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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술사가 나리 May 20. 2024

"애를 발사하셨다면서요?!"

나리족 족장의 첫 아이 출산기

   "애를 발사하셨다면서요?"

   큰 아이를 낳은 후, 처음 만난 담당 간호사의 첫마디는 이랬다.

그렇다. 나는 애를 발사했다. 그것도 그렇게 낳는데 긴 시간이 걸린다는 첫 아이를.


   나는 세 아이를 모두 사촌 형부인 산부인과 전문의에게서 낳았다. 사촌 형부이긴 했지만, 그저 산부인과 의사와 산모의 관계로. "어머, 어떻게 그러실 수 있으셨어요?"라고 묻는다면 그 얘긴 나중에 하도록 하겠다.


    첫 임신한 아이를 자연유산했던 터라 큰 아이 임신기간 동안 내내 유난스럽게 조심을 했다. 그 때문인지 큰 애는 뱃속에서 이미 많이 컸고 예정일이 다가왔지만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너무 많이 크면 난산으로 갈 확률이 커졌으므로 3월 8일로 유도분만 날짜를 정하고 새벽같이 일어나 샤워를 하고 짐을 챙겨서 엄마와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남편은 그때 일본에서 박사 과정 중이라 도쿄에 있었고, 나는 한국의 친정집 개나리 아파트에서 지내고 있었다.


    병원에 도착하여 담당 간호사와 형부의 지시하에 분만유도실에 들어갔다. 분만 유도제를 주사하고 한참을 기다렸지만, 진통도 없고, 아무런 반응이 일어나지 않았다. 오후 3시쯤 되었는데도 아무 변화가 없었다. 형부는 오늘 아이가 안 나올 거 같고 내일 아침쯤 진통이 올 거라고 말하며, 미용실에 머리 하러 간다며 홀연히 퇴근을 했다.  담당 간호사 역시 퇴근을 했다. 병원에는 엄마와 나, 당직근무 간호사 이렇게 셋이 남게 되었다.

    그런데, 두두둥, 일은 언제나 예고 없이 터진다. 오후 5시쯤 갑자기 양수가 터지는 느낌이 들었다. 양수 때문에 거대한 패드를 차고, 다시 누워 있었다. 5시 10분경, 슬슬 배가 더 당겨오기 시작했다. 당직 근무 간호사와 엄마는 당황하기 시작했고, 이쁘게 머리를 자르러 간 형부를 호출했다. 형부는 다행히 병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지만, 토요일 강남 한 복판은 교통체증이 심각하기에 빠른 시간에 올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시부모님들께서는 그날 친척 어르신 생일잔치에 참석하러 가셨고, 나와 동갑내기인 시누이가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왔다. 5시 20분부터 본격적인 진통이 시작되었고,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다. 그 아픔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는 없었다. 진통이 진작에 시작했으면, 미리 분만진통제를 맞을 수도 있었을 텐데. 이미 늦었다. 아이는 곧 나올 것처럼 진행이 빨라졌다.


    간호사는 형부가 거의 다 왔다고 알려주더니, 나를 분만실로 옮겼다. 나오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좀 기다려달라고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마침내 머리를 예쁘게 단장하고 나타난 형부는 급히 수술가운을 입고, 내 앞에 앉았다. 힘을 주라고 해서 계속 힘을 줬는데, 형부가 갑자기 "그만!"이라고 외쳤다. 아기가 다 나왔는데 내가 계속 힘을 줘서 아이가 미끄러져서 날아갈 뻔했던 거 같다. 하하.  나로호 발사체도 아니고. 나는 왜 아기를 힘껏 발사시켰는가. 온몸이 빨개져서 울고 있는 아기가 내 몸에서 탄생하는 순간의 묘한 감정은 아기 엄마가 아니면 느낄 수 없으리라.


    암튼 우여곡절 끝에 난 첫 딸을 출산하였다. 극심한 진통이 온 후 약 30분 만에 낳은 것이었다. 임신 기간 내내 "신속하고 안전하게 순산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던 나에게 첫아이 출산은 말 그대로 신속한 분만이었고 정확한 기도의 응답이었다. 첫 아이를 30분 만에 낳았다고 하면, 아무도 믿지 않는다. 하지만, 사실이다. 난 첫아기를 발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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