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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브런 Dec 16. 2023

아들 결혼식 후기

신랑이 결혼식에서 엎드려 큰 절하는 거 글쎄?


12월 초 아들이 결혼식을 올렸다. 1년 전 예식 날짜를 잡을 때만 해도 시간이 충분하다고 여겼는데 쏜살같이 다가왔다.


결혼식 당일 하객들을 맞이하는 순간 결혼식이 오늘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실감했다. 그리고 예식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우선 결혼식을 무사히 치른 것에 혼주로서 하객과 지인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아들과 며느리도 그간 고충이 많았을 터 지금 보니 대견하다.  


결혼식 이후 청첩을 돌릴 때처럼 이런저런 답례 인사 등 마무리할 일이 적지 않았다. 또 아이들이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니 이제야 조금 숨 돌리는 여유를 갖고 복기하고 있다.


결혼식이 임박해 몸과 마음이 부산한 것은 자식이나 부모 모두 마찬가지다. 우리 부부는 결혼식은 신랑신부의 견해를 따르고 검소한 예식을 바랐다.  


나중에 알았지만 신랑신부는 결혼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에 각자 반반을 부담하고 예단과 혼수 등도 과감히 절약해 자기들 방식으로 준비했다.  


확실히 예전의 우리들이 결혼하던 과거와는 풍습이 많이 다르고 아이들은 무엇보다 형식적이며 과다한 비용이 드는 결혼식을 거부했다.


이번 아들의 결혼을 지켜보며 요즘 젊은이들의 고민과 애로를 들을 수 있었고 이들이 바라는 결혼문화도 잠시 살필 수 있었다.


아들이 결혼하는데 부모입장에서 돕거나 관여한 것은 별로 없다. 특히 경제적인 지원을 많이 해야 하는데 그럴 형편이 안돼 미안한 마음이다.  


인륜지대사답게 결혼식에는 준수할 형식이 있다. 요즘에는 '주례 없는 결혼식'이 대세다. 주례가 있는 결혼이 되레 주목받는 세상이다.  


애들도 결혼식은 주례 없이 진행하고 우리 부부는 특별히 신경 쓸 게 없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속으로 주례 있는 결혼을 기대하고 있었다. 평소 존경하는 나의 멘토를 아들 결혼식에 모시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신랑신부 둘이 결혼식을 기획하고 진행한다는 말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 말에 손을 더는가 했다. 아내가 화촉점화 정도만 참여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결혼을 한 달 앞두고 예식 행사가 어떤지 궁금했다. 그런데 아들이 결혼식에서 내게 성혼선언문 낭독과 아버지 덕담을 갑자기 부탁하는 것이다. 덕담은 축사를 대신하는 것이란다.


모든 것을 자기들이 진행하기에 혼주가 따로 준비할 것이 없다는 말과는 달랐다. 주례가 없는 대신에 축사를 하는 아버지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말에 그만 승낙하고 말았다.  


과거 몇 번 주례 선 경험이 있지만 아들과 며느리에게 전하는 덕담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무슨 말을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내 경험을 들려주기로 했다.  


덕담은 한마디면 족했다. 부부가 존댓말을 사용하면 서로에게 훌륭한 멘토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이는 내가 평생 지켜온 생활 신조이기도 하다.


하객들은 "신랑 아버지가 주례 아닌 주례를 했다"면서 박수를 보냈다. 결혼식이 끝나고 애들은 "아버지 축사가 결혼식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기여도가 매우 높았다"라고 말해 웃기도 했다.


개인적인 견해지만 주례 없는 결혼식이 대세가 된 것은 모실 주례가 없는 게 아니라 천편일률적인 주례사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혼식은 주례사 대신에 특색 있는 프로그램이 많을수록 바람직하다. 이번 결혼식에서 아들 친구들이 단체로 부르는 축가열창은 친구의 사랑과 우정을 담아 눈길을 끌었다.


한편 결혼식에 앞서 아들에게 신랑이 양가 어르신들에게 바닥에서 하는 큰 절은 미관상 좋지 않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름 큰 절 대신 정중한 목례를 부탁한 것이다.  


이것은 나뿐 아니라 결혼식을 많이 지켜본 주변 지인들도 지적하는 사항이다. 실제로 신랑신부가 양가 어르신들에게 목례로 인사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바람과 달리 아들은 처가댁은 물론 우리 부부에게도 엎드려 큰 절을 올리고 말았다. 결혼식 문화를 쉽게 바꾸면서도 큰 절 대신 목례 하는 것은 바꾸기 어려웠나 싶다.


물론 집에서 신랑신부가 어르신들에게 인사드리는 것은 큰 절로 하는 것이 예법에 맞다.  


결혼식에서 신랑신부가 양가 어르신들에게 하는 인사는 목례만 해도 예법이나 모양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결혼식을 모두 마친 지금, 신랑신부에게 중요한 것은 앞으로 건강하고 열심히 사는 것이다. 그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며 부모와 하객들이 바라는 염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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