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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는 여름 Oct 30. 2022

그림의 이면, 씨부라파

타버린 사랑 안에 남아있던 것

그림의 이면

씨부라파 지음, 신근혜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사람이  인생에 들어와  달라붙은 첫날의 일들과 여러 감정은  기억에서 잊힐  없이 살아 있을 것이다. 자그마한 하얀 꽃송이가 있는 남색 복장에  모자, 그리고 하얀 신발은  마음에 들어와 아로새겨진 숙녀의  옷차림이었다.
(...)
 갸름하고 도톰한 입술은 윗부분에 빨간 삼각형  개가,  하나가 아랫부분에 놓여 있었는데,  입술을 다른 무엇보다도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다. 나는  전까지 조그만  위에 놓여 있던 아름답게 단장한  입술보다  아름다운 입술을  적이 없음을 고백한다.

18-19

 2019 가족여행으로 처음 태국에 방문했다. 깜깜한 밤에  빛났던 도시와 친절하고 조심스러웠던 사람들이 생각난다. 태국소설 <그림의 이면> 주인공 놉펀이  그림을 바라보며 시작한다. 그림은 놉펀과 까라띠여사의 비밀스러운 순간을 담아낸다. 사랑의 색채에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고 가정한다면, 놉펀과 까라띠여사의 그것은 낮은 채도의 고요한 연정이었을 것이다. 나는  사람의 관계는 사랑이라고 부르기엔 조심스러웠다. 그보다   플라토닉한, 접점 하나를 중심으로 점점멀어져 가는  평행선처럼 느껴졌다.


 놉펀은 일본 릿쿄대학에서 유학중인 태국 젊은이이다. 놉펀의 아버지와 친구인 아티깐버디 공과 그의 아내 까라띠 여사는 허니문으로 일본을 방문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부부의 여행을 돕고, 까라띠 여사의 외출을 동행하며 놉펀은 까라띠 여사의 아름다움에 점점 매료되기 시작한다.







<그림의 이면> 여성과 남성  사회적 지위의 한계, 잔잔한 연정 이야기를 유려한 문체로 표현한다. 태국인인  남녀가 일본이라는 낯선 국가에서 겪는 일련의 사건들, 사랑이 파도라면 둘의 파고와 파저는 겹친 적이 없음이 분명하다. 또한 까라띠 여사가 겪어야했던 어떤 비극(혼기에 밀려 나이가 많은 남성과 결혼) 그녀가 여성으로서 가족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을 해야했음을 보여주는데 이는 놉펀과의 연정을 더욱 부각시키는 요소로 작용한다. <그림의 이면> 놉펀이 불이라면 까라띠 여사는 물이었다. 발화점에 도달하면 불타오르지만 시간이 지나며 희미해지는 불같은 놉펀, 부지불식간에 스며들지만 결국 모든 사물을 가라앉히고 겸허하게 만드는 물같은 까라띠 여사.​


 까라띠 여사도  때는 꿈을 꿨다.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연정을 마음에 품고 다정한 눈길로 상대를 바라보고 싶었을 것이다. 무엇이 그녀를 여기까지 데려 온걸까. 이제 그녀에게 주어진 의무는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는 것과 가족을 걱정시키지 않는 일이다.  시절 여성에게 삶을 개척한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이 까라띠 여사가 모두를 위해   있는 최선이었으리라.




만일 우리가 벚꽃으로 태어난  아니더라도 다른 꽃으로 태어난 것을 배척하지 말지어다.
우리의 종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 되기를 바라라.
후지산은 하나지만 다른 모든 산이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만일 사무라이가  되었다면 사무라이의 심복이 되어라.
우리는 모두가 선장이  수는 없다. 선원이 없다면 우리가 어찌 함께   있겠는가?
만일 우리가 도로가   없다면 인도가 되어라.
 세상에는 우리 각자를 위한 자리와 일이 있다.
만일 태양이  된다면 별이 되어라. 만일 남자로 태어나지 못했다면 여자로 태어난 것에 야속해하지 마라.
무엇이 됐건 간에  가지가 되어라. 무엇이 되건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무엇이 되건 간에 가장  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림의 이면, 47

  - 무엇이 됐건 간에  가지가 되어라. 무엇이 되건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무엇이 되건 간에 가장  되는 것이 중요하다.


 야속해 하지 말것, 주어진 삶에 만족할 것, 비단 까라띠 여사의 입장뿐만은 아니다. 일본에서 유학 중인 놉펀 또한 본국에 두고 온 약혼녀가 있다. 얼굴도 모르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러나 의무라는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학문을 마치면 혼인을 할 예정이다. 그런 놉펀이 가슴앓이했던 대상인  까라띠 여사, 그녀는 놉펀의 마음을 이해했을까? 그녀 또한 어떤 동정을 느꼈을지도.

영화 <그림의 이면>
 나는 일상적인 감정으로 그녀의 편지를 읽었다. 물론 그녀가  누이인 것처럼 그녀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그녀는 항상 매우 값진 조언과 격려의 말을   사람이었다. 하지만 불같이 뜨거웠던 감정은  타버렸다. 시간은 그녀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로부터 모두 가져가 버렸다.

 나는 까라띠 여사가  편지 속에 어떤 심오한 감정을 숨겼음을 전혀 알아차리고 인식하지 못했다. 인생의 세심함과 은밀함이란,  당시에 알기에는 나의 이해력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림의 이면, 135

 까라띠 여사에 대한 연정은 그녀가 귀국하며 조금씩 저물어간다. 놉펀의 마음은  타버린 재가 되버린다. 스스로 그녀에 대한 마음이 정리되었다고 확신하며 이제는 친구이자 누이로 까라띠 여사를 바라본다. 그러나 놉펀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놉펀의 가슴 어딘가에는 까라띠 여사의 붉은  삼각형이 머무르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림의 이면> 원색과 금빛이 어우러진 태국의 사원이 떠오름과 동시에 운무가 가득한 일본의 강산이 떠오르는 작품이다. 처음 <그림의 이면> 수령했을 , 생소하고 이국적인 느낌이 강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림의 이면> 예술작품이었다. 문학이면서  폭의 그림을 보는  했다. 단촐하지만 강렬한 이야기,  안에서 우리는 재가 되버린  시절의 사랑을 떠올린다.








문학 작품이 워낙 아름다워서 영화를 찾아봤다. 가장 처음에 상영된 영화 <그림의 이면> 트레일러이다.


링크  : https://youtu.be/xM96oOdBGaQ

그림의 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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