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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누룽지 Sep 29. 2021

우리의 애러비-2

애러비

(우리의 애러비-1에서 이어집니다.)


#우리의 애러비

 제임스 조이스는 '나'라는 인물을 통해 이름의 제시 없이 이야기를 쭉 이어나가 모든 감정과 생각을 함께 공유하듯 우리 앞에 사춘기 소년의 성장 과정을 펼쳐놓았다. 우리는 그의 세계에서 나의 모습을 비추어 보게 되고 공감하며 동화된다. 이에 마치 거대한 환상과 이상이 존재하는 것처럼 황홀한 기분을 맛본다. 그러나, 이 환상적인 느낌은 어느 순간 이데아가 아닌 현실로 다가온다. 냉담하고 냉소적이며 그리 달갑지 않은 형태로. 그리고 '나'의 마지막 독백을 통해 우리에게 허망함과 상실감을 선사한다. 그럼에도, 애러비라는 이면에는 '나'가 성장하는 어른으로의 과정을 담고 있음에는 분명한 것처럼 보인다. 

 우리도 '나'처럼 소년 소녀에서 성장해왔다. 누군가를 짝사랑하며 애타게 기다리고 마음을 사기 위해 노력했던 때를 기억하며, 거대한 상상 속에서 현실을 마주하여 실망하고 낙담하였던 시련을 겪어 현재를 살고 있다. 

애러비는 허영심을 일깨워 준 일시적인 순간뿐 아니라 우리가 속했던 매 순간들을 뜻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인생의 각 장면 혹은 순간 속에 우리는 어떤 새롭고 낯선 상황과 마주하였고, 이 낯선 애러비를 통해, 그것이 나쁜 쪽이든 좋은 쪽이든 상관없이 성장하고 사유하는 방법을 배워온 것이다. 애러비는 계속 이어지는 스스로의 삶 속에서 언제 그랬냐는 듯 새롭게 자신 앞에 나타나 아직 피지 않은 다른 꽃망울을 피울 전제를 던져줄 것이다. 그럼 그 속에서 다시 어린아이처럼, 사춘기 소년처럼 성장의 과정을 순환하며 다른 내일을 준비하게 될 터이다. 애러비는 그렇게 우리와 아름다운 동행을 계속하게 될 것이다.


(세계문학기행 매거진을 기획하면서 기회가 된다면 제가 경험했던 여행의 추억들을 가볍게 공유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운 좋게도 바자르에 대한 재미난 에피소드가 기억이 납니다.)


*바자르

 바자르는 매우 큰 규모의 중동 시장으로, 본인이 가본 터키 이스탄불의 그랜드 바자르를 토대로 이야기해보자면 정말 많은 물건들을 판매하고 있다. 터키에 가본 특히 이스탄불에 방문하는 많은 관광객들은 한 번쯤 들려볼 만할 것이다. 정말 필요하지만 값싼 물건을 사려는 마음을 먹고 들어설 텐데, 정말 힘든 흥정 싸움을 해야 할 것이다. 어딜 가나 흥정에 언성은 시장의 좁은 거리를 모두 메울 듯할 정도니 말이다. 특히 한국인은 터키 거의 모든 관광지에서 형제로 군림하기에 눈 뜨고 코 베이는 상황이 순식간에 일어날지도 모른다. 한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가족과의 터키 여행에서 있었던 일이다. 당시 기념품으로 살만한 가방을 사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는데 주인아저씨가 나의 가죽 옷을 가리키며 동생에게 혹시 가죽 자켓 사고 싶지 않냐고 권한다. 구경도 할 겸 따라가니 자기 아들 가게였다. 그는 자신을 아브라함이라고 소개했다. 선뜻 물을 건네며 친절하게 우리를 응대했다. 그리고 동생이 마음에 드는 가죽 자켓을 고르며 끈질긴 신경전이 이루어진다.

(대화를 기억에 의존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동생은 회화를 어려워해서 대신 제가 했습니다.)


Abraham: 아주 잘 어울리네 친구. 나였으면 이거 무조건 사.

나: 얼만데요?

Abraham:음.. 이거 새끼 양가죽이야. 새끼 양가죽이 비싼 거 알지? 

나: 글쎄요.. 동생은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긴 한데, 얼마죠?

Abraham: (계산기를 두드린다.) 1000달러. 유로는 좀 더 싸게 줄게.

(어디서 굴러먹은 계산법인지 새끼 양가죽이 1000달러라니.)

나: 네? 새끼 양가죽이 좋은 거 알겠는데, 1000달러면 아무도 안 사요.

Abraham: 얼마까지 알아봤는데, 동생이 원하잖아. 

나: 저희 돈 그렇게 많지 않아요. 

(나는 조금 떠 보려는 마음에 200 정도를 계산기에 두드려 보여준다. 아브라함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제스처를 취한다. 그러더니 다시 설득하려 한다.)

Abraham: 이거 진짜 비싸고 좋은 새끼 양가죽이야. 불 붙여도 타지도 않고 물을 쏟아도 먹지도 않아(실제로 그러하긴 했다.) 850까지 깎아줄게. Last Price.

(Last Price는 너무 양심 없다고 생각해서 돈 없으니 나가겠다고 문 앞까지 섰다.)

나: 저희 그냥 평범한 여행객이에요 그렇게까지 돈 많지 않아요. 그냥 갈게요.

(순간 내 어깨를 붙잡으며 말하는데, 이글거리는 눈동자에서 레이저가 나오는 것 같았다.)

Abraham: 동생 표정을 봐. 원하고 있잖아. 사는 건 네가 아니라 동생이야. 

(사실 동생은 정말로 갖고 싶어 하긴 했으나, 저 가격은 정말 아니라고 내가 잡아뗐다.) 

나: 정말 좋은 거 알겠는데요. 그 가격에는 정말 안 못 사요.

Abraham: 알았어. 기다려봐. 600에 가져가. 더 이상은 안 돼. 진짜 마지막이야.

(길고 긴 싸움에 귀 기울여 듣던 아빠가 말했다.)

아빠:어디까지 내려가는 거야 ㅋㅋㅋ 

(나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은 이미 문 밖으로 멀어지고 있었고, 나도 1미터쯤 걸음을 떼자, 잠시 후 Abraham이 소리치듯 말했다.)

나: 죄송해요. 가볼게요~

Abraham: Ok, Ok! 200!!! 


 600에서 200으로 후려치기 한 것도 웃긴데, 처음에 이를 당당하게 1000달러에 팔려고 했다는 게 돌아보면 정말 뒷골이 땡기는 상황이었다. 결론적으로는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흥정에 성공했다. 나는 당당히 구매하고 타국에서 호갱 맞을 일은 없겠다 자신했으나, 아브라함이 소개해준 또 다른 가게에서 Turkish Delight에 바로 호갱을 맞으면서 허탈한 웃음을 지어야 했다. 이들은 어떻게 연결되어있는지 참 웃긴 상황이다. 옆집 가면 친구 옆집 가면 아들인 수순은 안 당하려야 그럴 수가 없다. 저울에 재서 판매하는 걸 정직하다고 철석같이 믿은 게 내 패착이었다. 사실 저울로 재서 판매하는 걸 의심하는 게 더 의아하기는 하겠으나, 혹여나 하는 생각 정도는 해봤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던 것이다. 

 이후로 어디서든 사기꾼 같은 사람을 만나면 아브라함이 떠오르곤 한다. 터키 사람 특유의 짧고 굵은 턱수염과 짧은 머리, 덥수룩한 팔에 난 털들이 생각나는 것이 이제는 웃으면서 글을 적고 있지만, 문득 그 사람의 이름 아브라함도 거짓말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늘할 때가 있다. 다른 이들이 갔을 때는 무함마드라고 할 수도 있는 법이다. 좌우지간 누구든 터키의 그랜드 바자르에서 아브라함이라고 소개하며 옷을 파는 사람이 있다면 필히 조심하길 바란다.

이스탄불의 그랜드 바자르로 가는 길. 바자르 내부 사진은 안타깝게도 찍어 둔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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