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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누룽지 Mar 06. 2022

예루살렘엔 없는 해변

예루살렘 해변

#이도 게펜, 호기심의 자극

  좋은 책을 디깅하는 것, 찾는 것, 구매하는 것. 이 모든 과정을 주도하는 가장 주요한 요소는 바로 '호기심'이다. 제아무리 유명한 책이며 명망있는 작가의 책이로서니 '호기심'이 생기지 않으면 그저 한순간 지나가는 책이 된다. 이도 게펜이라는 이스라엘의 작가는 이런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인물이었다. 이스라엘이라는 신선한 문학의 무대에서 등장한 신인 작가. 그리고 그의 과감하고도 역설적인 제목의 선정. <예루살렘 해변>. 예루살렘이라는 도시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해변을 등장시키며 상상력을 자극했다. 더불어 14편의 단편을 모음으로써 그가 생각하고 적어놓은 것들을 이 한권을 통해 제대로 마주할 수 있겠다라는 느낌에 이 책을 마주하게 되었다. 


 #매력적인 상상력 더하기 생각

 그의 상상력은 모든 단편에서 엿보인다. 지구를 벗어난 이야기라던가, 타인의 삶을 체험하는 직업이라던가, 꿈을 제작하거나, 시간을 잡아두는 방법 등 매력적인 소재는 그의 펜 아래서 흥미롭게 흘러간다. 하나의 예시로 <101.3FM>에서는 타인의 생각을 엿들을 수 있는 능력을 선보인다. 

 어느 날 찾아온 노인은 자신의 고장 난 라디오를 들고있다. 너무나도 오래된 이 라디오에 정을 놓을 수 없는 노인은 '나'에게 수리를 부탁한다. 수리하기도 뭐한 이 구식의 라디오와 씨름하던 도중 어떤 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그 소리는 익숙한 누군가의 목소리였는데, 가구점 주인의 것이었다. 분명 그는 말하지 않았지만, 주인공에 대한 내면의 불평이 들려오고 있었다. 이제 이 라디오의 능력에 주인공은 사로잡혔고, 모든 사회생활과 관계 맺음에 있어 이 능력에 의존하게 된다. 그리고 타인에게서 비춰지는 의심의 눈빛과 갈등의 전초. 

 '타인의 생각을 엿들을 수 있다면 어떨까?'라는 상상력으로 독자에게 부여한 매력적인 능력과 스토리를 전개하면서 함께 끌고 가야 할 생각을 넌지시 던져주고 있는 그만의 화법. 매편 이런 즐거움과 내면의 숙제를 함께 전하고 있다. 


#아름다운 동화, 예루살렘 해변

 이 책의 메인 단편, <예루살렘 해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아내 릴리안을 데리고 예루살렘의 해변을 찾아가는 새미를 그린 단편이다. 눈 덮인 해변에 기억이 또렷이 남아있는 릴리안을 위해, 그녀의 마지막 기억과도 같은 그곳을 찾아가는 새미.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아니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예루살렘의 눈 덮인 해변은 그들의 발걸음을 애잔하게 만들어내고 있다. 어쩌면 노부부의 마지막 여행이 될지도 모르는 이 길. 차차 새미가 릴리안에게서 비춰지는 옛 기억과 모습을 발견하면서 그토록 애타게 찾던 해변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도 게펜은 황혼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눈 덮인 예루살렘 해변을 마지막 순간에 다다라서 독자에게 이들의 아름다운 기억 속 저물어가는 환상을 선사하며 이 해변이 마음 속 깊이 존재하게 만드는데 성공한다. 이로써 그가 보여주었던 무한한 상상력과 더불어 감각적인 분위기로 감동적인 서사를 선사할 수 있음까지도 확인하게 된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예루살렘엔 없는 해변으로. 


#완벽하게 들어맞은 호기심

 '호기심'으로 시작해 기대를 거쳐 만족한 이도 게펜의 작품. 물음표를 느낌표로 만들 줄 아는 그의 능력은 무려 14회에 걸친 다양한 색감으로 나를 만족시켰다. 그리고 베스트 셀러를 벗어나 눈을 돌려 그 이상의 만족을 만끽한 책이기도 했다. 만약, 베스트 셀러라는 고정란에 고스란히 몇 주째 놓인 책들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면, 이 이스라엘의 신인 작가 이도 게펜의 독특하고 탈출구 없는 화법에, 그의 해변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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