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은누룽지 Aug 28. 2020

Ep15. 당신의 인생, 금의환향(上)

열다섯 번째 방울

※오늘의 이야기는 카스트제도에서도 소외받는 불가촉천민 달리트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上, 下편으로 나누어 제작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더러운 발자국을 지우기 위해 허리춤에 빗자루를 매달고 다녀야 합니다. 우물에서 물을 길어 마실 수도 없습니다. 사언에 들어가 신께 기도드릴 수도 없습니다. 신성한 곳이 더럽혀진다는 이유로 그곳에 그림자도 드리울 수 없습니다.

신이 우리에게 주신 권리는 오직 하나, 구걸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우리가 천하게 태어난 것은 전생에 지은 죄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우리와 닿는 것만으로도 오염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이름은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 달리트입니다.

-신도 버린 사람들 (나렌드라 자다브)

다무는 달리트 집안에서도 마을의 전통과도 같은 예스카르(마을의 심부름꾼)의 의무를 맡았다. 하루는 마을에 맘레다르(세리)가 찾아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사실을 마을에 알리기 위하여 그가 탄 말보다 빠르게 달려야 했다. 맨발로 이글거리는 땅 위를 다리가 부서지도록 달렸다.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맘레다르를 칭송하는 노래를 불렀다. 그것이 그의 의무였다.  


맘레다르를 대접하고 나오는 길. 그는 허기를 달래지도 못한 채 강 위에 떠오르는 시체를 지켜야만 했다. 서장이 올 때까지 밤이고 낮이고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것은 높으신 카스트들의 명령이자 달리트의 운명이었다. 또한 다무 마하르의 태생적 한계였다. 때깔이 고운 서장은 다음날 낮이 돼서야 나타났다.


그는 다무에게 시체를 강에서 꺼내오라고 지시한다. 그러나 다무는 그를 거부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다무가 한 행동은 카스트의 위계를 거스르고 나아가 힌두 신이 정해놓은 규율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럼에도 다무는 용기가 있었다. 이는 바바사헤브 암베드카르 박사가 일전에 일러준 인간의 존엄성이자 수많은 달리트의 염원이었기 때문이다.


다무는 높으신 카스트의 무자비한 폭행 속에서도 그 뜻을 굽히지 않는다. 아주 먼 옛날, 지나가는 개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던 때를 생각하며 그는 더 이상 이런 참혹한 실상을 참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본 것은 가족들의 냉담한 시선이었다. 감히 그분들의 심기를 건드리며 집안의 먹칠을 한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며 나무라는 바이(어머니)를 보며 다무는 그날 밤 아내와 함께 마을을 떠난다.


다무에게는 꿈이 있었다. 태생적 한계를 벗어나 매일을 도전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달리트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순간은 없어야 했다. 그렇기에 교육을 받아야 했고 항상 배워야 했다. 일터에서 치이고 바바사헤르의 뜻에 따라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주장하며 가난한 가정을 살리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그는 달리트 다무 마하르가 아닌 최고의 인간, 아버지, 남편으로 살고 싶어 했다.


다무의 아내 소누는 열 살이 안된 나이에 다무에게 시집을 왔다.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까무잡잡하고 투박한 다무와 달리 소누는 곱고 흰 피부였다. 그러나 그녀는 본인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의 눈동자, 피부, 얼굴형을 본 기억이 전무했다. 소누는 두려웠다. 한 번도 본적 없는 사람과 결혼이라니. 다무는 그런 어린 신부의 고충을 잘 보듬어주고 따뜻한 마음으로 감싸주었다. 누구보다 아껴주고 사랑했다. 남편의 지극정성으로 어린 신부의 마음은 조금씩 그의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그녀도 다무의 도전적이고 진보적인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다무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가끔은 귀가 간지럽기도 했지만, 그의 말을 경청하고 뜻을 이해했다. 그리고 그를 남편으로서 존중하고 동의했다.


그가 집과 마을을 떠나겠다고 하던 날. 눈물을 흘리던 소누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따라나섰다. 다무가 가는 길에 항상 본인이 있어야 했고, 그녀의 일생은 다무와 함께였다. 그러나 걱정하지 않았다. 그가 가는 길에는 믿음이 있었고 옛날 생각에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그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소누도 힘든 여정을 떠나 다무의 꿈을 이뤄줄 준비가 되어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Ep14. 공부라는 것에 대한 고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