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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의 영화 만지기

스크린에서 튀어나와 나를 만지는 영화들에 대해서

오랜만에 지하철을 오래 탔다. 

눈을 감고 며칠 전에 본 영화 <카라바조>에 대해서 생각했다. 

뒤죽박죽이 된 시간들. 

카라바조는 뒤죽박죽이 된 시간을 산 사람이 아니다. 

그는 그답게 살다 죽었다. 

후대의 영화감독이 카라바지오의 카라바지오다운 삶에 이끌려 

그를 다시 재구성했다. 

후대의 영화감독은 그를 현재로 데리고 온 다음 

다시 죄를 짓게 했다. 

그에게 다시 그림을 그리게 했다. 

어린 시절의 카라바지오에게, 

옆구리에 칼을 찔리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뒤

내려오는 자신의 마지막을 보여 주었다. 


예컨대 한 인물의 삶이라는 것이 

연대기적으로 얌전하게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훗날 거칠게 뒤섞여서 오히려 총체적으로 이해된다는 것이다. 

삶은 뒤섞여 있다. 

어제의 벌과 내일의 죄가 혼재되어 있다. 


오랜만에 지하철을 오래 탔다. 

친구가 불러서 분당 수내역까지 다녀왔다. 

올 때는 택시를 타고 왔다. 

이것 저 것 뒤죽박죽이 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삶은 엉망진창으로 뒤섞여 있을 뿐.

우리가 붙잡고 있는 어떤 믿음, 

그러니까 ‘삶은 인과관계일 것’이라고 믿는 헛된 애착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싶었으나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사려 깊은 친구들의 다정한 말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취해 버렸고 머리가 어지러웠으며 집에 가서 얼른 자고 싶었다.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아침에 일어나자 머리가 아팠다. 

침대에 누워서 페이스북을 보니

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극적인 죽음에 대한 추모와 분노를 

이야기하는 게시물로 넘쳐나고 있었다.  


어제의 벌과 내일의 죄가 혼재되어 있다. 

우리는 살아가는 것 자체로 벌 받고 있고 알지 못하는 죄를 짓고 있다. 

그 뒤죽박죽을 견디기 힘들어 

죄 이후에 벌 받는다는 얄팍한 인과관계에 기대어 살고 있다. 


삶이 온통 다 죄다. 

나는 카라바조처럼 내 머리를 베고 싶었다.  




오늘은 우울한 수요일. 

우울한 영화가 나를 오래 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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