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인지), 기억, 말하기(인출)에 모두 중요한
운전을 배울 때, 우리는 시동과 출발, 주행, 주차를 여러 단계를 나누어서 배운다. 후진 주차 공식처럼 패턴화 된 방식으로 여러 가지 동작을 익히게 된다. 이러한 것을 여러 가지 상황에서 반복하여 숙달해야 하기 때문에 운전에 익숙해지는데 보통 몇 개월, 길게는 1년이 걸린다.
백미러와 사이드 미러 확인, 시동과 주차한 곳에서 빠져나가기, 도로에서 차간 거리 유지, 차선 변경, 고속도로에서 합류하기, 끼어들기, 신호등과 표지판 보면서 운전하기, 차폭감을 익힌 후 좁은 길 통과하기, 주차권이나 통행권 뽑기, 후진주차 등등. 생각보다 익숙해질 것이 많다.
운전학원에서 모의 연습도 하고 해야 할 동작을 정리한 공식을 배우지만, 실제 운전자가 면허를 딴 후 부딪히는 현실은 훨씬 다양하기 때문에 적응과 숙달의 기간이 필요하다.
차가 100km로 달리는 도로에서 차선 바꾸기의 경우만 해도 여러 가지 동작이 필요하다. 고속도로에서 초보가 차선을 바꾸는 일은 진땀 빼는 일이다. 차선을 바꾸지 못해서 IC를 빠져나가지를 못해서 강남에서 경부 고속도로를 타고 서울에서 대전까지 갔다는 초보 이야기를 들은 것이 있다. 눈으로 옆에 차를 확인하고, 손으로 핸들을 꺾고, 발로 적당히 옮기는 차선의 앞 뒤 차 간격에 맞추어서 속도 조절을 해줘야 한다. 이렇게 여러 동작이 모여 차선 바꾸기 하나의 패턴이 완성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쉬워진다. 라이오를 들으면서 옆 사람과 대화하면서도 할 수 있게 된다. 여러 동작을 하나의 패턴 덩어리로 계속 반복하면, 점점 더 빠르고 정확하게 할 수 있다. 이를 청킹(Chucking)이라고 한다. 스포츠 선수들은 스윙 동작을 하나로 청크화하고, 게임 플레이어는 청킹으로 유닛 컨트롤을 빠르고 정확하게 할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도 일련의 동작이나 생각 또는 정보를 하나의 단위로 처리함으로써 더 효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우리의 뇌는 한 번에 너무 많은 정보를 한꺼번에 다루지 않는다. 우리 몸의 동작기억은 용량은 제한되어 있다. 그래서, 정보를 이해하고 기억하기 위해서 청크화를 사용한다. 예를 들어, 전화번호를 01043219876로 기억하는 대신에, 010, 4321, 9876로 세 부분으로 나눠서 기억한다.
언어를 듣고(인지), 기억하고, 말하는(인출) 과정도 마찬가지이다.
긴 문장을 들었을 때도, 몇 개의 청크단위로 구분하여 이해하고 기억한다.
"It's no big deal." (별일 아니야.") - 한 개의 청크로 이루어져 있다.
It's a difficult time / But it's no big deal / when you look back. - 세 개의 청크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 힘든 거는 / 지나고 나면 / 아무것도 아닙니다.)
단어 하나하나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해도, 청크 단위 의미와 맥락을 이해한다. 의미 없는 청크 단위를 곧 잊어버린다. 기억을 사용하고 말할 때도 청크 단위로 불러와서 연결하여 말을 만들면서 대화를 이어간다.
그래서, 청킹 단위 중에 자주 쓰는 패턴을 모아 책이나 동영상 교재가 만들어진다.
Would you like to (워드 유 라익 투, ~하시겠어요?) - 네 단어가 하나의 패턴, 한 개의 청크
なければならない (나케레바나라나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 - 8음절이 하나의 패턴, 한 개의 청크
청크 단위의 패턴을 많이 익힐수록 듣기와 말하기가 쉬워진다. 물론 패턴을 많이 익히기만 해서는 듣기와 말하기가 잘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익숙하게 듣고 말할 수 있는 패턴이 많아질수록 편해진다.
청킹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되는 듣고 이해하고, 기억하고, 인출하여 말하는 단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학공부를 하게 되면 엄청난 비효율을 초래한다.
듣기
청킹을 사용하면 문장을 빠르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 긴 문장도 쉽게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다. 청킹을 활용하지 않으면 개별 단어나 음절에 집중하게 되어, 전체적인 의미를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생긴다. 부분적인 한글 의미나 해석이 끼어들어도 마찬가지이다.
긴 문장을 이해하는 것은 청킹으로 요약된 의미들을 연결하고 종합해서 이해하는 과정이다. 때로는 앞 뒤 문장에서 의미도 연결해서 이해한다. 빠르게 의미를 연결하지 못하면, 이해가 어려워진다.
따라서, 외국어 듣기 연습은 점점 긴 문장, 즉 여러 개의 청크 단위로 이루어진 문장을 이해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청킹으로 구분하여 요약된 내용을 연결하여 이해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 청킹으로 긴 문장의 처리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다.
기억하기
청킹을 사용하면 많은 정보를 쉽게 기억할 수 있다. 정보를 작은 덩어리로 나누면, 머릿속에 잘 남는다.
청킹 없이 단어나 개념을 개별적으로 기억하려고 하거나, 긴 문장을 통재로 기억하려고 하면 기억 용량의 한계가 온다. 서번트 증후군 환자처럼 사진 찍듯이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어렵다. 독한 사람은 영화나 드라마를 수십 번 반복해서 긴 문장도 줄줄 다 외워서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림기억이나 위치기억으로 통째로 기억할 수 있지만, 나중에 상황에 맞게 인출하여 변형이나 조합하여 사용하기 어렵다. 나누어서 의미를 기억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쉐도잉 같은 방법으로 어학을 할 때, 청크 단위 이상의 길이의 문장을 기계적으로 통째로 외울 필요가 없다. 따로따로 의미를 이해하고 기억하거나 나중에 자신이 사용할 부분만 기억해도 된다. 우리의 목적은 대사를 외우는 것이 아니다. 설사 달달 외웠다고 하더라도 그 대사를 사용할 똑같은 상황을 만나기 힘들다. 긴 문장의 의미 있는 부분을 청크 단위로 구분하고, 나중에 사용하고 싶은 부분만 집중하여 기억하면 된다. 주어진 문장을 기계적으로 반복하지 않고, 자신에 맞게 여러 가지로 응용한다면 뇌에 자극을 주어 더 효과적으로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반복은 우리 뇌가 싫어한다.
말하기
청킹을 사용하면 생각하는 속도가 빨라진다. 그래서 말하기가 더 쉬워지고 자연스러워진다. 쉐도잉을 적절히 끊어서 연습하면 효과가 크다. 위에 말한 것처럼 청크 단위 앞 뒤를 살짝 변형을 하면 더 좋다.
청킹을 활용하지 않으면, 문장을 하는 단어를 가지고 개별적으로 구성해야 하므로 말하기 속도가 느려진다. 만약, 한글 의미까지 생각하여 말한다면 한국어와 외국어 사이의 언어전환 시간이 더해지게 되므로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더듬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청킹 단위에서 자연스럽게 사용되는 단어 조합을 인출하지 사용하지 않으면, 머릿속에서 작문을 하여 부자연스러운 표현을 하게 된다.
'패턴 책을 거의 외웠는데, 쉐도잉을 오래 했는데 듣기와 말하기에 도움이 안 된다'라는 생각이 들면 다시 한번 듣기, 기억, 말하기 과정에서 청킹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좋겠다. 청킹은 언어를 구조화하고 이해하며 기억하고 사용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청킹을 올바르게 활용하면 언어 학습과 사용이 더 효율적이고 자연스러워진다.
청킹은 엄청난 정보를 매일 귀와 눈으로 받아들이는 우리 뇌가 효율적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이다. 패턴공부와 쉐도잉을 열심히 했는데 듣기와 말하기가 늘지 않는다면 다시 생각해 보자. 운전 공식처럼 기계적으로 외우기만 하고, 서번트 증후군처럼 위치기억이나 사진기억으로 외우고, 한글 해석을 연결하여 외운 것은 아닐까? 독하게 반복했으면 암기는 가능했지만 유연하고 효율적인 재사용이 어려울 것이다.
청킹을 이해하고 올바르게 활용함으로써 언어 학습이 개선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