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예기치 않은 순간에 우리를 구하러 오는 눈물에 감사한다
2025년 첫 독서는 평소 내 성향과 '전혀' 다르게 동화로 시작하였다.
언제나처럼 읽을 책을 찾아 다양한 전자책 도서관을 뒤적이던 중 한강이라는 낯익은 이름과 처음 들어보는 책 제목에 끌려 홀린 듯이 대출을 하였고, 예상보다 적은 분량에 40분 만에 완독해버렸다. 정말 자기 전에 잠깐 읽기 딱 좋은 분량과 유한 내용이었다.
눈물 상자에는 크게 4명(?)의 주연들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눈물이 너무 많아 눈물 상자라고 불리는 여자아이와 순수한 눈물을 사려는 눈물 장수 아저씨, 그리고 아저씨가 데리고 다니는 울지 않는 파란 휘파람새와 아저씨의 고객인 할아버지다.
스토리는 전형적인 동화적 구성을 가지며 그리 어려운 내용도 아니다. 눈물이 너무 많은 아이와 눈물을 산다는 눈물 장수의 만남, 그리고 눈물을 사려고 하는 할아버지를 만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아이가 너무 많은 눈물을 갖고 있는 대신 다른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눈물이 메마른 사람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오히려 핵심 주인공을 제외하고는 아이가 가진 눈물을 조소의 시선, 미성숙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눈물 장수가 눈물을, 그것도 순수한 눈물을 찾아 아이를 찾아온 것으로 작품은 처음부터 눈물에 대한 사람들의 갈망을 은연중에 보여준다.
내가 찾고 있는 건 순수한 눈물이야.
눈물 장수는 다양한 눈물을 모으고 있지만 그중에서 최고로 취급하는 눈물은 순수한 눈물이다. 동화지만 미스터리한 표현이다. 눈물은 눈물이지 '순수한 눈물'은 과연 무엇일까. 눈물 장수는 아이의 시선에서 독자들에게 순수한 눈물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자기가 울고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면서 흘리는..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이 세상 모든 이유들로 인해 흘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눈물이란다.
여기서 드러나는 순수한 눈물의 가장 기본적인 속성은 '자연스러움'이다. 인과는 존재하지만 특정한 인과는 없는, 마치 자연의 이치와 같이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감정을 순수한 눈물로 정의하고 있다고 나는 파악했다. 하지만 의외로 아이는 첫 만남에서 눈물을 흘리지 못한다. (물론 여기서 순수한 눈물이 왈칵 나왔다면 10여 페이지 만에 작품이 끝났을 것이다.
그렇기에 눈물 장수와 아이의 여정은 단순한 여행이 아닌 순수한 눈물을 찾기 위한 원정대의 성격도 여기서 부여된다. 그 과정에서 아저씨는 어른의 경험에 비추어 순수한 눈물에 대한 예시를 더 들어준다.
세상의 모든 눈물이 태어나기 전의 눈물
세상의 모든 눈물이 죽은 뒤의 눈물
세상의 모든 눈물 사이에 고인 눈물
뭔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소녀의 독백만큼이나 알 수 없는 예시이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찾은 속성은 항상성과 한시성이다. 마치 성경 구절에서 진리를 묘사하듯이,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처음이요 끝이다'와 마찬가지로 순수한 눈물은 모든 눈물의 가장 근원적인 눈물이며, 가장 눈물의 본질에 부합하기에 영속하는 눈물, 진실한 눈물임을 은유로 전달해 주는 아름다운 구절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진실되지 못한 눈물은 무엇인지 잠시 고민해 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은 눈물을 사려고 하는 할아버지와의 만남에서 '그림자 눈물'이라는 특이한 속성으로 설명된다. 눈물을 사려고 하는 할아버지는 '울기 위해' 눈물을 모두 구매하고자 한다. 한평생 울지 않고, 살아온 노인은 반사작용으로 나오는 눈물은 존재하지만(여기서는 양파 썰 때 울어요?라는 귀여운 질문으로 전제를 달아둔다.) 감정의 작용으로 나오는 눈물은 메마른 어른이다. 그이가 순수한 눈물은 아니더라도 눈물 장수가 가져온 모든 눈물을 마신 순간 '그림자 눈물'이라는 노인의 내면이 형상화된다.
어떤 사람은 눈으로 흘리는 눈물보다 그림자가 흘리는 눈물이 더 많단다.
'울면 안 돼'라는 말을 주위에서, 또는 '자신에게서' 많이 듣고 자란 사람들이지
....
그건 거짓 눈물이야.
눈치가 빠른 사람은 알 수 있겠지만, 할아버지는 감정을 억누르고 약해 보이지 않게 보이기 위해 스스로를 숨겨온 전형적인 현대인이다. 그렇기에 할아버지도 있는지도 인지 못했던, 스스로의 억압된 자아가 그림자 눈물의 형태로 형상화된 것으로 나는 해석했다. 이러한 속성 탓에 눈물 장수에 의해 세상에 드러난 할아버지의 그림자 눈물은 할아버지의 고민과 달리 어둠 속에 숨어 계속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저씨 할아버지는 울고 있지 않은데요?
그래.. 그림자만 울고 있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물 장수의 도움으로(정확히는 자신이 가진 눈물을 모두 먹인 것이지만) 할아버지는 평생을 눌러온 자신의 감정을 온전하게 쏟아내게 된다. 단순한 슬픔, 최근의 기억이 아닌 할아버지가 눈물 상자처럼 어린아이이던 시절부터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낸 기억 그리고 기쁨의 눈물까지 모든 감정을 쏟아낸다.
다만 여기서 특이한 점은 할아버지의 마지막 눈물은 기쁨의 눈물이자, 자신의 꿈에 대한 눈물이라는 점이다. 피리를 불고 싶다는 할아버지의 마지막 꿈을 듣고 할아버지의 피리 소리를 들으며 소녀는 그때 '순수한 눈물'을 '자연스럽게' 흘린다.
이 부분에서 나도 조금은 눈물을 비추긴 했다. 이게 순수한 눈물일지는 모르겠지만, 나와 소녀가 눈물을 흘린 동기에서 작가가 전하고 싶은 중요한 메시지가 전달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감정은 기본적으로 내면적 속성을 지닌다. 하지만 동시에 감정은 타인의 영향을 받으며 타인에 따라 증폭되거나 감쇄되는 속성을 가진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과거를 돌이켜보면 분명히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써 감정을 숨기거나 아니면 좋은 사람들 덕에 솔직히 감정을 털어놓은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자본을 위해서이든 관계에서든 두려움 때문이든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그림자 눈물의 감옥에 가둔 체 무채색으로 세상을 덮어가는 사람을 위한 부분이 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한강 작가는 스스로의 감정에 소녀의 순수함처럼 솔직해지기를, 그리고 타인의 아름다운 감정을 세속적으로 이용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모두의 '치유'를 위해 활용해 주기를 동화의 형식을 빌려 호소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 우리의 감정을 잘 모른다. 열길 물길은 잘 알아도 한치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이 부분에 대한 동화적 설명은 순수한 눈물에 대한 눈물 장수의 마지막 설명으로 갈음된다고 생각한다.
글쎄다.. 순수한 눈물이란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는 눈물을 말하는 게 아니야.
모든 뜨거움과 서늘함, 가장 눈부신 밝음과 가장 어두운 그늘까지 담길 때 진짜 빛이 어리는 거야.
한마디로 순수한 눈물은 모든 감정과 경험의 속성을 공유한다. 즉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모두 억압받지 않아야 하고 모두가 순수한 눈물의 속성을 품고 있는 느낌들이다. 이후의 줄거리는 동화답게 흐지부지 끝난다. 눈물 장수 아저씨와 할아버지 소녀는 모두 순수한 눈물을 마주하고 작별을 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운은 남는다. 자신의 눈물을 부끄러워했던 소녀는 눈물의 의미를 다시 돌아보게 되고 이것은 소녀와 할아버지에 비추어 지난날 우리의 눈물과 감정을 투사한 우리 독자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마무리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주변에서 한강 작가의 작품관을 대략적으로 설명 해달라는 요청을 종종 받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작품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로 '상처'와 '치유'를 제시한다.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타 대표작인 채식주의자나 소년이 온다 등에서는 상처를 찾기 쉬운 반면 눈물 상자에서는 치유에 대한 사유가 더 돋보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굳이 현대인만의 특징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상처와 슬픔을 가슴속에 안고 산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 상처에 대해 궁금해하지도, 애도하지도 않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는 것 같다. 그것이 사회에서 비롯된 상처이든 내 내면의 상처이더라도 사회와 통념이 모두를 건조하고 차갑게 대하게 우리를 내모는 것 같아 가끔씩 마음이 아릴 때가 있다.
그런 순간에 적어도 나 자신의 눈물마저 매몰차게 외면하지 않기를, 나아가 타인과 사회의 눈물을 보듬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소녀가 우리에게 전해준 것이라 믿어보며 짧은 리뷰를 마무리 지어본다.
그럼 다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