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아홉 번째 방울
나는 요새 과학에 빠져있다. 줄곧 소설을 비롯한 인문학을 동경하던 나에게 신선한 바람이 분것이다. 사람들에게 근래 과학을 재밌게 보고있다고 하면 ‘문과 답지 못하네' '문송이(문과+애송이)가 무슨 과학을 한다고'(문과라서 죄송합니다와 맥락을 같이한다.)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당당하게 과학이 설명해주는 세상의 것들을 이해했을때, 그 쾌감은 인문학이 줄 수 없는 또 다른 것이었기도 하다. 가령, 우리는 중력에 의해 모든 것이 낙하는것으로 알고있는데, 저 멀리 보이는 달은 왜 낙하하지 않는 것인가와 같은 어릴적 호기심 같은 것 말이다. 이는 어려운 수학문제를 혼자 힘으로 풀어냈을 때와 비슷한 감정이다.
내가 아주 소싯적부터 과학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즈음인가 목표성 짙은 보여주기식 공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을때(Ep14. 공부에 대한 고찰 참고), 분명 학업은 열심히 하던 그때, 수학과외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가끔씩 꿈이 뭐냐고 물을 때가 있으셨다.
나는 어떠한 직업에 대한 확고한 발언보다는 두루뭉실하고도 몽환적인 이야기를 했다. 창밖을 보면서 이야기하기를, '커다란 우주에 수십억개의 은하가 있고 그 은하 안에 수십억개의 별이 있으며, 그 중 하나인 우리은하에 별하나 지구에 사는 조그만 먼지 같은 사람들이 있는 게 신기해요.'. 대단히 중2병스럽다.
이후, 학교 교과서의 과학을 볼라하면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수식 뿐으로 역시 시험을 위한 그것은 흥미를 접어두게 하는 것이었다. 그 후 얼마나 지났을까. 세상에는 <인터스텔라>, <그래비티> 또는 <마션> 과 같은 우주에 관한 영화가 출현하여 미지의 세계에 대한 궁금증으로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나도 그 중 하나였다. 신비로운 것은 언제나 호기심을 유발한다. 곧 서점으로 달려가 우주를 담은 필독서 '코스모스'를 구입, 읽어나갔다. 나는 아직도 이 책이 어떻게 청소년 권장도서인지 모르겠다. 쪽수도 물론이거니와 이 어려운 내용은 성인이 되어서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그렇게 '코스모스'와 이별을 고한 몇 년 후에 다시금 과학 서적을 집어들었다. 김상욱 박사의 저서들이었다. '떨림과 울림'과 '김상욱의 과학공부'는 이제서야 과학의 새 지평을 열게 해준 것이었다. 과학을 알고싶었지만 너무나도 접근하기 어려웠던 법칙들은 인문학과 철학이 더해져 더 아름다운 교양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사람들은 교양을 쌓기 위해 책을 읽으라 한다. 그러나 보통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교양을 쌓기 위한 초석에 과학은 빠져있다. 이보다는 역사, 경제 또는 소설을 교양으로 바라보는 것이 훨씬 익숙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다들 이것들이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고 생각의 폭을 넓혀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학은 그런 자리에서 박탈당하고 과학자들만의 것이 된지 오래됐다.
실제로 '삼국지'를 이야기할 때, 그 속에서 얻은 일상속의 교훈을 늘어놓는다. 꽤나 교양을 쌓은 사람처럼 보인다. 그런데 삼국지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에너지'에 대하여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 조금은 낯설게 느끼거나 무슨 덕후처럼 생각한다.
'삼국지'가 사고에 도움이 되는 만큼이나 아니면 더 '에너지'는 도움이 된다. 우리가 에너지를 얻기위해 먹는 식물의 에너지는 태양으로부터 얻고 그 태양의 에너지는 빅뱅으로 온 우주가 처음 시작된 그 곳으로부터 발현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삶에 직결되는 이치들을 어찌 교양이 아닌 것처럼 생각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인문학을 동경하고 그것이 아름다움을 인정하는 한편, 과학이 지닌 아름다움과 물음을 자극하고 호기심을 유발하는 천부적 재능을 인정했다. 과학은 그만큼이나 실로 대단하며 즐거운 교양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