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여덟 번째 방울
#1. 원자의 군집
뼈와 물로 구성된 우리의 몸은 더 자세히 들어가면 원자들이 우주 위에 떠 있는 별 만큼이나 채워져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원자들이, 원자핵 주위를 도는 전자, 원자핵에서 양성자, 중성자, 쿼크에 이르기까지. 아주 사소한 물질로부터 당연하다는 듯이 우리 몸에 존재하고 있다. 마치 우리의 피가 빨갛고 철이 오랜 시간이 흘러 붉게 녹이 스는 것과 같다.
김상욱 교수가 집필한 '떨림과 울림'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죽음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어릴 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다면, 지금은 그저 탄생이 가져오는 원자의 군집이 그 수명을 다하면서 죽게 되고 저 멀리 날아가 어느 곳에서 자유롭게 떠다니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마치 우리가 가족을 꾸려 사람이 모이고, 사회에 적응하며, 국가가 탄생해 '국민'으로 국가에 존속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이다. 우리는 당연하고도 자유로운 원자의 모임과 흩어짐에 인생을 담고 성공을 담고 사랑을 담는다.
#2. 인간의 존재가치
그렇다면 원자의 군집일 뿐인 우리 인간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원자가 가득 모여있는 광활한 하나의 우주 속에 점이라고 생각하면 터무니 없이 허무한 것이다.
계속 팽창하는 우주의 조그만 별에 그것보다 더 조그만 점이 살아 움직이며 충실하게 자연으로 돌아갈 때까지 사는 것은 우리의 몸에 조그만 원자 또는 쿼크가 움직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할아버지께서 누누히 말씀하시는 '인간은 모여사는 것이다.'는 원자들의 또 다른 군집인 것처럼 느껴진다. '신이 목적에 의해 우릴 창조했다.' 이 한마디면 간단하게 설명이 되지만 그것보다 더 구체적인 답을 원한다. 우리는 왜 존재할까?
성공을 위하여 또는 어떤 목적을 가져 존재한다는 것은 그저 인간으로써 성취하고 싶은 목적성인 것일 뿐, 존재 그 자체에 가치가 있는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인간으로 살아감에 필요한 요소들을 담는 것이지 정작 내가 존재하는 것에 대한 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근원적인 인간의 존재에 대해 알고싶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의 존재는 무의미하다는 것인가. 그럴 수도 있겠다. 흘러가는 원자들의 운동에 그럴듯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흘러가는 물이,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것이 모두 그냥 그랬던 것처럼 의미를 부여할 것은 아니다.
또는 우리가 위치한 지구라는 원자의 군집의 군집.그것을 움직이기 위해 부품으로 산다는 것은 너무나도 우울한 답변이다.
누구도 평생을 세상의 부품으로 살다가 의미가 없어져 흩어져버리는 것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 각자의 멋진 삶을 살고 싶어한다. 그렇기에 성공하고 돈을 벌고 사랑하며 존재를 뛰어넘는 목적성을 갖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아니면 저 멀리 우주 너머에 새로운 원자(이방인)와의 연결을 통해 더 높은 지위를 향해 나아가도록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그들과의 만남 이전에 먼저 흩어질 원자가 되는 것이 더 빠를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직까지 나는 인간의 본원적, 근원적 가치는 '무의미'라고 생각한다. 의미가 없는 것으로 판단한다. 우리 주변의 당연히 그러하고 그래야만 하는 것들이 존재함과 같은 것이다.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으로 살아남고 무의미한 가치를 뛰어넘고자 멋진 목적성을 갖고 살아가기에 무의미한 존재에 대한 멋진 변명 혹은 아름다운 답변이 되는 것 같다. 언젠가 인간의 또 다른 존재가치를 깨달았을 때, 이보다 더 숭고한 답변을 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