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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장 이상헌 Dec 21. 2017

스타트업, 그리고 사람

성공하는 스타트업이 되기 위한 인력운영에 대한 고민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나는 스타트업 창업자는 물론, 초기 멤버도 아니었음을 밝혀둔다.


스타트업의 성장주기를 표현할 때 자주 활용되는 혁신수용모델(Inoovation Adoption Curve)에서 볼 때, 혁신자(Innovators)와 초기수용자(Early Adoptors) 층을 지나 초기 다수 수용자(Early Majority) 단계에 진입한 정도의 어느정도 자리를 잡은 스타트업에 경력직 멤버로 합류하여 느꼈던 점을 기술한 것이므로 다양한 이견이 있을 수 있다.


Innovation Adoption Curve, Everett Rogers


스타트업은 창업자를 비롯한 핵심 기술(혹은 아이디어)을 보유한 멤버 일부를 제외하고는 통상 해당 비즈니스 혹은 창업자에 대한 로열티가 높고, 큰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는 멤버로 이루어진다.

많은 스타트업은 이 초기 멤버들의 열정의 크기에 따라 성패가 좌우된다(비즈니스 자체의 사업성은 기본).

내가 합류했던 스타트업 역시 초기 멤버들의 열정이 엄청난 조직이었고, 그들 열정의 크기 만큼이나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성장의 속도와 크기 만큼이나 빠르게 몸집을 불려나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스타트업이 사업 초기 존재를 증명하는 단계를 넘어 이른바 ‘순항고도’에 오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결론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스타트업의 경쟁력은 수평적인 의사소통과 빠른 의사결정, 그리고 실행에 있다고들 한다.

그러나 군대를 통해 재사회화를 거치고, 학교와 기업 등의 하이어라키가 명확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것은, 구성원 모두가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경계해야만 할 수 있는 대단히 고차원적(?)인 그것이라고 하겠다.


모든 스타트업은 성장과 함께 조직이 세분화되고 인원이 늘어나기 마련이다.

이는 곧, 로열티의 시대와 전문성의 시대의 공존을 의미한다.

사업의 인큐베이팅부터 시작해 모든 열정을 바친 초기 멤버와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합류한 경력직 멤버 간 시각의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초기 멤버 중에서도 사업의 성장과 함께 본인의 전문성을 함양하며 로열티와 전문성을 모두 갖춘 인재로 성장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전문성의 함양보다는 지금까지의 성공을 견인한 본인의 방식을 고수하는 방식으로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 공존의 시대에 리더는 선택을 해야한다.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초기 멤버들에게 충분한 보상과 함께 이별을 통보할 것인가.

아니면 그들을 정리하지 않고 새로운 멤버들과 함께 계속 끌고 나갈 것인가.


내가 속했던 스타트업은 후자를 선택했다(고 본다).

초기 멤버들은 세분화된 각 파트의 리더가 되었고, 이들 중 많은 수는 본인이 갖춘 역량보다 더 전문성을 가진 인력을 매니징 해야하는 책무까지 안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전문성이 부재한 젊은(혹은 어린) 리더는 리더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했고, 전문성을 가진 경력직은 겉돌았다.

팀원의 눈치를 보게된 리더는 더욱 사내정치에 매진했고,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한 경력직의 퇴사는 계속 되었다.

회사는 직원 교육에 인색했고, 소프트 랜딩을 위한 교육을 요구하는 경력직에 ‘언제부터 우리가 하나하나 알려주는 조직이었냐’며 ‘이곳은 본인이 스스로 찾아먹는 사람만 살아남는 곳’이라는 답변을 시전하였다.

이러한 인력운영 기조를 통해 내가 속했던 그 조직은 초기 멤버의 전문성 함양과 경력직의 스타트업 문화 이식이 요원한 곳으로 굳어져갔다.

늬 내가 누군지 아니?

그리고 여기에서 한 단계 더 최악으로 나아가는 길은 치열한 인재검증 없이 이름값 만으로 임원급을 영입하는 것이다.

비즈니스의 눈부신 성장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고, 많은 투자를 유치하게 된 회사는 세분화된 조직의 임원으로 ‘~ 출신’을 영입하기 시작했다.

초기 멤버와 경력직 간의 부조화로 확실히 뿌리내리지 못한 ‘스타트업적 기업문화’는 이름값 임원들로 인해 초토화되기 십상이다.

수평적인 의사소통과 빠른 의사결정은 의전이라는 이름 아래 새로운 레이어가 계속 생겨났으며, 실행은 각 조직의 책임 뒤에 숨어 속도와 정확성을 잃어갔다.


마케팅 매니저로 입사했던 나는 일부 초기 멤버들의 텃새에 좌충우돌 스타트업 적응기를 쓸 수 밖에 없었고, 팀장이 되고 나서는 이름값 임원의 현실과 괴리된 요구와 스타트업 답지 못한 업무지시에 시달리다가 결국 퇴사하게 되었다.


‘나 이렇게 힘드러쩌요’라고 이야기 하고 싶은게 아니다.

위에 언급한 스타트업에서 보낸 1년 9개월이란 시간이 내 커리어에서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고 최선을 다했던 시간이었다.

내게 많은 기회를 주었고, 구성원들의 열정에서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다.

그렇게 애정하던 조직이 더 잘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이들의 열정으로 성장하고 있을 스타트업들이 인력 운영에 대한 중요성을 깊이 새기고 성공의 길로 올라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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