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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누룽지 Jan 14. 2022

자유를 위한 몸부림

쉐르벤파크

#이방인이라는 꼬리표

 <쉐르벤파크>에 등장하는 주인공 '사샤 나이만'은 러시아에서 태어나 일찍이 독일로 넘어온 이민자였다. 허름하고 남루한 아파트에서 사샤는 자신의 두 동생, 안톤과 알리사, 그리고 자신들을 돌봐주는 당고모 마리아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독일어 구사능력이 떨어지는 마리아가 항상 사샤의 도움을 받는 것으로 보아 사실상 이 집안의 가장은 사샤라고 할 수 있는데, 그녀마저도 아직 성인이라기엔 이른 열 여덟에 불과한 것이다. 설상가상 이 지저분하고 답답한 아파트에서 일어난 모종의 사건으로 이들은 이 아파트에서 마저 외면받고 있는 신세다. 


 #러시아라는 세계

 사샤의 가족에게는 끔찍한 비극이 있었다. 계부였던 바딤이 자신의 어머니 마리나와 그의 애인 하리를 살해한 것이다. 이 아파트에서 일어난 비참한 사건으로 바딤은 감옥에 가게 되었고, 아파트 주민들은 은연중에 이들이 끔찍한 기운을 불러오는 러시아인으로 낙인 찍은 것이다. 이 사건은 사샤의 분노와 경멸이 집 안으로 응집되는 계기가 되었고, 바딤을 꼭 살해하겠다는 원대한 다짐을 하게 된다. 결국 그녀의 집 안에, 작은 러시아라는 공간 안에서 사샤는 어머니에 대한 환상과 추억, 동생들에 대한 연민과 책임감, 바딤을 살해하겠다는 분노와 혐오가 가득차게 되는 것이다. 사샤에게 러시아라는 공간은 고향의 향수와 적대적인 냄새가 같이 공존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독일이라는 세계

 그런 그녀의 앞에 폴커와 펠릭스라는 부자가 나타난다. 폴커는 신문사의 국장으로 이미 마리나에 대한 사건일지를 알고 있었고, 사샤에게 따뜻한 배려를 베푼다. 사샤는 바딤이라는 추악한 인간으로 인해 생긴 남자에 대한 혐오를 잊고, 그와 그의 아들 펠릭스에게서 사랑을 느낀다. 그리고, 한동안 그녀가 러시아라는 작은 공간에서 느꼈던 환멸의 감정이 그녀가 폴커의 집으로 들어서면서 한낱 바람처럼 사라져버리는 것이었다. 마치 자유의 몸이 된 것처럼. 어쩌면 그녀는 이제 진정 독일인으로 정착하며 지긋지긋하고 좁은 러시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었다. 허나, 이 짧은 순간이 지난 후, 그녀에게 찾아온 것은 어머니 마리나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이었다. 그리고 은연 중에 흩어졌던 바딤에 대한 분노까지. 결국, 그녀는 러시아라는 공간으로 돌아가 집과 독일이라는 공간 사이에서 번뇌하고 방황하며 쉬이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자유를 위한 몸부림 

 <쉐르벤파크>는 시종일관 사샤의 날이 선 시선과 행동, 말투를 가감없이 보여주며 그녀가 살아가야하는 독일이라는 나라와 작은 러시아라는 공간을 낯설고 형편없는 곳으로 그리고 있다. 그녀가 그나마 살아가는데 위안이 되었던 것은 사랑스러운 동생들과 아름다운 어머니와의 추억. 그리고 다른 경계의 따스한 안식처였던 폴커와 펠릭스 뿐이었다. 그러나, 이 둘이 공존하는 세상을 그녀는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 같다. 항상 한 편으로 치우칠 때마다 떠오르는 사랑의 기억과 분노의 감정. 너무나도 상반되는 세상 속에서 발 디딜 곳을 찾지 못하던 그 중간에서 경계를 넘나드는 것은 그녀에겐 너무나도 힘든 일이 었을지도. 그녀가 새로운 곳으로 창을 열고 여행을 떠나는 것은, 이도저도 아닌, 그 누구도 아닌, 독일인 혹은 러시아인도 아닌 그저 이방인으로서 그녀가 오롯이 원했던 '자유'라는 작은 소망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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