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고요함 뒤에 찾아오는 광명(2)

part 1. <이번 내리실 곳은 '동유럽'입니다.>

by 작은누룽지

여운을 남기고 포스토이나 동굴로 다시 돌아왔다. 시간에 맞춰 동굴 앞으로 가니 사람들이 한 군데 모여서 검표원에게 티켓을 검사받고 있었다. 이곳은 단체로 가이드를 따라 움직여서 그룹을 형성해야 했는데, 서양인 한팀 중국인 단체 관광객 한팀 이렇게 나뉘게 되었다.


우리는 서양인팀에 붙어서 가라고 검표원이 일러주었다. 한국인 관광객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사실 오스트리아에서부터 그 많은 명소를 다녔어도 한국인하며 한국말을 듣지 못했다는 것이 일본과는 너무나도 상반되었는데, 슬로베니아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하나둘 동굴을 따라 들어가는 트레일에 몸을 옮겼다. 간이 기차는 꽤 오랜 시간을 덜컹거리며 들어갔다. 종유석들과 석순들이 계속 이어졌지만, 느낌은 번번이 새로웠다. 종유석에서 떨어진 물방울들이 굳어 석순이 되고 석순이 계속 자라 하나의 석주가 되는 억겁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기분은 새로웠다. 그 이후로는 동굴에서 생각나는 것이 별로 없다.


우리는 어중간하게 중국인 단체관광객 뒤, 서양인 선두 앞에서 갈피를 못 잡고 방황했다. 더 혼란스럽게 한 것은 거대한 동굴 속이기는 하나 좁은 골목 골목에서 사진을 찍겠다고 뒤에 사람들을 한참을 기다리게 하는 비신사적인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트름을 대놓고 크게 하는 인물들이 관람에 불편을 준 것이다.


아빠가 실수로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려 주의를 받고 ‘땡큐’를 외치는 소리가 울려 퍼져 가족 셋이서 웃었던 기억과 동굴의 끝에 귀여운 도롱뇽이 있는 수조만이 좋은 기억으로 남은 시간이었다. 그래도 나오면서 우리를 한국인이라며 선뜻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건네준 직원들에게 감사는 잊지 않았다.

동굴의 끝. 이런 화려한 조명들이 크리스마스임을 알려준다.

강추위에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며 내 인생에서 가장 감동을 주었던 도시, 피란으로 출발할 준비를 마쳤다. 피란은 슬로베니아의 남서쪽으로 크로아티아의 남쪽 이탈리아의 북쪽과 맞닿아 있는 해안 도시이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높은 곳에서 크로아티아와 이탈리아 모두를 볼 수 있다고 하는데, 한겨울에 우리에게 그런 날씨를 허락해 줄 것인지는 미지수였다.


피란으로 향하는 고속도로에 점점 해안 도시의 풍경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선박들과 컨테이너들이 출항준비를 하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피란의 해안도로를 달리며 숲속의 정원을 연상케 하는 나무들이 양옆으로 뻗어있는 2차선은 노을과 함께 말 그대로 가슴 설레는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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