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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브런 Dec 11. 2023

"친구야, '백두대간' 등산을 시작했다고?"

나이 들어도 활기찬 친구들 부러워

며칠 전 고등학교 동창 송년회가 있었다. 코로나 이전에 만나고 5년 만이다. 송년회 때마다 50~60명이 모였는데 이번엔 예상보다 적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만 50년, 카톡으로는 서로 참석하겠다는 사람이 꽤 많았다.   


졸업 당시 5백여 명의 동창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한 친구는 다소 썰렁한 분위기를 반전시키려는 듯 "여기 모인 33명은 3.1 운동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숫자와 같다"라며 코믹한 멘트를 날렸다.     


오랜만에 열린 동창회 반갑지만 안 보이는 친구들 보고 싶어


동창들은 하나같이 "또 한 해가 지나고 다가오는 세밑이 덧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이 들수록 동창 모임이 소중하게 느낀다"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 앞으론 친구들 얼굴 보는 것도 더 힘들 거라는 누군가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모처럼 열린 송년회 분위기를 대변하는 말이다. 그 말에 동화된 듯 다들 테이블에 앉은 친구들을 살폈다.    

  

어떤 친구는 나보다 더 성미가 급한지 불참한 친구들에게 직접 전화를 건다. 그러나 답이 없다. 그들은 아마 지금 이 시간에 왁자찌걸하고 있다는 걸 알기에 애써 잠수한 것이리라.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친구들이 송년회에 나타나지 않으면 두 가지다. 하나는 그럴듯한 선약 때문이고, 또 하나는 몸이 불편해 못 오는 경우다. 바쁜 사정이라면 다행이다. 그런데 건강이 여의치 않으면 왠지 불안하고 걱정이 앞선다.


실제 그렇다. 모일 때마다 한바탕 웃음바다를 일구던 친구 몇이 몇 년 새 안식을 찾아 멀리 떠났다. 오늘 띠라 그 친구들의 빈자리가 크게 보인다. 우리 곁을 떠나는 삶을 자연스레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우리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때로는 친구의 얼굴에서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오늘 동창회가 그런 시간이다.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는 친구들이 노인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팔팔하다. 피부도 팽팽하고 어딘가 자신감이 묻어나고 정신은 더 건강해 보였다. 

    

이날 가장 돋보이는 친구는 지난해부터 백두대간 등산을 시작한 친구다. 늦은 나이지만 '버킷리스트'에 올리고 무조건 도전했다는 그의 백두대간 모험 이야기는 듣는 것만으로도 벅찬 감동이었다.  

 

한 친구는 "베이비부머 1세대로서 달려온 지난 세월이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며 거기에 자부심을 가지자"고 말했다. 오늘 모인 동창생들은 그 시절 동고동락한 친구들이 보고 싶어 한걸음에 달려온 것이다.    

  

하지만 만나면 젊을 때와 달리 친구들의 화제는 별반 없다. 아무리 동창이라도 오래 간만에 만나 스트레스를 주거나 호불호가 있는 말에 조심하는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절감하는 부분이다.   

  

50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학창 시절 사귀던 친구들과의 우정이다. 졸업 이후에도 절친들과만 연락하고 지낸다. 모임에 그 시절 가까이한 친구가 없으면 자리를 금방 떠나는 친구를 여럿 봤다.      


나도 그런 때가 있었다. 그런데 나이 들어 친구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친하지 않았더라도 활달한 친구들에게 어딘가 호감을 느낀다. 예전엔 그렇지 않았다. "왜 저리 설치지?" 반감을 가졌다.   

   

나이 들어도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친구들 부러워   


이제는 호들갑스러워도 일일이 인사하는 친구들이 부럽기조차 하다. 그들은 나처럼 한자리만 지키는 게 아니다. 친구들이 모두 자기를 보러 온 것처럼 따뜻하게 반긴다.

  

그들의 넘치는 열정과 에너지가 내 눈에는 천성적인 것이 아니라 졸업 후 사회생활을 하면서 터득한 지혜로 보인다. 학교 다닐 때는 그런 면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동창회에서 내가 좋아하는 '인싸'다. 가만 보면 이들이 동창회 분위기를 이끌고 있다. 상갓집이나 결혼식에도 부지런히 찾아다녀 친구 간의 우정도 남다르다.  

    

공부 좀 한 범생이들의 존재감은 온데간데없고 재미도 없다. 우리들이 수호전에서 노지심이나 이규는 기억에 남아도 송강 좋다는 사람을 못 보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얼마 전 한 세미나 모임에서 서로 처음 만난 사람들과 인사하고 명함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에게 행운상을 주는 이벤트를 접했는데 내겐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동창회에서 예전에 몰랐던 친구의 면모를 적극적으로 발견하는 것이 새로운 즐거움이다. SNS에서 나누는 안부와 달리 직접 만나 소통하는 시간이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외국에 있는 동창에게 송년회 사진을 보내주자 즉시 답이 왔다. "친구들 사진만 봐도 즐거운데 직접 만나 얘기를 하니 너희는 정말 좋겠다!" 

 

귀갓길 송년회에서 만난 친구들을 떠올린다. 내게 다가와 처음 말을 거는 친구가 정겹고 기억에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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