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남성들이 가사일 돕는다고 보내온 문자들..박수를 보냈다
나는 70살인데, 나이가 들면서 점차 바뀌는 것이 한둘이 아니다. 가끔은 전보다 소심해지는 것 같고, 나도 모르게 쓸데없는 생각이 많아지기도 한다. 이럴 때 ' 실수'를 경계해야 한다. 특히 아내에게 실수로라도 잘못하면 곱빼기로 푸대접당한다.
내 경우에는 아내가 무엇을 하고 싶다고 의사를 표시하면 무조건 손을 들어주려고 하는 편이다. 일단 내게 말을 거는 건, 내 의견과 나를 인정해 주려는 제스처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아내 말에 다 동조할 수 없지만 듣는 척도 열심히 한다. 이건 따로 훈련과 인내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상대의 말을 귀담아 듣는 '경청'은 우리 부부가 오래 평화롭게 사는 지혜이기도 하다.
은퇴하기 전까지 '마초'같이 지낸 친구들은 요즘 친구들 모임에서 외롭고 어딘가 우울하다. 집에서 받는 대접도 시원치 않아 다소 안타까워 보일 때도 있다.
그런 친구들은 만나는 친구들과도 자연 멀어진다. 그런 경우 친구를 배려하거나 공감하는 데에도 인색하기 때문이다. 이는 은둔과 고립을 자초하는 것이다.
친구들 간 모임도 이제는 부부가 함께 하려고 노력한다. 말처럼 쉽지만은 않지만, 아내를 인정하고 배려하고 함께 하려는 시도이다. 요즘 세태가 이렇게 변해가고 있다.
나 같은 베이비부머들은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끼어 살았다. 이런 처지의 공허함을 비슷한 친구들이 모여 서로 위로받기 원한다.
그런데, 나처럼 집안일을 도맡아 하지는 않더라도, 아내 일을 돕는 친구들이 요즘 제법 늘고 있는 것 같다. 예상치 못한 현상이지만 반가운 소식이다.
한 친구는 매일 설거지는 기본이고 요즘 자신이 마늘 까는 걸 전담하고 있다고 했다. 얼마 전 양파와 채소 다듬는 일을 시작한 친구는, 잣을 까는 도구를 이용해도 애를 먹었다며 경험담을 들려줘 웃었다.
오늘 아침에는 친구가 새벽부터 김장하고 있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사진 속 김장양념 속과 배추가 먹음직스러웠다. 이에 다른 한 친구는 자기도 아침에 아내를 돕는 '머슴일'을 했다고 화답했다.
나 또한 아내 돕는 일이라면 뒤지지 않는다. 한때는 아내를 너무 챙긴다(?)고 친구들한테 눈총을 받기도 했다.
나를 경원했던 친구들이 이제는 대놓고 아내일을 돕고 있다고 자랑하고 있으니 상황이 역전됐다는 생각이 들어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나는 그들에게 응원하는 박수를 보냈다. 친구들이 드디서 집에서 자기 역할,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아 보람마저 느끼고 있다.
한편 지난주에 아내와 그야말로 ' 번개김치'를 담갔다. 예정에도 없이 알타리김치를 뚝딱 만든 것이다. 금방 만든 것인데도 그런대로 맛이 들어 그것으로만 밥을 먹기도 했다.
그런데 아내가 이번 주말 김장을 하시겠다고 '명'을 내렸다. 이미 만든 양념 속이 있으니, 절인 배추가 주말에 배달 오면 작업을 하겠다는 것이다.
김장배추는 대략 20kg이란다. 생각해 보니 집에서 담그는 김장은 몇 년만인 것 같다. 오랜만이라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나는 벌써부터 마음의 준비를 했다. 우선 주말 바깥약속을 잡으면 결코 안된다. 그래야 아내에게 발언권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김장을 한 뒤엔 슬그머니 이렇게 말할 작정이다.
"여보, 김장 한 김에 오늘 맛있는 수육도 김치와 함께 먹었으면 좋겠어요.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