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가령 Apr 22. 2020

장엄하지만 어느 순간 사라지는

드럼을 배우며 1


  취미로 드럼을 배운 지 약 석 달 되었다. 날마다 열심히 연습을 해야 실력도 늘고 할 터인데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 학원에 가서 두드리는 것이 전부다. 

  그러니 아직 실력이라고 할 것도 없다. 두드리는 즐거움에서인지 드럼을 칠 때만큼은 실력보다 흥이 앞선다. 실력은 1단인데 흥은 9단이다.

악보 따라 연습하다가도 선생님 눈치 봐가면서 내 맘대로 신나라 두드려댄다. 어떤 큰 목적 없이 즐기려고 배우는 것이니 스트레스도 없다. 그저 신난다.

  그런데도 이상한 일이 하나 생겼다. 이제는 노래를 들으면 가사가 들리는 것이 아니라 드럼 소리가 먼저 들린다.

  드럼은 대단히 크고 장엄한 소리로 곡의 시작을 멋들어지게 알려주기도 하고 중간중간의 현란한 필인(연주자의 개성에 따라 연주하는 부분)으로 곡의 흐름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기본으로는 정확한 박자를 쳐주어서 곡의 흐름을 이끈다. 그러면서 노래의 결을 만들어준다. 

  드럼은 단독의 연주곡이 아닌 다음에야 다른 악기들 앞에 나서는 일이 별로 없다. 튀어나오는 악기가 아니다. 밑에서 받쳐주고 곡의 빠르기를 조절하고 모든 악기를 아우르는 역할을 한다. 

  물론 곡의 흥을 더하거나 깊이를 더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미친 듯 폭발하며 존재감을 나타낸다. 그러다가 어느새 다른 악기들 사이로 슬며시 모습을 감춘다. 장엄하지만 어느 순간 사라진다. 그래서 듣는 사람들은 드럼이 쳐주는 비트에 흥겨워하면서도 거기에만 팔려 있지 않고 비트 너머의 노래 가사를 즐기고 곡의 분위기에 젖어든다.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도 다른 악기들과 조화를 잘 이루는 악기가 바로 드럼이다. 이 시대에 필요한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이 아닐까? 드럼을 배우며 든 생각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