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 챙기는 기념일에서 노년들이 활용할 지혜
오늘 아침에 아내가 내 손에 조그만 초콜릿 한 개를 살며시 쥐어주었다.
"이게 뭐야?"
"밸런타인데이 선물이에요."
"그래?"
나는 선물을 보고서야 오늘이 '밸런타인데이'라는 걸 직감했다.
아내의 초콜릿 선물에 멋쩍었지만 기분은 묘했다. 선물이라기보다 '따뜻한 마음'으로 읽혔다.
사실 우리 세대는 젊은이들처럼 밸런타인데이를 즐기지 않는다. 아니 즐기지 모른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 기념일을 모르고 자라고 의미에도 관심이 없었다.
생일과 결혼기념일도 그렇다. 젊은 시절 생업에 바빠 제대로 기념일을 챙기지 못했다. 자신과 가족들의 생일을 기념하고 함께 식사라도 축하한 것도 비교적 근래의 일이다.
우리는 되레 명절이나 제사를 지키는데 익숙했다. 개인 일상보다 전통행사가 우선이었다. 하지만 전래되는 명절도 점차 축소되거나 없어지는 경향이다.
밸런타인데이를 생각하면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다. 20년 전 취업상담원 임시직으로 일할 때였다. 상담분야가 그렇듯 남성보다 여성이 많았다.
내가 근무하는 곳도 젊은 남성이 적었다. 밸런타이데이가 되면 젊은 여성들이 젊은 남성들에게 초콜릿 공세를 폈다.
남성들은 선물에 당황하면서도 반가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젊은 직원들은 그런 기념일을 재미 삼아 즐기고 있었다. 기념일 문화는 직장 분위기를 밝게 하는면도 있었다.
반면에 나를 포함해 나이 든 직원들은 밸런타인데이가 젊은이들의 전유물인양 지켜보며 씁쓸했다. 이때 알게 모르게 느낀 소외감은 '문화충격'으로 기억하고 있다.
지난해 밸런타인데이에는 경로당에 나가시는 아버지가 초콜릿을 가져오셨다. "당뇨로 단 것을 피하시는데 웬 초콜릿이냐"고 여쭈었다.
하시는 말씀이 "경로당 옆에 있는 유치원생들이 방문해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나누어주었다"는 것이다.
이를 보니 밸런타인데이는 연인들이 선물을 주고받는 날로만 기념하는 것이 아니었다. 밸런타인데이의 의미가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우리 노년세대들도 밸런타인데이에 호기심과 흥미를 가지면 어떨까. 그러면 자녀와 자식들과의 소통과 대화도 늘어나지 않을까 싶다.
반드시 초콜릿이 아니어도 좋다. 밸런타인데이를 젊은이들의 문화로 치부하지 않고 이를 활용하는 것도 노년의 지혜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내가 나에게 선물한 초콜릿도 부부간 사랑과 소통의 한 표현일 것이다.
아내는 내게 말했다.
"당신은 내달 3월 14일 화이트데이에 나한테 선물해 주겠지요"
아내의 요청이 귀엽게 들렸다. 수첩에 3월 화이트데이를 메모해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