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담에게 사랑은 급류와 같은 위험한 이름이었다. 휩쓸려 버리는 것이고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 발가벗은 시체로 떠오르는 것, 다슬기가 온몸을 뒤덮는 것이다.
더는 사랑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 현대 한국문학과 사랑이 갖는 공통점이 무엇일까. 일단 둘 다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내 삶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싶은 존재라는 점이 가장 명료한 공통점이다.
[급류]에 대한 이야기는 최근 나에게 정말 '급류'처럼 몰아닥쳤다. 갑자기 뜨는 인스타 광고들과 유튜브 리뷰들, 그리고 먼저 물살에 휩쓸린 다른 독자들의 후기에 과감하게 밀리의 서재 결재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어떤 책이기에, 그리고 흔한 소재인 사랑을 얼마나 독자들에게 몰아치게 만들기에 내 일상을 조금씩 흔드는지 너무나 궁금했다.
결론적으로 [급류]는 3일 만에 완독했다. 허세 가득한 문장으로 가득한 기존 현대 순문학과 달랐고, 스토리가 과하게 공상적이거나 비현실적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충 책이 함의하는 의미가 내 가치관과 통하는 면이 많았다. 그렇기에 지금 리뷰를 쓰는 순간에도 내 마음이 파도처럼 흔들리는 지도 모르겠다.
일단 내 리뷰는 기본적으로는 리뷰지만 알량한 교양에 기반한 평론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즉 스포일러가 있으니 여기에 민감한 사람은 미리 책을 읽고 오기를 추천한다.
나도 사랑을 하게 될까, 엄마와 아빠처럼
[급류]는 도담과 해솔의 아픈 사랑을 중심으로 서사를 풀어나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럼에도 소설에 사랑을 하는 이들이 도담과 해솔만 등장하는 건 아니다. 그들의 부모인 창석과 미영의 사랑, 도담과 해솔의 곁을 잠시나마 지킨 선화와 승주의 사랑도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이들 중 가장 사랑이라는 급류에 휩쓸리는 사람은 도담과 해솔이다.
소설의 배경은 계곡을 찾아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진평이라는 가상의 도시다. MT의 성지로 소개되며 기차가 지난다는 점 때문에 가평을 염두에 둔 지역인 것으로 혼자 추측하지만, 큰 댐이 있다는 설명과 생각보다 작지는 않은 도시 묘사에 때문에 대충 경춘선 라인에 있는 춘천(소양강댐)과 가평의 이미지가 합쳐진 도시로 볼 수 있을 거 같다.
소설의 시작은 급류에 휩쓸린 창석과 미영을 비추며 시작된다. 도담의 아버지와 해솔의 어머니의 죽음으로 끝나는 비극적인 하나의 사랑의 끝은 역설적으로 급류에서 시작된다. 이 둘, 그리고 도담과 해솔의 인연은 창석이 급류에 휩쓸린 해솔을 구하면서 시작된다.
"잘 부탁해"라며 해솔이 악수를 청했다.
악수라니, 약간 놀랐지만 도담은 부끄러워하거나 촌스럽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 깡시골에 온 걸 환영해."
도담은 그렇게 말하며 해솔의 손을 잡았다.
그 부드러운 감촉과 따뜻함에 또 놀랐다
사람은 동질감에 호감을 갖지만, 상대의 이질감에 대한 동경 때문에 사랑을 느낀다는 말이 있다. 도담과 해솔은 소설 내내 서로 상반된 특징과 외면을 보여준다. 전반부의 해솔은 병약한 이미지다. 이를 위해 작가도 가는 팔이라던가 흰 피부 등 가감 없는 표현을 통해 해솔의 유약함과 내성적인 모습을 강조한다. 반면 도담은 이와 대비되는 강인하며, 외향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 소방관인 아버지 덕에 겁이 없었고 시원시원한 성격이다. 외지인이라고는 대학생들이 MT 시즌에만 찾아오는 진평에서 18세의 남녀가 호감을 갖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도담은 물을 좋아했고 언제나 겁이 없었다. 호기심이 많지만 그만큼 겁도 많은 해솔은 도담의 그런 용감한 모습을 닮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중 진평은 어딘가 가라앉은 우울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좋은 여행지이지만 사람들이 급류에 휩쓸려 생을 마감하는 곳이며 창석은 그런 이들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주는 소방관이었다. 이런 어딘가 가라앉은 도시에서 사랑에 빠진 이들은 도담과 해솔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부모인 창석과 미영 역시 서로에 대한 호감을 느꼈다. 미영은 사별은 했지만, 문제는 창석은 투병 중인 아내가 있던 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급류처럼 사랑에 휘말렸다. 그리고 도담과 해솔은 그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가장 참담한 비극은 무엇일까, 모두가 의견은 갈리겠지만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내 귀책이 있다는 점은 참담함이라는 수식을 붙이기에 충분할 것이다. 소설 서두와 리뷰 서두에서 창석과 미영이 급류에 휩쓸려 죽는다는 언급이 있었다. 그들의 죽음은 해솔과 도담 때문이었다. 어두운 밤 불륜 현장을 확인하던 중 모종의 실수로 인해 두 사람이 급류에 휩쓸렸고 그들의 감정을 자식들에게 설명할 틈도 없이 강바닥에 모든 것을 묻어두게 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도담과 해솔의 관계는 사회적 지탄의 시선과 영원히 해결될 수 없는 죄책감이 얹어지게 된다.
미영은 수목장을 치러서 추모 공원의 나무가 되었고
창석은 그토록 좋아하던 바다에 뿌려져 바닷물이 되었다.
이후의 이야기는 미지근하지만, 깊고 침잠하며 흘러간다. 도담과 해솔은 갈라서고 서로에 대한 감정과 죄의식 그리고 거부감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럼에도 그들은 여전히 서로를 사랑했다. 미영과 창석이 서로를 사랑했듯이, 세상의 시선은 그들을 질타하지만 그들은 서로를 그리며 어른이 되어갔다.
성인이 되고 그들은 다시 재회한다. 해솔은 약학대학에 진학을 했고 도담은 물리치료를 공부했다. 그들의 사랑이 동화 같은 밝은 빛으로 다시 시작되지는 않았다. 항상 과거의 기억에 몸부림치며 자신 주변의 이성에게 갉아먹히고 저 스스로도 상대를 갉아먹으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을 뿐이다.
해솔이 보고 싶을 때면 도담은 술을 마셨다.
마음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 그곳으로 자신의 밝은 모습이 전부 빠져나가 버린 것 같았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누군가에게 쉽게 빠졌고 쉽게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도담은 고백해 오는 사람들을 믿지 않았다.
(중략)
사고 이후 해솔은 이성이 아닌 감정을 따르는 것을 스스로에게 엄격하게 금지했다. 감정을 따르면 그 결과가 참혹하리라고 믿었다
그럼에도 다시 만난 그들의 관계는 여전히 순탄치 않았다. 오랜 그리움은 감정을 따르지 않겠다던 해솔의 다짐과 무관하게 그들의 관계를 감정적으로 만들었으며, 타인에게 그리고 현실에 갉아먹힌 도담은 아직 치유되지 못했다. 불안한 관계의 정점은 도담의 어머니가 그들의 연애를 알게 되면서 결국 폭발한다. 당연히 관계는 지독한 현실의 개입에 다시 파탄 나며 서로가 서로를 당기고 싶어 하는 만큼 서로를 밀어내게 된다.
이후 해솔이 소방관이 된다는 설정은 다소 흥미롭게 다가온다. 물론 이걸 해솔이 지금까지 가져오던 결핍과 연결하면 충분히 납득이 된다. 현실에 대한 무력감과 사랑하는 이를 언제나 지키지 못했다는 죄의식은 해솔에게 희생과 헌신을 인생의 가치로 삼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새로운 사람을 찾는다. 이전과 달리 이번에는 해솔도 다른 사람을 만난다. 지극히 현실적인 부분이다. 해솔과 도담 모두 현실이라는 급류에 휩쓸리기에 이전의 꿈같던 사랑과 관계보다는 끊임없이 강바닥으로 자신을 당기던 급류에서 그들을 잡아준 선화와 승주와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그들은 해솔의 사고를 계기로 다시 재회한다. 이것도 이들이 급류에 휩쓸린 것인지 아니면 급류에 빠져나온 순간 서로를 마주한 것인지는 해석의 여지가 갈릴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난 전자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후의 이야기는 강바닥에서의 재회 이후 급류를 빠져나오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해솔이 말했다.
"가자"
"어딜"
"진평에 가보자"
시간이 지나면 거친 파도도 잠잠해지듯이, 미영과 창석의 죽음 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 사건의 잔상은 여전히 가슴에 남아있지만 도담과 해솔은 어쨌든 재회를 했고 자연스레 과거를 마주하게 된다. 물론 이들은 그 과정에서 선화와 승주를 다시 급류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이들에게 도담과 해솔은 사랑을 느끼지 못했기에 잔인하지만 그들의 마음을 도담과 해솔은 공감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후의 이야기가 조금 급박하게 진행되는 것은 내가 급류에서 아쉬움을 느낀 가장 큰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는 된다. 이전까지의 내용이 모두 그들을 강바닥까지 내리꽂는 이야기였기에 다시 부상하는 일만 남았기 때문이다.
도담아, 슬픔과 너무 가까이 지내면 슬픔에도 중독될 수 있어.
슬픔이 행복보다 익숙해지고 행복이 낯설어질 수 있어.
우리 그러지 말자.
미리 두려워하지 말고 모든 걸 다 겪자.
트라우마나 우울증을 다루는 칼럼을 볼 때 가장 공감하는 부분은 극복은 스스로 가장 고통스러운 기억을 마주 볼 때 시작된다는 주장이다. 도담과 해솔도 진평으로 상징되는 과거의 상처에서 도망을 쳐왔지만, 다행히도 종장에서는 그 기억과 그 기억을 담고 있는 상대를 마주하는 결정을 한다. 이렇게 그들은 급류 속에서 수영하는 법을 배우게 된 것이다. 아마 그들은 급류에서 영원히 나오지는 못할 것이지만, 조류를 거스르며 각자의 속도로 서로를 마주 보는 삶을 살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마무리
굉장히 빠르게 읽은 책이다. 그리고 어둡고 입체적인 내용과 달리 큰 줄기는 성장소설이기에 내용적으로 헷갈릴 여지는 없다. 그리고 현재의 스스로에 많은 부분을 이입해 읽은 소설이다. 정대건 작가는 아마 우리가 영원히 급류에 휩쓸릴 것이라 저주하기보다는 도담과 해솔처럼 과거를 스스로 마주하고 자아를 바로 세울 수 있음을, 그리고 그 해답 중 하나는 나만큼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누군가 죽기 전에 떠오르는 사람을 향해 느끼는 감정.
그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사랑이란 말을 발명한 것 같다고.
그 사람에게 한 단어로 할 수 있는 말을 위해 사랑한다는 말을 만든 것 같다고
그때 깨달았어.
사랑한다는 말은 과거형은 힘이 없고 언제나 현재형이어야 한다는 걸
개인적으로 요즘 많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에게 현실이라는 급류와 성장과 사랑에 대한 갈망은 여전히 나를 앞으로 이끄는 동시에 스스로를 무너뜨릴 수 있는 가능성을 밤마다 상기시켜준다. 아마 그 큐는 과거에 대한 과장되고 가공된 기억일 것이다. 이때 이걸 했더라면, 이 사람에게 대신 이렇게 말해줬더라면 스스로의 상념은 언제나 내가 홀로 있는 시간에 찾아와 그림자처럼 가만히 나를 노려보고 있다. 마치 도담과 해솔이 밤마다 서로에 대한 그리움과 과거에 대한 후회를 동시에 마주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만 이럴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누구나 후회와 회한을 품고 어른이 되어간다 생각한다. 다만 누군가는 무너지고 누군가는 행복을 찾아나가는지에 대한 차이는 그림자가 나를 해칠 수 없다는 점과 그들을 솔직하게 마주하고 나의 생각을 합리적으로 정리해 내일을 꾸며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얼마나 빨리 깨닫는지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개츠비는 과거를 반복할 수 없다는 말에 반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문맥적으로 동일하지는 않지만 별로 안 좋아하는 대사다. 과거는 과거다. 이미 지나간 시간을 내가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미래는 내가 얼마든지 꾸밀 수 있다. 예를 들면, 매 순간 미래를 마주하는 현재를 후회 없이 살아가는 것, 그리고 급류에 허우적대는 사람이 보인다면 설령 그 끝을 모를지라도 그들의 애타는 손을 후회 없이 잡아줄 것 그리고 닥쳐오는 파도로부터 서로를 지켜줄 소중한 사람을 찾고 확인하는 것 등등 ..
지금도 그러하는 중이며 앞으로도 그것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고통을 직접 마주하고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내 전부를 바쳐 사랑할 것이다.
나를 파괴하거나 구원할 수 있는 존재는 오직 나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그럼 다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