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있어서 제 나이처럼 행동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 같다. 10대, 20대, 30대, 40대의 정해진 나이의 행동이 있는 것도 아니거만 의례적으로 사람들은 상대방의 나이를 듣고 기대하는 행동과 생각하는 양식이 있는 것 같다. 10대 때 나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고, 20대의 나는 어설픈 어른 흉내를 내는 잼민이었다. 그렇다고 30대의 내가 됐다고 해서 갑자기 뿅 하고 어른이 되고 그런 것은 아니다. 아직도 모르는 게 많고 세상이 나를 억까하는 것 같고 잼민이 같은 면들이 툭툭 튀어나온다.
그러다 문득 울컥 치밀어 오르는 감정이 느껴질 때는 언제나 서투르기만 한 사람일 뿐이다. 된다고 생각했던 일이 안 됐을 때 드는 우울한 감정은 내 생각이상으로 나를 덮치며 나의 자존감을 깎아 내린다. 부정적 감정에 잠식되지 않기 위해 다른 생각을 하다가도 그게 맘처럼 쉽게 정리되지 않았음을 문득문득 깨닫게 된다. 인정하고 나의 부족함을 이해하지만 감정이란 게 늘 그렇듯 내가 마음먹은 대로 쉽게 되지 않고 그렇기에 드는 씁쓸함 까지도 가끔은 나에게 벅차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 또한 지나갈 감정이며 너무 이 순간에 매몰되지 않게 스스로에게 긍정적 행동을 불어넣으려고 노력한다.
퇴사를 하고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면서 가끔은 조급해질 때도 있고, 이게 맞나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때 내가 욕심을 내려놓고 좀 더 앞으로 나아갔어야 했나? 지금의 내가 맞게 가고 있는 걸까? 셀 수 없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갈피 잡을 수 없는 감정에 서서히 젖어 들어갈 때도 있다. 모든 사람이 처한 상황은 다르고 좋을 때가 있으면 나쁠 때도 있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지금 이 순간이 끝나지 않으면 어쩌나 한 없이 불안감이 덮쳐 올 때도 있다.
그래서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자기 합리화를 비롯한 스스로가 느끼길 바라면서 하는 억지 생각. 당장 내가 무언가를 시작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 인생 망하지 않아. 사람마다 각자 처한 상황이 다르고 그에 따른 생각도 다른 게 당연한 거야. 남들의 생각과 의견이 지금 내 상황과 차이 난다고 해서 기죽을 필요도 없고 그 의견에 나를 억지로 구겨 넣을 필요도 없어. 인생은 원래 다 그런 거야. 다른 사람 기준에 내가 모자라 보일지라도 내 인생은 내가 사는 거고 그거에 대한 책임도 내가 지는 거야. 누가 대신 책임져 줄 수 없어. 그러니까 조급해하지 말자. 나는 지금 내 속도대로 가고 있는 거야. 딴생각하지 말자.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거, 내가 행복한 것만 생각하자.라고. 누군가의 형식적인 위로가 아닌 내가 직접 해주는 셀프 위로를.
그리고 그런 감정이 들 때 나는 부정하지 않고 솔직히 인정해 본다. 기분이 나쁘고 우울하고 자신감이 없어지는 지금 내 기분을. 그런 뒤에는 왜 그런 감정이 들었지는 곰곰이 생각해 보고 그 기분을 느끼게 된 원인에 대해서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그래 그건 원래 내게 아니었던 거지, 내가 이러한 부분을 좀 더 채우려고 노력했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 수도 있지만 그러지 못한 내가 가장 최초의 원인이었음을 덤덤히 받아들인다. 물론 받아들인다고 해서 느꼈던 감정이 순식간에 가라앉거나 없어지진 않는다. 그럼 난 또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둔다. 그걸 더욱 돋우려 하지도 않고, 가끔 정말 답답하면 친한 사람들에게 얘기하면서 내가 이랬는데 이런 결과가 나왔다, 나도 이렇게 더 해봤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라고. 그럼 또 신기하게 머릿속에 빙빙 돌던 그 일은 점차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그 일로 인해 느꼈던 내 감정은 거짓말처럼 가라앉게 된다.
어쩌면 지금은 내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건 잊히고 괜찮아진다는 것을. 그러니 애써 그것을 억지로 잊기 위해 발버둥 치지 않아도 된 다는 것을. 나이가 들어도 순간 느껴지는 감정엔 아직도 서투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을 대하는 자세는 조금은 나이 다워지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나이가 그렇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 나이가 주는 압박감, 불안감, 행복감, 싱그러움, 자유로움이 다 있는 거 같다. 단순 어리다고 압박감이 없는 것도 아니고 나이가 많다고 싱그러움이 없는 게 아닌 것처럼. 오늘도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나이가 들었다는 반증 같아 약간은 웃프기도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의 내 나이가 좋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