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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누룽지 Jul 10. 2021

Ep29. 산티아고의 순례-(2)

스물아홉 번째방울

 #Pre-view. 산티아고의 꿈과 주변인 

 주인공 산티아고의 꿈은 나름(?) 소박했는데, 양치기 소년으로써 세상을 탐험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점차 여정이 진행되면서 그가 품은 꿈과 희망, 보물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산티아고는 이 여정 속에서 그에게 영감을 주는 인물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들은 우연히 혹은 필연적으로 그와 마주치고 있다. 또한 직접적으로 산티아고에게 길을 제시하면서 안내하는 인도자와 같은 역할도 한다. 현명하고 지혜로운 이들은 거의 전능한 사람들처럼 그의 길을 빛내준다. 

 이쯤에서 우리는 이 산티아고에게 부러워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우리 주변에 누군가 이런 성인군자 같은 사람들이 길을 안내해준다면, 특히 꿈과 일관되며 지지해주는 사람을 지칠 때마다 만난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들이 스친다. (그런 사람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끊임없이 의심이 드는 것은 사실일 테다.) 하지만, 아쉽다면 아쉬운 대로 우리는 그들이 꿈에 대해 제시한 현명한 생각들을 엿보면서 조금씩 취해보도록 하자. 

(이후 내용은 산티아고의 순례-(1)에서 이어집니다.) 


#무함마드의 딸, 파티마

'나는 당신이 자주 얘기하는 자아의 신화의 일부이기도 해요.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당신이 여행을 계속하길 원해요. 당신이 찾는 그곳으로 말예요. (-중략-) 그전에 떠나야 한다면 당신의 신화를 향해 떠나세요. 사막의 모래언덕은 바람에 따라 변하지만, 사막은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랍니다. 우리의 사랑도 사막과 같을거에요.' -연금술사 中-

 파티마는 산티아고가 그의 순례를 계속하는 중에 만난 그의 운명과도 같은 사람이다. 그녀는 매우 결연하고 성숙한 여인으로 산티아고의 정열적인 사랑을 받아들이면서도 순례의 본질을 잊지 않도록, 자신의 신화를 이어가도록 지지하는 여인이다. 

 우리가 마주하는 꿈 앞에 자주 부딪히고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에서 사랑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특히나 사랑은 여러 요인 중에서도 가장 큰 장애물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그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져다주면서도 '나'라는 인격체를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로 만들어준다. 이는 누군가에게는 어떤 것보다 귀한 꿈이며 신화일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꿈을 제쳐두고 사랑이 곧 신화로 자리 잡으며 이에 안주하게 되는 것이다. 가령, 멋진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산티아고처럼 먼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거나, 더 높은 지식을 위해 유학길에 오르는 것, 오랜 기간 출장을 가는 것, 또는 성공을 위해 만남을 줄이는 것 등을 고민하게 되지만, 그때마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자리가 더 크게 자라나 이 모두를 저변에 내려놓으려고 하는 경향이 강해지는 것 같다. 

 파티마는 이를 고민하는 모두에게 이런 조언을 한다. '사랑 또한 신화의 일부이다. 사막의 모래언덕이 바람에 따라 형태가 변하고 모습이 바뀔지라도 사막은 언제나 모습 그대로일 것이다. 사랑은 그런 것과 같다.' 사랑은 그 자체로 신화라기보다 신화의 일부라고 믿을 것을 이야기한다. 그녀는 우리가 나아가는 신화에서 사랑은 작은 부분에서 모습이 바뀌고 상황이 변할지라도 항상 변함없을 것이라는 신화와 사랑. 그렇기에 우리는 신화를 향해 더 나아갈 용기를 얻게 되는 것이다. 초연하고 고요한 신화와 사랑은 사막의 그것과 닮아있다. 다시 한번 어두운 사막의 별빛이 내리는 한가운데를 상상해보자.   

 혹자는 다른 이의 신화를 기다려주는 것이 이성적으로 부질없는 것이라고 하거나, 신화 속에 사랑이 일부라는 것에 동의하지는 않겠으나, 신화와 함께하는 사랑이야말로 얼마나 매혹적이고 이상적이겠는가. 언젠가 신화를 이루었을 때, 어느 순간 완성된 사랑을 서로 바라보는 것 또한 얼마나 아름답겠는가.          


#두려움을 이겨내리, 연금술사

 '고통 그 자체보다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더 나쁜 거라고 그대의 마음에게 일러주게. 어떠한 마음도 자신의 꿈을 찾아 나설 때는 결코 고통스러워하지 않는 것은, 꿈을 찾아가는 매순간이란 신과 영겁의 세월을 만나는 순간이기 때문이라고 말일세.' -연금술사 中-

  산티아고는 파티마를 떠나면서 연금술사와 피라미드까지의 마지막 순례를 함께한다. 비단 어떤 물질을 금으로 만드는 능력을 선보이는 흔한 역할이 아닌, 마치 만물의 정기를 이해하고 세상의 언어를 깨달아 신화와 꿈, 인생 전체의 긴 여정을 관장하는 것 같으면서 소설 전체를 구성하는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구성에 마침표를 찍어주는 인물인 듯하다. 

 지금까지 글을 따라오면서 거대한 장애물을 뛰어넘었다. 현실의 안주를 뛰어넘었고, 사랑 또한 힘겹게 이겨냈다. 하지만, 다음 장애물은 마치 하늘 높이 장대가 서있는 듯할 것이다. 바로, 꿈에 대한 두려움이다.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다른 장애물들의 높이를 아이들 소꿉장난처럼 느껴지게 한다. 현실의 안주와 사랑은 충분히 상황에 따라 이겨낼 수 있다. 그러나, 두려움은 이와 같지 않다. 꿈을 향한 순탄치 않은 순례가 선사하는 고통과 그에 대한 두려움은 쉬이 이겨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꿈은 단순하지 않으며 추상적이고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것을 부르는 용어가 아닌가. (계속 강조하지만, 꿈이라는 것은 그저 직업과 목표에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에 연금술사는 꿈을 향해 갈 때 얻는 고통보다 그 고통을 두려워하는 것이 더 나쁜 것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고통 때문에 시작을 두려워하는 것을 다그치는 것 같다.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무엇이든 원하는 꿈과 신화를 갖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대가를 지불해야 하며 그 대가는 어떤 형태로든 고통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떤 장애물들을 보기 좋게 뛰어넘었다 하더라도, 이 두려움은 좌절감을 선사하고는 하는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시도하기도 전에 포기할 만한 그럴듯한 이유인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진정한 꿈을 향한 마음을 일컫어 연금술사는 꿈을 찾아 나서 한 발짝을 내디뎠을 때 고통스러워하지 않는 것은, 그 모든 순간이 신과 영겁의 세월을 만나는 순간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사실 두려움을 이겨내고 한 발짝만 내디디면 여정을 황홀하게 보낼 수 있다고 말한다. '신과 영겁의 세월을 만나는 순간'이라. 신이라는 초월적 존재와 영겁의 세월이라는 영원의 알현은 마치 오랜 고전 속에 놓인 신화. 바로 먼지 쌓인 고서 속 빛바랜 그 신화를 다시 읽는 설렘을 느끼는 것이다. 우리는 사실 이 순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꿈을 향해 달려 나가는 설렘과 힘겹지만 즐거운 그 나날들. 돌아보면 아름답지만, 두려움이라는 더 큰 장애물에 뒤엉켜 마치 그 순간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 말이다. 

 만약 지금 두려움에 사로잡혀 방황하고 있다면, 신과 영겁의 세월을 만났던 순간들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마무리

  <연금술사>는 연금술사라는 특이하고 신비로운 설정과 그들의 세계를 산티아고라는 인물에게 투영하여 독자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인간의 존재와 깊이 연결된 꿈과 신화를 선보이고 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성찰을 주도한다. '나는 안일함 속에 꿈을 잃어버리지 않았는가?' '나는 꿈을 포기한 나태한 인간은 아닐까?' '꿈을 위해 나는 무엇까지 할 수 있는가?' '현재 나의 위치는 어디인가?' 근본적으로 '나의 꿈은 대체 무엇일까?'라는 무수한 질문들로 우리를 압박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속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존재들의 등장은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압박하는 것만은 아닌, 적극적인 위로를 동반한다. 

 꿈을 망설이거나 혹은 이 여정에 지친 사람들에게 혹은 거의 다다른 사람들에게. 꿈이라는 찬란한 미래를 가진 모두에게 산티아고의 순례가 심심치 않은 위로와 따뜻한 설렘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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