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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누룽지 Oct 19. 2021

신께 묻습니다. 신뢰가 죄입니까?

인간실격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인간'이란 사전의 의미에 따라 '고도의 지능을 소유하고 독특한 삶을 영위하는 고등동물'이라 일컫는다. 이 고도의 지능을 소유한 고등동물은 자신의 능력에 따라, 욕구에 따라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능하게 해낼 수 있으며, 이를 달성하는 방법은 어떤 방향으로도 가능하다. 가령 나는 선한 사람이라는 프레임을 남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깎아내려 자신을 드높일 수 있을 것이다. 진실로 선한 일을 한다는 원초적인 방법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인간은 고도의 지능을 가진 생명체이기에 그렇게 힘을 들이지 않더라도, 스스로 그것을 해낼 수 있다. 설령, 도의적인 방향이 아니라 비판받을지라도 인간은 또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남을 희생시키는 것을 마다하지 않을 수 있는 뻔뻔함도 갖고 있다.

 잔인하게도 이러한 인간의 속성과 본질은 도통 밖으로 드러나는 것 같지 않다. 웃는 얼굴 뒤에 경박한 냉기를 풍기는가 하면, 마스크 위로 떠오르는 눈웃음과 대조되는 입모양의 결계. 밖으로는 누구보다 헌신적이고 평범한 사람일 뿐이지만, 속을 볼 수 없는 우리는 그 내막이 실로 드러나는 그날에 대한 두려움과 의심을 갖게 되는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자신을 파멸에 이르기까지 인간에 대한 두려움에 온전히 자신의 본성을 숨기고 살았던 한 남자의 잔인한 연대기를 살펴보며 인간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요조의 두 얼굴 

 작품의 주인공 요조는 날 때부터 괴롭고 불행한 인간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그는 매번 인간의 삶은 어떠한 것인가, 인간의 삶은 알 수가 없다면서도 그들과 다르다며 자신을 다그치는데, 그의 번민 속에서 새어 나오는 불안과 방황은 마치 자신이 인간으로부터 겉도는 혹은 외부의 어떤 것처럼 느껴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가 의심했던 인간 세상에서의 삶은 예컨대 이런 것이다. 

인간은 먹기 위해 산다는 말은 들어 봤어도 돈을 위해 산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 봤습니다. 아니지, 경우에 따라서는 아니, 모르겠습니다... 생각하면 할 수록 더 알 수가 없어져서 저만 혼자 돌연변이 인듯한 불안감과 공포심이 엄습합니다. -<인간실격> 中-


 그는 다양한 예시, 자신이 겪어왔던 사례를 통해 자신이 믿어왔던 것들에 대한 배반을 토로한다. 정류장의 육교를 재미난 놀이이자 환기의 대상인 줄 알았으나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실용적인 것이었고, 이는 지하철과 베겟잇까지 이어지며 자신과 가까워지는 대상들이 자신이 믿었던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알고는 자신이 믿는 세상은 대체 무엇인가, 자신은 어떻게 세상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버거워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는 스스로 인간의 삶과 점점 멀어져 이들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어린 나이에서부터 견뎌내야만 했던 것이다. 위의 인용을 통해 요조의 순수하고 깨끗한 인간에 대한 바람과 기준은 현 인간 세상에서 지극히 배반 당하리란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인간은 지극히 요조의 바람과는 동떨어진 목적에 의해 움직이고 행동하며 살아가고 있다.  

 결정적으로, 요조는 자신이 사람들 앞에서 광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즉 두 얼굴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저는 화내고 있는 인간의 얼굴에서 사자보다도, 악어보다도, 용보다도 훨씬 무시무시한 동물의 본성을 봅니다. 평소에는 그 본성을 숨기고 있다가 어떤 빌미를 잡았다 싶으면, 이를테면 풀밭에서 유유자적 졸고 있던 소가 별안간 꼬리를 휘둘로 배에 붙은 등에를 철썩 때려죽이듯, 인간이 느닷없이 분노를 터뜨려 그 무시무시한 정체를 드러내는 모습을 목격할 때면, 저는 늘 머리털이 곤두설 정도로 벌벌 떨었고, 이 본성 또한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자격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제 자신한테 절망하고 맙니다. -<인간실격> 中-

 

요조는 인간에게서 또 다른 절망을 보았다. 비록 신뢰할 수는 없더라도 순수하고 착하기만 해 보였던 인간들의 내면 속에 존재하고 있는 악의적이고 무시무시한 본능이 나올 때, 더 깊은 두려움에 빠지는 것이었다. 결국, 그에게 남은 얇은 실마리, 인간과 조우하며 자신이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범인들과 같은 모습을 보여 그들을 기쁘게 하고 웃게 만드는 인위적인 얼굴과 서비스를 하는 것이었다. 

 그는 성장기를 겪으며 광대짓을 하면서도 자신의 내면에 대한 진가와 솔직함을 알아주거나 인간에 대해 다시 신뢰를 할 수 있게끔 해주는 사람 또는 자신과 비슷한 면모를 지닌 사람들에게 요조는 다시 한번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그러나, 인간에 대해 마음을 열고 살아가려는 다짐을 할 때쯤. 다시 인간 세상의 혹독함과 타인의 무시무시한 본능에 그는 좌절하고 낙마한다. 


#신뢰가 죄입니까?

 요조는 가면을 쓴 채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요조의 진정한 모습을 알아줬던 한 여자를 집중적으로 보여주려 한다. 그녀의 이름은 요시코. 요조가 자주 다니던 스탠드바 맞은편 작은 담배가게에서 일하던 열일고여덟의 아가씨였다. 요조는 당시에 술꾼이었음에도 쓴 가면으로 하여금 사람들을 홀리는 재주가 있었고, 반반한 얼굴을 한 청년이었기에 요시코 역시 이 요조에게 끌리는 감정을 갖고 있었다. 한 번은 요시코와의 금주 약속을 깨고 그녀에게 찾아간다.

"요시코. 미안해. 마셔버렸다." "어머, 왜 그래요. 왜 취한 척을 하고 그래요."
흠칫 놀랐습니다. 술이 확깨는 기분이었습니다. -<인간 실격> 中-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제껏 남들에게 술주정뱅이의 난봉꾼으로만 비추어졌던 방랑자 요조였다. 하지만, 자신이 평생을 써왔던 술에 절은 가면을 본 요시코의 '당신의 본모습은 이게 아니에요'. 혹은 '나에게는 가식적으로 대할 필요 없어요'라는 듯한 따스하고도 발랄한 대답에 그는 다시 한번 그의 삶이 막연히 어둡지만은 않은 환상의 것일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빛을 맛보는 것이다. 그렇게 요조와 요시코는 결혼 생활을 시작한다. 애석하게도, 아름답게만 이어갔으면 했던 그의 결혼 생활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파멸의 길로 접어든다. 

제 방 위쪽의 작은 창문이 열려있고 그 창을 통해 방 안이 보였습니다. 환한 전깃불 아래 두 마리의 짐승이 있었습니다. 눈앞이 핑그르르 돌고 호흡이 가빠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또한 인간의 모습이다, 이 역시 인간의 모습이다, 놀랄 일이 아니다, 하고 가슴속으로 중얼대기만 했습니다. 요시코를 구할 생각도 못하고 장승처럼 계단 위에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중략)
요시코는 신뢰의 천재입니다. 사람을 의심할 줄을 몰랐던 겁니다. 그런데 그 때문에 일어난 비참한 사건. 신께 묻습니다. 신뢰가 죄입니까? -<인간실격> 中-


 요시코와 요조의 형편은 어려웠다. 요조가 변변찮은 벌이를 하고 있었기에, 당연히 빚을 내어 살고 있었는데, 요조와 호리키(요조의 오랜 친구, 가식적인 인물)가 2층에서 얘기를 하고 있던 사이, 빚 독촉자에게 요시코가 더럽혀지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스스로 가면을 내려놓고 '신뢰'라는 관계 안에서 사랑하고 있었던, 인간의 선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마치 순박했던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는 요시코 또한 인간 세상의 잔혹함과 위선에 더럽혀지자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야 만다. 다시 마약과 술에 절어 살며 몸을 심하게 망가뜨렸고, 더 이상 일말의 신뢰가 남아있지 않은 이 세상에서 그에게 삶이란 그저 따분하고 처절한 삶을 영위하는 것뿐 일터, 그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지옥에서 그는 생명력을 잃어간다. 나 또한 신께 묻는다. 신뢰가 죄입니까?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은 인간의 혹독하고도 위선적이며 절망적인 모습과 그러한 세상을 담아냈다. 그는 실제로 39세의 나이에 네 번째 자살 기도를 하고 다섯 번째에 생을 마감한다. 그는 생전에 인간에 대한 본질적이고도 근원적인 의문에 해답을 명확하게 찾지 못하고 자신을 파멸로 이끈 듯하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오사무의 물음은 우리가 살아온 삶이 혹 본질을 벗어나 있지는 않은지 심히 고찰하게 되는 순간들이었다. 예컨대, 인간의 행복은 어디서부터 오는가에 대한 물음에 어느 순간 대개 돈과 명예가 1순위가 되었음을 고백해야 할 것이다. 인간은 돈과 명예를 위해 거짓을 고하기도 하고, 남을 짓밟기도 한다. 이것이 인간의 '신뢰'인가? 무조건적으로 청렴한 믿음이 아니라, 어쩌면 인간의 신뢰는 원하는 것을 위해 어떤 것을 담보로 하는 것이라는 용어로 통용되는 세상이 되었다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당연스럽고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음도 인정해야 한다.

 다자이 오사무는 인간의 이런 본성에 대해 고찰하고 고뇌하며 번민 속에서 자신이 인간의 삶을 알 수 없는 것이며 그 속에 숨겨진 무시무시한 본능에 두려움을 느껴 요조라는 인물에 가면을 씌워 인간과 겨우 교류하였다. 그의 <인간 실격>은 말 그대로 파멸적이고 침울한 심정이 가슴 깊이 몰려드는 잔혹한 소설이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으로서 마주해야 할 부끄러운 진실과 그의 처절한 고발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이 소설이 얼마나 아름다운 지도 알게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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