을 거스르는 통로였다. 한껏 겨울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던 차가운 월스트리트를 지나 공원을 거치는 순간 늦가을에 숨어있는 뉴욕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노란 단풍과 초록빛 잔디가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아직은 가을이 맞다고. 계절이 선사하는 몇 안 되는 행복이 코끝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서울에서 놓친 늦가을을 이곳 뉴욕에서 만나게 되는구나.


공원에 놓인 테이블에는 체스를 두기 좋게 판이 그려져 있었다.


한낮의 브루클린 브리지는 처음이다.


지난번엔 까만 밤에 찾아와 별 같은 야경을 마주했었다. 그런데 불어오는 바람으로 인한 추위가 심해 결국 마음만큼 오래 머무르지도 못 했다. 우리는 찍어야 할 사진만 바짝 찍고 따뜻한 곳으로 냉큼 도망치려고 했다. 그때는 이 다리가 왜 유명한지도 모르고 관련한 영화는 더욱 알지 못 했을 때라 즐거움도 얕을 수밖에 없었다. 단지 책이 가보라고 해서 가본 흔한 관광지 중 하나였을 뿐.


브루클린 브리지


섹스 앤 더 시티 1
SEX AND THE CITY 1 (2008)


섹스 앤 더 시티를 향한 사랑을 어떤 말로 담아낼 수 있을까. 음, 없다.

보통 연애를 다루는 지리멸렬하고 뻔한 콘텐츠의 수준을 넘어선 이제는 클래식의 반열에 들어간 드라마라고 해야 할까. 나는 이 드라마를 (보통의) 타인보다 뒤늦게 접한 편이다. 미국에서 살았던 시절에 봤더라면 배로 즐기면서 봤을 텐데 모든 일에서 한발 늦는 편인 나는 아쉽게도 섹스 앤 더 시티를 귀국한 직후. 그러니까 2011년에 처음 보고 말았다. 이런 이런.


지금도 섹스 앤 더 시티의 오프닝만 보면 마음을 뉴욕의 바람이 분다. 실수에서 배우는 그녀가 좋고, 상처를 스스로 벌려 아픔을 충분히 느껴볼 줄 아는 그녀가 좋다. 무엇보다 성향에서 다분히 보이는 작가 기질이 그렇게 좋다. 일부에게는 분명 복잡하고 피곤한 스타일의 여자일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복잡한 사람일수록 생각하고 성찰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의미 같아서, 오히려 성숙한 관계도 그만큼 가능한 사람이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브루클린 브리지


드라마는 시즌 6(1998 - 2004)으로 종영했지만 캐리, 사만다, 미란다, 샬롯의 이야기를 여전히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섹스 앤 더 시티는 그 이후로도 두 편의 영화로 추가 제작되어 팬 서비스를 했었다. 지금까지 1편(2008)과 2편(2010)만 나온 상황인데 최근에는 3편 제작을 위해 멤버들이 다시 한 번 뭉칠 것이라는 반가운 소식도 전해져서 다시 한 번 팬들을 들썩이게 하는 중이다. 어서 어서.


영화 1편에서는 캐리와 미스터빅이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에피소드를 주축으로, 미란다와 스티브의 결혼 위기, 사만다와 스미스의 연애 고비, 그리고 샬롯의 임신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2시간 2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인들의 모든 뒷이야기를 알고 있는 팬의 입장이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충분히 헤벌쭉 웃어가며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다.


섹스 앤 더 시티 1 (2008) / 브루클린 브리지


이 영화에서 브루클린 브리지는 한 차례 고비를 맞이한 오래된 커플이 재결합을 하는 장소로서 멋지게 등장한다.


결혼 생활 중 권태에 접어든 미란다와 스티브 부부. 어느 날 스티브는 하룻밤의 실수를 저지르게 되는데 이 사건으로 그들의 결혼 생활은 최대 위기를 맞으며 급기야 이혼 직전의 상황까지 가게 된다. 방어적인 성격의 미란다는 상처를 받자마자 스티브에게 철저히 돌아서고 모든 대화의 기회를 차단한다. 그러다 미란다도 캐리에게 어떤 중대한 실수를 하게 되는데 이 사건을 통해서 그녀는 캐리가 자신에게 용서를 구할 기회를 주었듯이 자신도 스티브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주기로 마음을 다잡으며 두 사람은 결혼 상담을 받게 된다. 그리고 서로에게 신뢰의 기회를 줄 것인지 마지막으로 결정하는 만남의 장소를 브루클린 브리지로 정한다. 그것도 두 다리가 연결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섹스 앤 더 시티 1 (2008) / 브루클린 브리지


잠시 나의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난 이 다리에서 화해는커녕 커다란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일행과 나눠낀 무선 이어폰 한 짝을 다리 밑 도로로 떨어뜨려 버린 것이다. 한 짝에 얼마라더라.

마침 도시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던 중 콧구멍의 반도 안 될 정도로 작은 귓구멍에서 꼽고 있던 이어폰이 품 안으로 안기듯 굴러떨어졌다. 그때 가만히만 있었어도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든 잡아보겠다고 요리 움찔 조리 움찔거리다 똑또르르르 굴러가 차가 무섭도록 씽씽 달리는 도로 한복판으로 이어폰이 떨어지는 처참한 광경을 무력하게 지켜봐야만 했다.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른다. 그 후로 풀이 죽어버린 건 물론이다. 그때는 뭘 해도 안될 시기였나 보다. 잘하고 싶어도 실수만 하게 되는 그런 시간처럼.


브루클린 브리지에서 본 뉴욕 도심 풍경


방금 벌어진 가벼운 비극과는 상관없이 뉴욕은 얄미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낮에 보니 밤에는 보지 못 했던 윤곽선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건물의 색상도 그렇고 조화도 그렇고. 순간 이렇게 멋진 곳이었나 싶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뉴욕 모든 영화의 오프닝 장면에 동시 접속한 듯한 전율이 흘렀다.


아무래도 오늘 밤, 이곳을 다시 찾아와야겠다.



마법에 걸린 사랑
ENCHANTED


뉴욕 하면 떠오르는 또 하나의 영화가 있다.

바로 동화같이 귀엽고 예쁜 영화, 마법에 걸린 사랑이다.


사랑의 해피엔딩을 믿는 동화 속 여자 지젤(에이미 아담스)이 마녀의 저주로 불행이 존재하는 뉴욕에 떨어지면서 벌이는 사랑 찾기 모험을 그리고 있다. 환상이 가미된 동화 같은 이야기지만 지젤을 연기하는 에이미 아담스만큼은 정말이지 사랑스럽고 깜찍하다. 목소리마저 좋아서 실제로 공주라고 주장하며 나타난다면 나는 아마도 믿으려고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 영화에는 그녀와 더불어 뉴욕의 아름다운 장소가 기념비적으로 담겨있어서 그런 장면들을 찾아보는 즐거움도 상당하다. 그렇기 때문에 뉴욕 여행을 앞두고 있다면 한 번쯤은 찾아 보시길 권하고 싶은 영화이기도 하다.


마법에 걸린 사랑(Enchanted, 2007)


마법에 걸린 사랑에서 브루클린 브리지는 연인의 첫 데이트 장소로 등장한다.


지젤은 그녀를 찾아 뉴욕까지 쫓아온 에드워드 왕자(제임스 마스던)와 처음으로 데이트를 하기로 한다. 동화 속에는 행복이 전부이니 지젤에게 데이트란 무용한 것이고 사랑은 그저 첫눈에 반해 다음날 결혼에 이를 수도 있는 이상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미 뉴욕에서 지내며 이성적인 로버트(패트릭 뎀시)로부터 인간의 사랑을 알게 된 지젤은 에드워드가 자신에게 맞는 남자인지 알아보기 위해 데이트를 신청하게 된다. 그렇게 첫 데이트로 두 사람은 브루클린 브리지를 걷게 되고 그야말로 웃지 못 할 어색의 끝을 보여준다.


마법에 걸린 사랑(Enchanted, 2007)


사실 영화에 담긴 브루클린 브리지는 이외에도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하다. 브루클린 브리지가 맨해튼 브리지, 퀸즈보로 브리지와 함께 괜히 뉴욕을 상징하는 다리는 아니지 않겠나. 직접적인 배경으로 등장하는 경우도 상당하지만 작품의 오프닝 영상으로 짤막하게 등장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니 척 보면 이 이야기는 뉴욕에서 펼쳐지겠구나라고 관객으로 하여금 단번에 알 수 있게 해주는 것도 브루클린 브리지의 상징적인 역할인 것이다. 그 대표적인 뉴욕의 크라이슬러 빌딩처럼 말이다.


섹스 앤 더 시티 1 (2008) 오프닝 / 브루클린 브리지


그나저나 일행의 이어폰을 뉴욕 한복판에 떨군 나는 잔뜩 풀이 죽어 이곳에 머무를 흥이 죽어버렸다.

마음이 착한 그 사람은 괜찮다며 힘을 북돋아주었지만 그래서 더 속상했다. 이제 브루클린 브리지를 생각하면 나는 이 기념비적인 실수를 먼저 떠올리게 될 것이다. 과연 좋은 걸까?


낮의 브루클린 브리지 전망


이제 소호로 넘어간다.


지금의 소중한 시간, 놓지 말아야겠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잊지 말라고 이어폰이 (무려) 브루클린 브리지에서 스스로 희생해주신 것인지도 모를 일. 누가 의미 부여 잘하는 사람 아니랄까 봐 이젠 사물의 상실에도 이야기를 쏟아 넣고 있다. 아무렴 어때, 사람은 그럼에도 이야기로 살아가는 존재인걸.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월스트리트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