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브런 Oct 13. 2023

‘임연수’가 먹고 싶다

전업주부 남편이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장을 보다

백수가 된 지 제법 오래됐다. 건강이 안 좋아 직장을 그만두었지만 후일 재기하기 위해 예전 명함을 별도로 보관했는데 어디 두었는지 묘연하다. 앞으로 재취업은 거의 불가능할 것 같다. 


직장명함 대신 나 스스로 만든 개인명함은 '전업주부 남편'이다. 아내와 가족에게 인정받고 무엇보다 스트레스에서 조금 벗어나 건강도 되찾을 수 있어 ‘일석이조의 직장’이다.     


내 주특기는 찌개 만들기와 설거지다. 집안 청소도 요령이 붙고 있다. 이것들은 하나같이 아내가 귀찮고 싫어하는 것이어서 역할분담과 인수인계가 자연스레 이뤄졌다.  

   

아내가 만들어 내는 찬과 국을 제외하고 각종 찌개는 내가 전담하다시피 한다. 특히 찌개는 재료만 어느 정도 구비되면 30분 이내에 맛있게 만들어 식탁 위에 올릴 자신이 생겼다. 비결은 나만의 양념장에 있다. 


내가 만든 찌개를 아버지와 아내가 맛있게 먹을 때는 나도 모르게 우쭐해진다. 그러면서 남의 음식 솜씨를 함부로 탓하는 버릇도 없어졌다. 


요즘에는 장보기에 열중이다. 아내가 시키는 심부름에서 벗어나 나 스스로 쇼핑리스트를 작성해 이를 가지고 시장에서 물건을 고르는 것이 소굽장난하듯 재미있다.   

   

그러나 아직은 가공식품과 두부나 콩나물, 계란 위주로 장을 보고 있다. 소고기, 돼지고기, 생선 등 선도를 따지는 것은 여전히 아내의 조언을 새겨야 한다.  

    

시장을 볼 때마다 아내에게 필요한 것을 묻는다. 그때마다 아내는 "당신 먹고 싶은 걸 사 오라"며 내게 모든 재량권을 주고 있다.   

   

내게 묻는 것은 아내도 마찬가지다. 나는 거의 "그냥 오시오".라고 답한다. 내 딴엔 아내의 수고를 덜어주려고 하는 말이다. 



연로한 아버지에게도 무엇을 사다 드리면 좋을지 여쭈는 편이다. 아버지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버지 또한 특별히 주문하는 것이 없다.   


그런데 엊그제 노량진수산시장 가는 길에 아버지께 물었는데 단번에 “'임연수'가 먹고 싶다”라고 하신다. 다소 생소한 임연수라니 나는 메모지에 재빨리 적었다.  


1층 좌판에서 임연수를 숨바꼭질하듯 찾았지만 알고 보니 수산시장에서 흔히 파는 물고기가 아니었다. 오래 전엔 흔한 생선인데 점차 자취를 감추는 어종이란다. 


반면 수산시장은 활기를 띠고 있었다. 요즘 일본 오염수 배출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예전에 흔한 호객행위도 거의 사라졌다. 


수산시장이 집 가까이 있으면 하는 바람이 들 정도로 싸고 싱싱한 생선들이 많았다. 간 김에 참소라와 대하, 낙지까지 한 다발 구입했다. 

      

임연수는 고등어 식감과 비슷하다. 생전의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임연수 찌개와 구이를 자주 해드렸다. 아버지가 임연수를 갑자기 떠올린 것도 그 옛날 추억 때문이 아닌가 싶다. 

      

임연수는 팔뚝만 한 크기의 세 마리가 만 8천이었다. 양이 푸짐해 구이와 찌개로 두 번 해 먹어도 충분하다. 아버지가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다. 찬사가 이어지길 기대하면서.  

작가의 이전글 어머니 묘소를 찾은 94세 아버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