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럼을 배우며 2
드럼을 배운 지 약 반년쯤 되었다. 레슨 받는 시간만 드럼을 만질 수 있으니 따로 연습을 할 형편이 되지는 못한다. 그저 재미있어서 치고 있는 정도지. 그런데도 희한하게도 기술이 아주 조금씩은 늘었다. 그래서 아주 쉬운 것이지만 내가 치고 싶은 것을 칠 수 있게 되었어. 정말 세상에 공짜가 없듯이 거저 버리는 시간도 없는 모양이다.
드럼은 보통 쿵칫따칫 하는 식의 기본 리듬을 치는 부분과 4마디나 8마디 정도에서 필인을 사용하는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잘 편곡된 드럼 곡은 드럼만으로도 그 곡의 분위기를 한껏 살려내기도 하는 것이 참 신기하다. 필인(Fill in)은 메우다, 채우다는 뜻으로 드럼 연주에 사용되는 애드리브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나 같은 하수는 악보 따라가는 것도 절절매지만.ㅎㅎ)
필인은 귀명창 노릇을 잘해준다. 귀명창은 판소리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명창에 버금갈 정도로 소리를 잘 이해한다는 뜻에서 이르는 말이다. 명창이 소리를 하면 귀명창은 추임새를 아주 적재적소에 잘 넣어준다. 그 힘에 기대서 명창은 소리 한 자락을 더욱 멋들어지게 풀어내게 된다.
요즈음은 심수봉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를 배운다. 가수 심수봉 씨가 특유의 비음으로 아주 맛깔스럽게 불러 히트한 것으로 나도 좋아하는 노래다. 가사 속의 화자는 여성으로 부두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하고 있다. 그 이별의 핑계가 바다 때문이라는 것이지. 여성은 쓰린 마음을 부여잡고 님을 보내준다. 그러면서도 서운한 마음을 달랠 길 없어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하고 탄식을 한다. 이때 드럼이 필인으로 ‘따딴 따다단 따다단’ 하면서 마치 ‘그 말이 맞아맞아’ 하는 식으로 추임새를 넣어준다. 노래는 다시 절정으로 향한다. ‘남잔남잔 다 모두 다 그렇게 다 아하’ 하면서 노래가 한 고비를 올라서면 필인도 같이 ‘단단단단단단 다다다.’ 하면서 힘 있게 달려와 둔중하게 그 마음을 달래준다. 마치 나도 당신 편이야 하는 듯이 말이다.
말을 잘하는 사람은 자기 말만 쏟아 놓는 사람이 아니라 필인 같은 추임새, 맞장구를 잘 쳐주는 사람이다. 필인은 우리들의 대화에서도 꼭 필요한 기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