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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누룽지 Aug 31. 2020

Ep16. 당신의 인생, 금의환향(下)

열여섯 번째 방울

※오늘의 이야기는 카스트제도에서도 소외받는 불가촉천민 달리트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上, 下편으로 나누어 제작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더러운 발자국을 지우기 위해 허리춤에 빗자루를 매달고 다녀야 합니다. 우물에서 물을 길어 마실 수도 없습니다. 사언에 들어가 신께 기도드릴 수도 없습니다. 신성한 곳이 더럽혀진다는 이유로 그곳에 그림자도 드리울 수 없습니다.

신이 우리에게 주신 권리는 오직 하나, 구걸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우리가 천하게 태어난 것은 전생에 지은 죄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우리와 닿는 것만으로도 오염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이름은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 달리트입니다.

-신도 버린 사람들 (나렌드라 자다브)

1997년, 뭄바이 국제공항. 어머니 소누바이를 앞에 두고 울음을 터뜨렸다. 아버지를 여읜 당신의 지친 삶을 두고 떠나는 것이 두려웠다.


츠호투(나렌드라 자다브)는 작가가 되고 싶어 했다. 현실적인 형의 조언을 듣고 울고 있던 자신에게 다가와 꼭 안아준 것은 아버지 다다(다무)였다. 그렇게나 무뚝뚝하고 무서운 아버지였던 다다는 이렇게 말했다. 


"아빠가 하고 싶은 얘기는 한 가지뿐이야. 뭘 하든 최고가 되라는 것. 도둑이 되고 싶어? 좋아. 하지만 솜씨가 대단해서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게 만들어야 해. 온 세상 사람들이 너를 보고 '야, 진짜 훌륭한 도둑이다! 어쩜 이렇게 솜씨가 대단할까?'라고 감탄하게 만들란 말이야." 츠호투는 한참을 웃었고 다다도 다 빠진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어린 시절을 지나 대학에서 유학을 하고 뭄바이로 돌아왔을 때, 다다는 너무나도 야위고 힘이 없어보였다. 그러나 그의 초롱초롱한 눈빛은 언제나 츠호투의 연구가 '달리트들과 사람들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 것이냐' 라는 것이었다. 그의 끝없는 존엄성에 대한 열의에 혀를 내두르는 자다브였다. 


1989년, 결국 다다는 심장발작으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달리트의 족쇄를 풀고자했던 끊임없는 행적은 그를 어느정도의 자유인으로 놓아주었지만, 여전히 끊어버리지 못한채 가족의 품을 떠났다. 이제 그 꿈은 아들 자다브가 받아들었다.


시간이 지나 츠호투는 달리트들이 가진 염원. 아버지가 이루고자 했던 꿈. 판다르푸르라는 사원의 비토바 신당에 vip자격으로 높으신 사제들에게 대접을 받으며 입장했다. 사제들은 저마다 그에게 말을 걸며 그의 푸자 의식을 맡고 싶어 했다. 자다브는 눈물을 흘리는 것을 참을 수도 닦아낼 수도 없었다. 자신이 이곳에 있으면 안 되는 달리트라는 사실. 천하에 쓸모없는 천민이라는 그 사실이 마음을 옥죄였다.


의식을 끝내고 카스트를 이겨낸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도약했음에도 터져버린 울음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그때 사원 밖에 보인 돌을 보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 손을 뻗어 감싼다. 손바닥에 멍이 들고 무릎 꿇고 매달렸다. 


그 돌은 불가촉천민의 한계선이었다. 그 너머로는 들어갈 수 없는 결계와도 같았다. 한참을 선조와 특히 다무 당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되뇌었다. 맨발로 그가 꿈꿔왔던 미래를 오늘에서야 이 돌을 안고 볼 수 있었다. 그의 인생을 이뤄냈다.


신분이 낮아 본인들이 섬기는 힌두교 사원에도 출입할 수 없고, 신분이 낮아 발자국이 남지 않도록 뒷꽁무니에 빗자루를 달고 다녀야 하며, 신분이 낮아 물을 마음대로도 길어다 마시지 못하는 삶.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못한 삶이 연민이 아닌 희망을 보게 하는 이유는 수많은 달리트가 그토록 마음속 깊이 원했던 그저 동등한 인간으로 남편이자 아빠로 아내이자 엄마로 살고자 하는 단순한 소망을 응원하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다무와 소누의 인생을 하루에 13 안나(1루피-한화 16원-가 16 안나) 정도를 벌 수 있었던 이들의 처절한 시절부터 천천히 따라간다. 그 속에서 피어나는 다음 날의 한 끼를 향한 또는 가족을 지킬 수 있는 희망과 사랑. 불가촉천민이라는 천한 존재의 권리에 대한 도전 등은 험난한 인생을 그나마 훗날 카스트의 자유를 기대할 수 있도록 하는 버팀목이다. 그리고 당신들의 후손이 그 돌을 안은 순간, 다무와 소누의 인생의 투쟁이 헛되지 않았음을. 희열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들의 인생은 금처럼 아름답게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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