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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브런 Oct 05. 2023

'스위트 홈'을 새삼 생각나게 한 영화

20회 서울국제사랑영화제 초대작 <커밍홈어게인> 

영화 제목 커밍홈어게인(Coming Home Again) 만보면 기쁨보다 불길한 예감이 든다. 사람이 집에 가는 것이 당연하고 행복한 것인데도 말이다. 현대사회가 어쩔 수 없이 가족을 해체하고 떨어져 살게 만드는 환경이라는 걸 암시한다. 

     

커밍홈어게인(2019년 제작)은 예술영화관 <필름포럼>에서 9월 14일부터 19일까지 열린 20회 서울국제사랑영화제(Seoul International Agape Film Festival: siaff)가 ‘사랑’을 주제로 선정한 영화다. 


영화는 미국교포인 이창래 작가가 매거진 <뉴요커>에 연재한 자전적 에세이에 웨인 왕(Wayne Wang) 감독이 자신의 감수성을 더해 제작했다.  

    

웨인 왕 감독은 할리우드에서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이야기를 연출하고 있다. 2022년 드라마 <파친코>의 감독인 저스틴 전이 창래 역을 맡아 가족의 애증과 고민을 연기했다. 


미국에서 주목받는 이창래 작가는 <척하는 삶> <영원한 이방인>등 국내에 번역된 작품이 많다. 전형적인 한인 이민자의 모습에 대해 복잡하고 섬세한 내면 묘사가 특징이라는 평이다. 

     

창래는 위암말기 진단을 받고 생의 마지막 시기를 보내는 어머니를 간병하기 위해 월스트리트에서 샌프란시스코 집으로 돌아온다. 창래는 오랜만에 가족들이 어머니와 함께 하는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첫 장면에 창래가 고기와 뼈를 분리하지 않고 먹기 좋게 갈비를 저미는데 이는 어렸을 때 엄마가 하는 것을 본 것이다. 갈비는 창래가 엄마를 위해 특별히 차린 음식이다. 


창래가 오래전에 엄마한테 “왜 갈비는 분리시키지 않아”라는 질문을 던지는데 엄마는 “그것은 뼈에서 우러나는 것이 갈비의 풍미와 맛을 더하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이 영화는 말할 수 없는 울림을 전하고 있다. 그것은 가족이라도 서로 보듬고 서로 간절히 기대하거나 바라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 느낌이 다르겠지만 뚜렷한 메시지를 주지 않고 가족의 사랑에 대해 ‘생각거리’를 던지는 영화이다. 

     

죽음에 다가서는 삶에서 인간의 한계상황은 무엇인가? 영화는 사랑이라는 것을 깊이 묻고 있다. 창래 작가가 인생을 정리하면서 그것은 마치 치유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듯하다. 

     

창래는 암으로 고통받는 엄마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연명치료를 주장하는 아버지와 누나와 입장이 다르다. 창래는 엄마 고통을 자기 것으로 느끼는 유일한 가족이다. 고통을 그저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뼈에 붙어있는 갈빗살처럼 엄마 아픔을 자신의 고통으로 여긴다.  


영화는 이민사회의 치열한 삶 속에서 가족이 해체되고 이를 통해 메말라가는 가족애를 주목하고 있다. 엄마는 창래를 기숙학교에 보내 명문대에 진학시키고 월스트리트에 진출해 소위 <아메리카드림>을 성취한다. 부모 열정의 결과이다. 

     

그런데 엄마를 보살피기 위해 창래가 오랜만에 찾은 집과 가족환경은 어딘가 낯설다. 창래가 몸이 불편한 엄마를 도와주려는데 엄마가 매몰차게 반응한다. 이는 엄마가 되레 보살핌을 원하는 것을 연출한 것이지만 감당 못하는 암이 닥쳤을 때 누구나 평소 다른 생각과 태도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아메리카드림 이면에는 낯선 환경에서 배운 ‘자기중심적’ 생각과 태도가 자리하고 있다. 아들한테 외부에 전화를 부탁했는데 아들이 “엄마가 게을러서 전화 못하는 거야?”하는 반응이 그것이다. 


자식을 뒷바라지하는 엄마는 어느 순간 자식이 푸대접하면 보상심리가 작용해 섭섭하다. 이는 자신이 무시당하고 있다는 감정으로 치닫는다. 엄마는 창래를 기숙학교에 보내지 말았어야 했다고 자책하기도 한다. 

    

엄마가 발톱에 매니큐어 하는 장면은 자신을 위로하면서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몸부림이다. 결국 아들 창래가 통한의 후회를 하며 깨우친다.  

    

밥상 앞 엄마 표정은 밝아졌다. 창래 사랑 앞에서 엄마는 무력(無力)함을 견뎌낸다. 가족과 함께 보내고 사랑하는 시간이 중요하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 치유이자 사랑이다. 영화는 치열한 삶에서 가족을 등한시하는 가치관을 성찰하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영화의 인상적인 장면은 창래가 미국 이름을 쓰지 않고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고수하고 가족들도 우리말을 능숙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체성을 지키려는 노력이다. 한국갈비 레시피 또한 우리 것을 보존하는 동시에 뼈와 살은 분리할 수 없는 엄마와 자식의 관계를 상징하고 있다.  

   

이 영화는 재밌는 요소는 거의 없다. 따분할지 모를 정도로 차분하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새삼 ‘스위트홈’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아무리 시대와 상황이 바뀌어도 부모와 집을 떠나면 우리 모두 행복한 집을 선망하는 법이다. 

     

한편 커밍홈어게인 상영 후 열린 시네토크에 이무영 감독, 성결대 심혜영 교수, 성현 siaff 부집행위원장이 참석했다. 공동경비구역(JSA) 각본시나리오를 쓴 이 감독은 “저예산으로 만든 영화지만 우리 가족들이 놓칠 수 있는 사랑과 연민을 세밀하게 연출한 작품이다”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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