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번째 방울
사치(奢侈):필요 이상의 돈이나 물건을 쓰거나 분수에 지나친 생활을 함.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백과사전이 정의하는 바, 기준에 따라 사치가 아닐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하면서 글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필자는 호화스럽지는 않지만 작게나마 사치를 즐기고 있다. 남자라면 한 번쯤 들여다봤을 '시계(손목시계를 의미한다)'이다. 나는 일찍이 시계에 눈을 떴다. 아저씨들의 전유물이며 사치라고 생각하지만 20대인 내가 즐길만한 시계도 충분히 있다. (눈떠보니 시계 보관함에 시계가 4점이 되었다. 얼마 안 가 또 추가할 것 같다.)
20대에게 또 다른 취미이자 사치를 부여하고 싶을 때 시계는 아주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1인이다. 꽤 오래 시계 생활에 발을 들였기에 이 생활과 지식에 나름의 자부심도 있다. (광고가 주어진다면 세상의 정성을 들여할 생각도 있다.ㅎ)
문득 드는 생각에 모든 것이 그렇듯 여기에 궁금증을 더해본다. '시계는 어떻게 해서 사치품이 되었을까'. '여타의 것들은 어찌 사치라는 기준에 오른 것일까.' 오랜 고민에 내린 결론은 '목적성의 최소화와 다양화'이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최소화해놓고 다양화를 한다니' 할 수 있겠지만, 아무 생각 없이 둘 다를 받아들이면 된다.
사실 여타의 사치품들을 봐도 이런 공식이 적용되어 있다. 가방이라고 하면, 가방은 목적은 말 그대로 '휴대'인데, 상황에 따라 분위기에 따라 가방의 디자인이 다양화되어있다. 일반적으로 가죽을 사용하더라도 여러 종류의 가죽을 사용하기도 하고, 휴대용품의 개수에 따라 크기도 달라진다. 결국, 목적은 최소화를 시켰고, 다른 목적에 따라 다양성이 매우 높아졌다.
가방의 세계는 잘 모르지만 시계의 세계는 어딜 견주기 힘들 만큼 방대하다. 당연히 시계의 목적은 '시간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파일럿, 다이버, 군용,드레스 등의 목적을 필두로 하여 뻗어나가는 줄기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다. 케이스의 재질, 방수 성능, 퍼포먼스, 디자인 등 여러 요소들의 다양화로 끝이 보이지 않는다.
거기에 시계를 납품하는 국가의 다양성. 스와치 그룹의 스위스, 기술력의 독일, 시티즌과 세이코의 일본, 싼가격의 중국, 감성의 북유럽, 떠오르는 신성의 홍콩등 브랜드의 네이밍은 물론 '가성비'로 승부하는 마이크로브랜드들의 기세도 아주 드높다. 이런 다채로움을 보고있노라면 사치를 안 할래야 안 할수가 없다. 의류 또한 너무나 당연하게도 이 법칙을 거스르지 않는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사치를 부린다고 일컫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들을 아우르는 최고봉의 하나를 구입하면 사치를 할 이유가 없지 않은 가'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분명히 사치는 필요 이상의 돈이나 물건을 쓰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대개 최고봉을 사려면 그만큼의 돈을 쓰는 것은 현실이다. 시간을 보는데 천만 원 (가령, 롤렉스 서브마리너라 일컫는) 가량의 돈을 쓰는 것은 분명 사치다.
그리고 시계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시계 하나로 쭉 생활을 이어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요일별로 계절별로 상황별로'라는 명목 하에 몇 개의 시계를 돌려 찬다. 그게 롤렉스를 넘어서는 더 높은 하이엔드(파텍필립, 오데마피게, 바쉐론 콘스탄틴... 등)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아마 가방도 의류도 모든 것이 그러할 테다. 심지어 아이들이 사용하는 학용품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사치를 굳이 나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나도 사치를 하고 있지만 그건 시계를 국한하는 것뿐만 아닌 모든 것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필요 이상의 것을 사는 데에 사치가 아닌 것은 없다. 음식도 필요 이상으로 식후 디저트를 먹는다던가 하는 행위도 사치가 아닐 리 없다.
다만, 그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면 마다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사치의 행위로 인해 조금이나마 피곤한 삶이 나아지고 힐링이 되는 것, 또는 즐겁다면 어찌 보면 그것은 지금 시대의 필연은 아닌가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