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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누룽지 Sep 12. 2020

Ep17. 이제는 놓아줘야 할 때?

열일곱 번째 방울

이제는 놓아주어야 할지도 모르는 취미에 대하여 이야기 해볼까 한다.


찢어지고 흩어진 구름 위 파아란 하늘은 우리에게 언제나 여행의 동반자가 되어주었다. 여행의 동반자는 구름에 서려 있지만 어디선가는 지켜보는 좋은 친구였다. 힘이 들 때면 하늘의 하늘이 깃털의 가벼움처럼 기분을 떠오르게 하고, 내가 탄 비행기에서는 구름과 떨어져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를 맞아주기도 했다. 밤에는 반딧불 같은 새 친구를 데려와 심심하지 않게 해주며 찌는 더위에는 비를 내려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여행의 동반자를 집에서만 바라보는 것은 꽤나 큰 고역이다. 창문의 유리와 방충망이 우리의 추억을 흐릿하게 하는 것은 책상에 앉은 시간 만큼이나 지루하고 뻐근한 것이다. 추억을 되새기며 넘겼던 앨범과 일기는 무심한 듯 세월의 향기를 맡아 옅어지고 침전되었다.


색바랜 필터의 카메라로 담은 사진은 아름다움을 엇나가 버렸고, 어린 시절의 여행 일기는 생각을 담지 못한 가벼운 스케쥴에 불과했다. 낡은 팸플릿과 구깃한 지도는 그나마 남아있는 여행의 항로를 다시금 개척하게 하는 방구석 놀이였다.


새로운 향기가 다시 올 것이라는 일종의 소망은 언제쯤에나 들어줄 것인가. 어쩌면 다시 찾을 수 없는 잃어버린 취미가 되어버린 걸 수도 있다. 지친 몸을 달래고 자유롭게 본인을 노출하며 누구도 모르는 동반자와 함께 하는 순간을. 고대하고 설레하던 마음속의 열정과 여행 가방 속의 조그만 소품들은 저 만치 어두운 바다로 내던져지는 듯하다.

여행 속의 자유로운 시선으로 봤던 사람들과 풍경들. 나는 그런 순간들을 즐겨왔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나홀로 그들의 시선과 맞추고 그쪽 세상에 담긴 이야기를 나만의 색감으로 점철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처럼 작아지지 않아도 되었던 곳에서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그들의 표정을 보는 것. 세상 사는 이야기를 다른 나라 사람과 공유하거나 여행지를 함께 다니는 것. 한국이라는 나라를 바라보는 시선과 그들이 한국에 살았던 생생한 기록을 입을 통해 전해 듣는 것. 타지인인 내가 그곳에 가서 현지의 사람들에게 전하는 초행길의 엉뚱함. 신비롭고 황홀한 순간들이 많았다. 그렇게 열려있던 우리의 자유로움이 닿을 수 있는 세계의 곳곳은 안타깝게도 막혀버렸다.


이제는 인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더 아름다워진 세상 속을 온 얼굴이 아닌 마스크로 반쯤 가려진, 온전한 마음을 알 수 없고 입이 아닌 눈으로 말하는 것을 들어야 하는 시대. 아니 이조차도 허락되지 않을 시기가 왔을지도 모른다. 이젠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취미를 놓아줄 때가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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