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셜 네트워크(The Social Network) Review
인간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꼽자면,
그것은 다름 아닌 ‘투명성’이다.
투명성이란 곧 신뢰의 근간이 되기 때문이다. ‘투명하지 않음’에는 거짓말만이 포함되는 것이 아니다. 최악의 경우에 해당하는 거짓을 말하는 케이스가 아니더라도, 사실을 숨기는 것만으로도 상대가 나를 기망할 수 있음을 우리는 숱하게 경험해왔다. 정보의 비대칭성은 언제나 그 자체로 도덕적 해이를 발생시킬 여지를 만들어왔지 않는가.
비대칭적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사람들은 곧잘 ‘딱히 말해줄 이유가 없어서’ 혹은 ‘본인에게 어떠한 사정이 있어서’, ‘상대를 배려해서’ 등의 이유를 파는 경우가 많은데, 이와 같은 발언은 그 자체로 상대가 평가하는 나라는 존재의 가치를 방증한다. 그러한 저평가 속에서 관계를 유지할 필요는 하등 없을 것이다. 나라는 존재의 가치를 ‘딱히 말해줄 이유가 없는’ 혹은 ‘본인보다 중요하지 않은’ 정도에 국한시키거나 ‘배려라는 이름의 남탓’으로 산화시켜버리는 인간과 어떻게 신뢰를 쌓을 수 있겠나. 이미 쌓은 신뢰도 무너져내리게 만드는 짓인데 말이다.
불투명의 변명 중 최고봉은 “말하려고 했는데..”이다. 자본시장에서도 형사제도에서도 그러하듯, 어쩌면 세상만사 어디에서나 그러하듯 정보의 가치는 ‘시점’에 기속된다. 중요한 시기가 지나고서야 알게 된 사실은 더 이상 정보가 아니다. 주가가 이미 폭락한 이후에 알게 된 악재가 아무 쓸모 없는 정보이듯 말이다. 정보에 있어 시점을 변명삼는 것은 화재에 있어 방화범이 아니라 불을 변명삼는 것과 같다. 화재가 불의 재난이나 불의 탓이 아니듯, 정보의 비대칭은 시점의 재난이나 시점의 탓일 수 없다. 시점을 어긴 방화범의 탓일 뿐.
그렇다고 하여 상대에게 처음부터 투명성을 요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신뢰 구축을 위해 우리가 사전적으로 행해야할 것이 있는데, 바로 상대에 대한 ‘정성’이다. 쉽게 말해, 소중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에게 먼저 잘해주라는 것이다. ‘정성’을 표하지도 않고 ‘투명’을 요구하는 것도 오만한 일이지 않은가. 즉, 위의 이야기들 역시 ‘정성’을 다했을 때나 성립할 수 있는 알고리즘이란 것이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정성’을 다하는 것은 상당한 용기를 요하는 일이다. 사람들은 대개 관계의 열위에 놓이게 될 것을 두려워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비유하자면, 꼴까봐 베팅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 태반이란 것이다. 그러나 신뢰를 받을 존재가 되기 위한 자격이 정성에서 비롯되는 것 역시 딜레마적이나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포멀리티임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정성을 먼저 다했는데 즉, 용기를 냈는데도 불투명이란 배신이 이루어지면 나만 손해인 것이 아니냐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 정성을 다했는데도 불투명하다고 여겨지면 가차없이 잘라내면 된다. 거짓말을 하거나 이것저것 숨겨대며 자기방어적 발언만 꿍시렁 쏟아내는 사람에 미련을 가질 이유는 일절 없지 않은가.
이에 더해 이전의 손해를 보상받고 싶어하는 혹은 감정적 복수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평소에 정성을 다했다면, 굳이 그런 시도를 기할 필요가 없다. 불투명한 사람은 애초에 본성 자체가 부정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존재는 애초에 당신같은 희생량을 생산하는 경우가 많고, 결과적으로 인간 관계 자체가 개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설상가상으로 희생량을 통해 자존감을 찾는 최악의 인간들도 더러 있다. 겉으로는 번지르해 보여도 알맹이는 없고 속은 썩은 인간이란 것이다. 무엇보다 불투명의 열에 아홉은 쓸데없이 높은 자존심과 부박히 낮은 자존감의 앙상블에서 발로된 것이다. 즉, 당신이 굳이 어떠한 조치를 취하지 않더라도, 그 불투명한 사기꾼은 자멸적으로 괴로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잘 사는 것 같아도 그렇지 않다. 알량한 존심에 말만 안 할 뿐.
그러니까 평소에 정성을 다하라. 그래야 인간 관계에서의 자유를 얻는다. 정성은 그 자체로 관계의 거울이며 신뢰의 시발점인 동시에, 선제적 복수이기도 하며 관계의 기회비용을 줄이는 최선의 방법이니 말이다. 끝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당부컨대, 어쩌면 본인도 그런 사기꾼이 되지 않을까 항상 주의하라. 인간은 언제나 본인을 선으로 상대를 악으로 상정하기 마련이다. 이 역시도 동일한 결론이다. 졸렬한 선이 아니라 정당한 선이 되려면, 선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 평소에 정성을 다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