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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in Sep 23. 2024

퇴사 후 삶, 추억의 배낭여행

23살 휴학을 하고 배낭여행을 다녀왔었다. 사실 배낭여행도 내가 스스로 결정했다기보다는 하나밖에 없는 대학 동기가 가자고 해서 그래! 하고 결정했고 배낭여행지도 친구가 뉴질랜드 어떠냐고 해서 또 좋아! 해서 가게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좀 어처구니없는 과정의 모습일 수도 있지만 난 아직까지도 그렇게 살고 있다. 사람 성격 쉽게 변하는 거 아니라고 한평생 그렇게 살아온 성경이 쉽게 바뀔까? 하지만 비록 과정은 누군가의 의도대로 되었을지 몰라도 그 과정을 통해 얻은 건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인생 경험치였다. 누군가 나에게 너는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언제냐고 묻는다면 난 고민 없이 바로 그 배낭여행을 꼽는다. 


갓 스무 살을 넘겨 도전했던 그 경험은 나 자신의 마인드를 바꿔 놓는 계기가 되었다. 얼마 전에 어떤 캡처사진을 봤는데 박명수님과 퇴사하고 여행을 떠난다는 어떤 분이 나와 이야기를 하며 조언을 주고받는 장면인 거 같았다. 거기서 박명수님의 조언은 여행보다는 회사 경험을 더 쌓아 봐라, 그게 진짜 경험이 될 것이다라는 게 핵심인 것 같았고 그 밑에 달린 댓글들도 대부분 그 말에 공감하는 것 같았다. 그때 나는 좀 아이러니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마다 보고 느끼는 것은 모두 다르고 각자의 삶을 살아온 방식으로 본인의 경험을 쌓는 거기 때문에 명수님의 그 조언은 정말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했다면 분명 여행보다는 회사를 다니는 게 더 큰 경험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좀 다르게 생각한다. 물론 경험을 하는 나이가 다르기에 달라지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내가 경험했을 때는 20대 초반의 사회로 나아가기 전이라는 시점이었고 그분은 한참 사회의 한가운데로 나아가다 잠시 멈춰 섰기 때문에 이해받는 것이 다를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이가 어리고 적은 것보다 그 환경이 주어졌을 때 더 많은 걸 받아들이는 건 나이와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어떤 여행을 하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나에게 배낭여행은 단순히 놀고먹고 즐기는 그런 여행이 아닌 정말 인생에 무언가 깨달음을 얻는 그런 여행이었다. 그때 가장 많이 든 생각은 내가 지구 반대편쯤 와서도 이렇게 잘 먹고 잘 사는데 한국에 돌아가면 얼마나 더 잘할까? 말도 제대로 안 통하고 아는 사람도 한 명도 없는 이런 곳에서도 이렇게 잘 사는데, 말도 잘 통하고 뭐든 조금만 노력하면 다 해결되는 한국이라면 내가 과연 못할 게 있을까? 란 생각이었다. 또한 익숙하지 않은 환경은 나에게 적당한 긴장감을 일으켰고 그건 내가 생활하는 데 있어 적당한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돈 없는 학생 때 배낭여행을 간 거였기 때문에 매일 외식을 하며 돈을 펑펑 쓰는 것도 아니었기에 살아생전 처음으로 라면 이외에 요리도 해보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굳이 내가 요리를 할 필요성이 없었다. 학생 때는 부모님이랑 같이 살았던 것도 있지만 굳이 내가 뭘 해 먹지 않아도 쉽게 사 먹거나 시켜 먹을 수 있는 환경이다 보니 요리라는 분야에 관심이 있거나 즐기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노력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대체할 수 있는 게 얼마든지 있는 환경이었다. 하지만 배낭여행할 때는 돈을 아낄 수 있는 가장 큰 부분이 식비였기 때문에 매일 장을 봐 그 공용 공간에서 열심히 뭔갈 해 먹었었다. 자연스럽게 레시피 같은 것에도 관심을 갖게 되다 보니, 쉽게 해 볼 수 있지만 굳이 할 필요가 없었던 새로운 분야인 요리에도 도전해 보게 되고 거기서 성취감도 얻고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구 나라는 걸 빨리 깨닫기도 하고. 요리라는 아주 작은 부분을 예로 들었지만 생활 전반에 걸쳐 그렇게 나라는 사람에 대해 스스로 더 많이 알게 되고 자신감도 많이 갖게 되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같은 상황이지만 난 이것도 못하는구나라고 좀 더 패배 의식에 젖어들 수도 있지만 분명 새로운 도전을 위해 먼 길을 떠난 사람이라면 적어도 그 순간에 그런 패배 의식보다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여행을 단순하게 돈 쓰러 가는 흥청망청 소비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나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무형의 자신감음 얻은 건 태도로 반드시 티가 난다고 생각한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면접에서 떨어져 본 적이 거의 없다. 물론 경쟁률이 그렇게 높은 곳들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경쟁자가 없던 것은 아니었으니. 지금까지 면접 봤던 곳 중에 떨어진 곳은 한 군데밖에 없다.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면접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나의 대한 믿음 혹은 자신감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물론 단순 저 배낭여행에서 얻은 것만은 아니지만 애초에 나는 그게 시작이었다고 생각한다. 내 마음속 가장 밑바닥에 깔린 생각은 안 되는 건 없다는 생각이다. 내가 그 어린 날 경험했던 순간의 기억이 내 가장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이다. 물론 이걸 반드시 여행에서만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행을 통해서도 분명 이런 것을 느끼고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언제 어떤 순간에 어떤 걸 배우고 깨달을지 알 수 없다. 그냥 길 가다 걸어가는 사람을 보면서 깨달을 수도 있고, 버스정류장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깨달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선택을 하건 타인이 맞다 틀리다고 단정 지을 필욘 없다. 


물론 인생을 좀 더 많이 산 인생 선배의 경험으로, 본인이 경험한 걸 이야기할 순 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하지만 그것은 나의 인생의, 나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보고 배운 것이지 타인의 삶을 다 알 순 없지 않을까? 지금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도 누군가가 보면 너도 니 경험 가지고 단정 지어 말하네!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맞는 얘기다. 그러니 내 얘기도 들을 부분만 듣고 흘릴 부분은 쿨하게 흘려보내길 바란다. 나도 나이가 들면서 막막할 때가 있다. 내가 40대가 되면, 50대가 되면, 60대가 되면, 그때도 나는 지금과 같을까? 란 생각도 들고 나는 나일뿐인데, 변하는 나이에 맞춰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진다는 게 어쩐지 무섭기도 하다는 생각도 든다. 인생의 정답은 없는 것 같다. 단 한 사람도 같은 삶을 살지 않는데 누가 누구의 인생의 정답이 되어 줄 수 있겠는가? 그냥 각자의 삶을 그렇게 사는 것일 뿐이지. 그러니 각자 인생의 무게는 본인이 생각하는 것만큼만 짊어 지자. 남들의 시선, 기대, 바람은 내 삶을 책임져 주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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