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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hyeon Rhee Jan 14. 2020

실패를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 Review

※ 이하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한가득 담겨 있습니다.




    『내일을 위한 시간』, 다르덴 형제의 영화다. 이 영화는 한 편의 윤리 실험극이다. 제러미 벤담의 양적 공리주의를 실험 내용의 골자(骨子)로, ‘공동체의 총이익을 저해하는 누군가를 배제함으로써 나머지의 이익을 늘리는 것을 용인할 것인가.’를 주제로 삼고 있다.


    영화의 간략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산드라’는 복직을 앞두고 그녀를 해고하는 대신 동료들이 1000유로를 받기로 사측과 합의했다는 전화를 받는다. 하지만 투표의 불공정성에 대한 제보가 들어온 덕에 월요일 아침에 재투표를 하는 것으로 결정된다. 일자리를 잃고 싶지 않았던 ‘산드라’는 주말 동안 16명의 동료를 직접 찾아가며 설득하려 노력하지만, 각자의 이해관계가 있는 동료들은 사과나 거절만을 돌려준다. 「내일을 위한 시간」은 ‘산드라’의 해고를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해고를 앞둔 ‘산드라’의 고군분투(孤軍奮鬪)와 ‘해직’이라는 정해진 미래를 암시할 뿐이다.



    그렇다. 실패 자체만 부각할 뿐, 공리주의 실험 주제에 대한 해설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끝없이 실패하는 ‘산드라’만을 보여준다. 한편 다르덴 형제는 이러한 실패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적 실패를 묘사하기 위해 ‘재투표’라는 장치를 스토리에 도입해 집중 서술했다. 다시 말해, 첫 번째 투표에서의 ‘실패’와 재투표를 향한 ‘실패를 극복하기 위한 실패’ 두 가지만 담백하게 서술하며, ‘공리주의 실험’로부터 ‘실패의 역설’이라는 새로운 주제의식을 끌어낸 것이다. 우리에게 실패의 해결수단은 공리주의적 솔루션이 아니라 또 다른 실패뿐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다. 우리의 ‘실패’에는 백마 탄 왕자가 존재하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실패’의 극복은 오직 또 다른 ‘실패’에 있었다. 성공이란 실패와 구분된 존재가 아닌 것으로, 실패의 집합(集合) 일뿐이었다. 즉, 우리는 흔히 공리주의와 같은 윤리적 · 방법론적 솔루션을 떠올려 상황을 재단(裁斷)하려 했지만, 결국 우리를 실패에서 탈출시켜주는 것은 주어진 상황 속에서의 또 다른 실패였던 것이다.



    영화의 제목 「내일을 위한 시간」의 내일은 Tomorrow(;내일)과 My Job(;내  일)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내일을 위한 내 일은 실패하고 또 실패하는 것이란 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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