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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마루 Feb 03. 2017

케빈의 록펠러 크리스마스트리 앞에서

뉴욕 영화 여행: 영화에 담긴 라디오 시티 뮤직 홀과 록펠러 센터 이야기


타임스퀘어에서 뉴욕과 찡긋 재회 인사를 나누고,

라디오 시티와 록펠러 센터의 크리스마스트리가 있는 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인파를 헤치며 나아가는데 문득 지난 크리스마스의 뉴욕 때도 이렇게 사람이 많았나 싶었다. 아니면 해가 거듭할수록 많아지는 건지. 그때는 다섯 명이어서 주변보다는 '우리'에게 더 신경을 썼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스쳐 지나가는 전 세계 여행자들이 위협적인 존재였다. 마치.. 내 몸집이 정말 작아진 기분이었다고 할까. 골격부터 다른 서양인 군중 사이에서 요리조리 빈 공간을 찾아 발을 내딛는데 이건 흡사 톰과 제리에서 제리가 맨해튼에 상경했을 때. 그때의 풍경이나 다름없었다.


톰과 제리 Mouse in Manhattan (1945)


빨간 크리스마스 장신구가 쌓여있는 분수. 그 맞은편에 라디오 시티가 있었다.


길을 건너기 전에 영화 장면과 함께 제대로 사진을 찍어보려는데 이 사거리는 한자리에서 3초 이상 머무는 것이 민폐가 되는 그런 곳이었다. 좋은 구도로 셔터 한 번만 누르면 되는데 그 몇 초의 여유가 허락되지 않는다는 듯 이리 밀치고 저리 밀치고. 이럴 땐 연말에 뉴욕을 찾은 나 자신을 탓해야.






나홀로집에2(1992)의 케빈을 담아보고 싶었다. 아쉽게도 실패했지만.


실수로 뉴욕행 비행기에 잘못 올라 플로리다로 향하는 가족과 헤어지게 된 케빈. 그렇게 뉴욕의 웬만한 관광지를 혼자 돌아다니며 자유롭게 여행을 만끽하는데, 이때 반짝 배경으로 등장하는 장소가 바로 라디오 시티였다. 이곳이 뉴욕임을 말해주는 또 하나의 상직적인 장소.


나홀로집에 2 (1992)


라디오 시티 앞 사거리는 사방에 깔려있는 NYPD가 정리라도 해주지 않는다면 폭동으로 착각할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인파가 몰린다.


거대한 장신구가 아롱다롱 쌓여있는 분수는 사실 티파니에서 아침을(1961)에 등장했던 그 분수인 줄 알았다.

오드리 헵번과 조지 페퍼드가 이야기를 나눴던 분수. 그런데 주소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나중에 확인하고는 얼마나 아쉬워했는지. 영화 속 분수는 다른 곳에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때 남겼던 사진이 아까워 차마 지우지는 못 했다.






대부 1(1972)에서도 라디오 시티가 배경으로 등장한다.


조직의 두목인 아버지(말론 브란도)와는 다른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며 집을 나와 생활하던 마이클(알파치노)이 케이(다이앤 키튼)와 데이트를 하던 장소로 나온다. 그리고 이곳에서 신문 가판대를 통해 아버지가 피습 당했다는 사실을 접하게 된다.



대부 1 (1972)




이제는 크리스마스트리라고 하면 록펠러 센터부터 떠오른다.

분명 나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한두 명은 아닐 터. 트리를 보면 방방 뛸 나이는 지났다고 생각하지만 이 앞에 서면 꼭 어린아이가 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동심은 제쳐두고라도 거대한 크기가 곧 그런 느낌을 심어준다.


뉴욕. 도시 전체가 크리스마스를 기쁘게 맞이하는 곳.

하나의 축제를 전 세계인이 함께 즐긴다는 건 아무래도 멋진 일이다. 뉴욕에서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맞이하는 것은 간장종지만 했던 일상의 마음이 세상 끝까지 팽창하는 느낌처럼 벅찬 것이다. 저작권 문제로 캐롤이 사라져가는 한국의 연말 분위기와는 그 간극이 커져만 가는 것 같아서 씁쓸함도 짙어지는 순간.



록펠러(현지 발음은 라커펠러라고 한다) 센터 크리스마스트리


왜, 믿음이 중요한 거라고 하지 않나.

산타의 존재를 믿을지 믿지 않을지는 전적으로 당신의 몫이라는 말. 엘프(2003)34번가의 기적(1994)이 전해주었던 메시지처럼.


영화 엘프(2003)에서도 록펠러 센터 크리스마스트리를 볼 수 있다.


산타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기 위해 고아원에 방문했을 때 한 아기가 그의 선물 주머니로 들어간다. 이를 뒤늦게 알게 된 산타는 할 수 없이 아기를 북극의 산타 마을에서 키우기로 결정하고 버디(윌 페럴)라는 이름을 주어서 다른 엘프들과 함께 생활하게 한다. 버디는 자라면서 자신이 엘프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렇게 친아버지를 찾아서 뉴욕으로 여정을 떠나게 된다.



엘프 (2003)


버디는 뉴욕에서 목소리가 아름다운 조비(주이 디샤넬)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두 사람이 첫 데이트를 하던 날. 백화점 쇼윈도에 진열된 트리를 보고 놀라는 버디를 위해 조비가 데려온 곳이 록펠러 센터 크리스마스트리 앞이었다. 그 트리 앞에서 버디는 조비와의 사랑을 확인한다. 빛을 발하는 트리 앞에서 엘프는 당연히 사랑꾼이 되는 법. 말랑말랑 마음도 따뜻해지던 장면.


트리 앞 아이스 스케이트 장에서 사랑을 확인하는 버디와 조비 / 엘프 (2003)




사실 지난 뉴욕 여행 때는 트리에 대한 감흥이 없었다.

와, 크다. 예쁘구나. 사람도 많네. 주로 이 말만 나누고 서둘러 기념사진을 남긴 후 바삐 빠져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분명 즐거웠던 추억이지만 트리 그 이상의 의미가 내겐 없었던 것.


그때와 비교해보면 지금의 여행은 영화라는 매개 덕분에 더없이 풍요로워졌다. 마치 곡물이 따사로운 햇살을 받아 알맞게 익어가는 과정과 같다고 해야 하나. 보지 못 했던 것을 보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으로 남을 만한 장소마저 몇 문장의 길이만큼 고유의 단어와 의미를 안게 되었으니까.



2010년 12월 뉴욕 여행 때의 록펠러 센터 크리스마스트리 사진. 디카로 남긴 사진이라...



트리 앞에 아이스 스케이트 장이 있는데 그 주변을 둘러싸고 대기 중인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타볼 엄두조차 내보지 못 했다. 감히 인파에 끼어들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타보지 않겠어? 라는 생각은 하는데 만에 하나 평생 타보지 못 하게 되더라도 딱히 통탄하지는 않을 것 같다.



아이스 스케이트 장을 둘러싼 인파. '빼곡'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게 맞지 싶다.




이곳에서 마음을 확인한 또 다른 연인을 볼까.


34번가의 기적(1994)에 관한 이야기다. 산타는커녕 사랑도 믿지 않는 도리(엘리자베스 퍼킨스)가 브라이언(딜런 맥더모트)과 데이트를 하던 날. 록펠러 센터 크리스마스트리는 냉소 가득한 그녀의 마음마저 녹여 기어이 브라이언의 손을 잡게 만들었다. 아마도 이 모습이 그녀의 진짜 모습이었을 것이다. 겉으로는 철벽이지만 그것도 전부 상처받기 두려운 마음에 먼저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이었을 뿐이라는 것. 이 영화에서의 록펠러 크리스마스트리는 보는 이의 진심을 끌어내는 고백의 의미이기도 했다.



34번가의 기적(1994)




케빈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대다수의 영화는 트리 앞의 연인들을 사랑스럽게 담아내는데 몰입했지만 나홀로집에 만큼은 다르다. 바로 가족의 사랑을 담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어린 시절부터 봐온 영향 때문인지, 왠지 록펠러 크리스마스트리는 내겐 가족적인 의미가 더 크다.


플로리다로 가족 여행을 떠날 예정이었던 케빈은 혼자만 비행기를 잘못 타서 뉴욕에 이르게 된다. 케빈은 가족을 벗어나 뜻밖의 자유를 누리게 되어 신나는 여행을 즐기지만 그것도 잠깐. 결국 가족의 부재 속에서 소중함을 깨닫는다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이야기다. 그리고 이 메시지의 끝에는 기적과도 같은 선물을 상징하는 록펠러 크리스마스트리가 있다.


케빈은 관광도 끝마치고 도둑도 완벽하게 무찌른 후. 트리로 찾아와 다시 가족을 만나게 해달라는 소원을 빈다. 그리고 트리는 그 소원을 기적과도 같은 순간에 이루어준다.



나홀로 집에 2(1992)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상징하는 모든 의미가 맞물려 감동 또한 배가 되었던 장면.



감동이고 뭐고 사람이 너무 많아서 금세 지치고 말았지만.




그 외에 남들이 사랑을 확인하느라 바쁠 때 유령 잡느라 바빴던 고스트 버스터즈(1984)도 록펠러 센터를 거쳐갔으며,



고스트 버스터즈 (1984)


뉴욕이 관광객에게 미치는 영향을 여실히 담아낸 고전 뉴욕 예찬 영화, 춤추는 대뉴욕(On the Town, 1949)에서도 록펠러 센터가 주요 장소로 등장한다. 프랭크 시나트라와 진 켈리, 그리고 줄스 먼신이 한자리에서 뉴욕을 부르짖는 모습이라니. 지금 봐도 영광일 정도로 멋진 장면이다. (영화에도 이들을 구경하는 인파들이 함께 담겨 있다)


이러니 뉴욕을 사랑할 수밖에.






5번가 세인트 패트릭스 대성당 방향으로 빠져나왔다.


사실 빠져나왔다고 생각했는데 더 깊은 수렁에 빠져버렸다. 처음으로 압사의 위협을 느꼈다. 사방에서 어이없다는 웃음소리가 터져나오고 익스큐즈미와 아임쏘리가 반복해서 흘러나왔다. 난 생전 처음 보는 옆 사람에게 거의 안기다시피하는 민망한 자세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전 세계 사람들과 포옹한다는 심정으로 말이지. 내 주머니에 손을 넣는 행위조차 힘들어서 지도도 보지 못 해 아무곳으로나 휩쓸렸다. 여행이란 역시. 생각지도 못 한 변수 때문에 시간을 물 쓰듯 써버리게 된다니까.






세인트 패트릭스 대성당의 옆 건물에서 화려한 일루미네이션 쇼를 하고 있었다. 프라다 건물이었던가?


사실 이 공연을 보겠다고 유난히 인파가 정체되었던 건데 화는 치밀어 올랐어도 볼 가치가 있었다는 점은 인정해야 겠다. 빛의 쇼와 함께 캐롤이 성대하게 울려 퍼지는데 한 공연이 끝나자 (그 어느 여행지에서 봤던 것보다 커다란) 함성과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우레와 같다는 표현이 여기에 맞겠다 싶다. 그 현장 속에 함께였다는 것만으로도 이까짓 압사의 위협 따위 견뎌내고 말지 했다.





두 스트리트 정도 종종걸음으로 걸었다. 2분 걷고 멈추는 동작이 반복되었다.


어렵게 사람이 드문 골목을 발견했다.

저녁을 먹긴 해야겠는데 그 흔한 맥도날드조차 이곳이 고향이다 이건지 여느 맛집 레스토랑 못지않게 자리 잡기가 힘들었다.




껄렁껄렁 거리는 사람들이 두셋씩 뭉쳐 다니는 골목에서 서브웨이를 발견했다.

콜라가 급한 마음에 대뜸 들어와 샌드위치로 저녁을 해결한 후 일행을 기다렸다. 직원이 나더러 니하오란다. 한국인이라고 했더니 아는 말이 니하오밖에 없단다.



갑자기 기다리는 시간이 고단했다. 나는 뉴욕에 와 있는데 갈 곳이 없었다.

목적지가 사라지고 흥취도 잃었다. 단지 시차 때문이겠지, 생각하려고 했는데. 이건 잠깐의 피로로 인한 부정적인 단상이 아닌 한동안 오래 지속될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과도 같았다. 뉴욕뿐만이 아니라 세상 어디에도 내가 갈 곳은 없었다. 외로움도 아니고 심심함도 아니고 지루함도 아닌. 단지 불행한 느낌. 서브웨이에서 들이닥친 불행이라니. 그 후 일행을 만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는데, 사실 그날 저녁 좋지 않은 느낌이 남긴 착잡한 향기란 어디에서 불어왔던 건지 지금도 알지를 못 한다.



치킨 앤 베이컨 랜치 6인지 5.5 달러, 콜라 1.73 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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