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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브런 Oct 12. 2023

어머니 묘소를 찾은 94세 아버지

언제 다시 성묘할지 장담할 수 없어 

10월 초 연휴 마지막 날, 전곡의 어머니 묘소를 오랜만에 찾았다. 아버지는 코로나 몇 해전 성묘하고는 근 6년 만이다. 그새 아버지는 94세를 맞았다. 


사실 아버지의 성묘는 무리였다. 지팡이에 의지하지 않으면 걸을 수 없는 상태이다. 하지만 지난 추석 연휴에 한번 가보고 싶다는 아버지의 청을 무시할 수 없었다. 


구순이 가까이 되면서 쇠잔한 아버지는 성묘를 가급적 멀리했다. 함께 하면 자식들에게 자칫 부담을 줄 수 있어 애써 외면한 것도 사실이다. 


막상 아버지를 모시고 성묘하려니 걱정됐지만 힘들면 성묘를 포기하고 중간에 돌아오기로 하고 출발했다. 


길가에서 묘소는 멀게 보였다. 아버지께 여쭈었다. "저 산소에 올라가시겠어요?" 아버지는 말없이 오르기 시작했다. 10분 오를 길을 30여분 걸려 묘지에 도착한 아버지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아버지 체력으로 묘소에 온 것은 '기적'이었다. 내려갈 것도 걱정이지만 아버지 얼굴에는 기쁨과 회한이 섞여 있었다. 


차례를 간단히 마치고 하산을 준비하자 아버지는 어머니 묘소에 더 머물고 싶어 하는 눈치다. 손이 덜 간 벌초 부분을 놓지 않았다. 


이번에 모처럼 어머니 묘소를 방문한 것은 아버지에게 특별한 추억이 될 듯싶다. 두 분의 애틋한 과거를 소환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50대 중반의 어머니는 만 30년 전 새벽에 갑자기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환갑을 맞은 시점이었다. 병 바라지도 허사, 아버지는 어머니를 너무 일찍 보냈다는 죄책감에 한동안 시달렸다. 


해수병이 오래도록 괴롭혔지만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큰 충격이었다. 특히 아버지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목전의 악몽이었다. 


아버지는 당시만 해도 비교적 젊은 나이, 실제로 아버지는 연세에 비해 젊게 보였다. 주위에서 재혼을 부추겼다. 나도 아버지가 머지않아 새 여자를 맞을 것으로 예상했다. 


아버지가 재혼할 것이라는 소문도 무성했다. 아버지 친구 한 분은 맞선 자리를 몇 번이나 주선했다. 시간이 갈수록 재혼 가능성은 높아갔다. 나는 아버지가 재혼한다면 여러 대책을 강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예상은 모두 빗나갔다. 아버지는 쓸데없는 억측이라 잘라 말했다. 대신 아버지는 평소 다니던 동네 성당의 연령회에 들어가 오랫동안 봉사했다. 


아버지는 어머니 묘소에도 온갖 치성을 다했다. 명절뿐 아니라 시간을 내 자주 찾았다. 당신이 직접 묘지를 다듬고 가꾸는 것이 유일한 행복이었다.


나도 아버지 따라 자주 다녔다. 아버지는 성묘 가는 날이면 주과포를 손수 준비하고 목욕을 재계하는 등 부산했다. 시간이 갈수록 아버지의 애모(哀慕)는 더욱 깊어갔다. 


아버지가 묘소에서 어머니와 나누는 '영혼의 대화'는 절절했다. 아버지는 저간의 집안 사정을 독백하고 어머니에게 가족 구성원에 대한 보살핌을 부탁하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러한 아버지의 지극한 모습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흔히 부부가 살아있을 때 서로 잘해야지 말하는데 아버지는 그 이상이었다. 내가 본받고 싶은 '남자의 인생'이다. 


성묘를 다녀와서 아버지가 혹시 몸살이 나실까 걱정했다. 다행히 후유증은 없었다. 아버지는 무엇보다 어머니에게 속죄하는 기분이라 말했다. 


성묘하기 전에 올해 벌초는 남의 손을 빌렸다. 생전 처음 있는 일이다.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내가 병들어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그런데 아버지가 언제 다시 어머니 묘소를 올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안타까운 마음에 귀가하는 길에 파주 오두산통일전망대 인근 철조망 앞에서 아버지 이북 고향을 함께 바라보기도 했다. 


오가면서 둘째가 할아버지를 업거나 밀면서 묘소까지 어렵사리 모셨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각별한 사이니 가능한 일이다. 


아버지가 말했다. "혼자라면 갈 수 없는 성묘였다. 언제 다시 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 수고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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