댕댕이한테 무관심했다보다..이제 스트레스 그만
불만을 터트리는 댕댕이
우리 집 댕댕이 '복순이'는 마당에 있는 자기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복순이가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던 모양이다. 평소 안 하던 이상한 행동을 했다.
댕댕이 집 바닥에 깔아준 스티로폼을 며칠째 산산 조각내고 보란 듯 집 앞에 내놓기 시작했다. 바람에 휘날리는 휴지나 봉지도 끌어다 찢어 분풀이도 했다.
밤에도 예민한 탓인지 자주 짖는다. 인기척이 없는데도 허공에 대고 한참 동안 짖기도 한다. 이 또한 불만의 표시다. 어떨 때는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다.
이런 상황을 전해 듣고 큰 애가 댕댕이를 일정시간에 산책과 운동을 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댕댕이도 사람처럼 불만을 행동으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복순이에게 조금 더 배려하라는 충고였다.
마당에 묶어 키우는 복순이가 배변하면 바로 치워준다. 사료와 물 주는 것도 내 몫이다. 가끔 내 대신 아내와 아버지가 케어할 때도 있다.
산책하지 않으면 복순이는 자기 집 앞에 배변할 수밖에 없다. 목줄을 최대한 늘려 먼 곳에서 일을 본다. 본능적인 행동이다. 용변을 제대로 할 수 없으니 얼마나 답답할까.
주차장을 만든다고 벽을 허물어 우리 집 마당은 지나가는 사람이 볼 수 있는 구조다. 거기에 댕댕이 집도 노출돼 있다. 이러한 환경도 댕댕이한테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
댕댕이는 집 앞에 얼씬거리는 길고양이를 경계한다. 하늘을 나는 까치와 전깃줄에 있는 비둘기도 호기심으로 줄곧 주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댕댕이는 골목 사는 사람들과 택배 오는 사람들과 잘 지내고 있다. 서로 자주 보며 얼굴 아는 사이가 된 것이다.
골목에 처음 오거나 낯선 사람이 오면 복순이는 바로 짖는다. 세네 번 계속 짓으면 이상한 사람이 출연했으며 골목 사람들이 머리를 내밀며 이를 지켜본다.
특별한 이유 없이 요즈음 댕댕이 산책을 방치하다시피 했다. 스트레스가 쌓이다 보니 이런저런 사고와 행패를 부리고 있다.
어제 오랜만에 복순이 목줄을 잡으니 난리다. 애타게 기다리던 산책을 한다는 걸 직감한 것이다. 주체할 수 없는 힘으로 앞을 치고 나간다. 나를 끌고 가다시피 한다. 줄을 놓치면 자칫 넘어질 판이다.
골목을 나서 아버지가 다니는 경로당 가는 길을 따라가면 야트막한 산길이 나타난다. 지금 초입에 보수공사를 벌이고 있어 약간 우회해서 올라갔다. 복순이도 가는 길이 익숙한지 여유롭다.
산에 오르면서 참았던 배변을 한꺼번에 하는 것 같았다. 소변은 얼추 십 여번 흔적을 남겼다. 복순이는 흙에서 무언가를 찾으려는 듯 연신 땅에 코를 댔다.
'복순이'와 함께 하는 행복
한 시간 정도 산책을 하고 귀가하니 댕댕이가 조용하다. 이제야 복순이 본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다. 모처럼 불만과 스트레스를 풀어 행복하다는 표정이다.
이렇게 매일 조금씩이라도 산책을 시켜 주었어야 했는데 내가 무심했다. 댕댕이한테 괜한 짓을 한 것 같고 미안하다.
산책을 하면 복순이만 좋은 게 아니다. 사실 나도 여러모로 이롭다. 함께 외출하면서 느끼는 정서적 유대와 공감은 특별한 경험이다. 운동하는 즐거움은 덤이다.
복순이가 우리 집에 온 지 1년 반이 조금 넘었다. 적적해하시는 아버지, 반려견을 키워보고 싶다는 아내를 위해 후배가 운영하는 동물병원에서 데려온 것이다.
처음 집에 데리고 왔을 때 어리고 귀여웠던 복순이를 떠올렸다. 그때 느꼈던 감동의 순간을 잠시 망각한 것 같다.
이제 성견으로 자라 한 식구가 됐는데 복순이한테 소홀한 감이 없지 않다. 복순이를 더 보살피고 격려해 주어야겠다.
우리 집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복순이 이름처럼 집 앞에 있는 복순이한테 시작되는지 모른다.
이참에 월동대비해 댕댕이 집 바닥에 따뜻한 모포를 깔아주었다. 이를 보고 골목에 사는 사람이 지나치며 한마디 했다.
"강아지가 오늘따라 행복해 보이네요. 올 겨울은 춥지 않겠네요. "
이 또한 복순이를 격려하는 말로 고맙게 들렸다. 복순이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