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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in Sep 11. 2024

퇴사 후 삶, 부모님과의 시간

아무래도 요즘 시간이 많다 보니 핸드폰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냥 흘려보내는 시간이란 생각이 들다가도 요즘 사람들은 어떤 거에 관심이 있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단편적으로 보이는 것들을 구경할 수 있어 재밌기도 한 시간이다. 핸드폰으로 이것 저것 볼 때면 작은 네모난 화면을 앞세워 나를 잠시 숨겨두며 그 어느 때보다 솔직해지는 곳이기도 해서 적나라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 어젯밤 우연히 한 글을 보게 되었다. 다시는 부모님과 해외여행을 가지 않겠다는 다짐의 글이었다. 부모님이 유럽 자유여행을 자식과 함께 가고 싶어 해서 딸인 글을 쓴 당사자가 계획해 함께 떠난 여행에서 부모님이 불평불만만 해 다시는 함께 여행을 안 간다고 다짐하는 글이었다. 그 글을 보면서 나는 조금 서글펐던 거 같다.


나는 우리 집에서 늦둥이다. 오빠랑 나 둘이지만 오빠랑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완전 막둥이 중에 막둥이인 나다. 집안 사정이 넉넉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우리 엄마는 주어진 환경에서 나를 최선을 다해 키워 줬다. 가끔은 엄마 아빠를 원망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고 이해하지 못하기도 하지만 함께 살아가는 환경에서 함께 살아가긴 위한 최소한의 과정이 아닐까 싶은 정도였다. 그런 내가 그 글을 읽었을 때 왜 그런 감정이 들었을까?


나도 더 어렸을 때는 부모님의 생각을 지레짐작했다. 우리 엄마 아빠는 이런 거 별로 안 좋아할 거야. 이런 건 너무 힘들다고 싫다고 하겠지? 돈 낭비라고 생각하겠지? 괜히 말 꺼냈다가 욕만 먹을지도 모르지. 뭐 그런 생각들? 하지만 아니었다. 내가 그렇게 생각했던 우리 부모님도 사실은 여행을 좋아했고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는 걸 좋아했다. 첫 회사를 퇴사하고 내가 시간적 여유가 생겼을 때 여행을 가고 싶었는데, 혼자 가긴 그러니까 부모님 모시고 한 번 가볼까? 란 생각을 했었다. 이때도 엄마 아빠랑 여행을 가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중심이 되어 나를 먼저 생각해서 한 행동이었다는 게 좀 죄송스럽다.


시작은 그랬지만 어쨌든 30여년 만에 처음으로 부모님과 함께 동남아 패키지여행을 가게 되었다. 부모님이랑 가는 거지만 딱히 더 좋은 상품으로 가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어차피 패키지는 거의 다 비슷하단 생각으로 그냥 적당한 상품을 선택했던 거 같다. 우리 엄마는 몸에 열이 엄청 많다. 한국에서도 5월만 돼도 덥다고 말씀하시는 분이다. 그런 엄마와 함께 여름에 동남아를 간다는 게 걱정이 되긴 했지만 사실 그렇게까지 깊게 생각하지 못하고 그냥 내가 그때 가고 싶었던 곳을 골랐던 거 같다. 나도 가기 전에 그런 걱정을 했다. 아 엄마 아빠가 가서 불명 불만만 늘어놓고 어렵다고 하면 어떡하지? 최대한 편하게 다니기 위해 패키지를 이용한 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란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막상 시작한 여행은 내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불평불만을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부모님은 너무 좋아하셨다. 내가 지레 짐작해서 우리 부모님은 이런 거 싫어할거야 라고 생각했던 그 모든 걸 부모님은 좋아하셨다.


새로운 곳에 가서 다양한 것을 보고 경험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나만큼 좋아하셨다. 사실 나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 부모님도 이런 걸 좋아할지도 모른단 걸. 하지만 그냥 내 편의를 위해 애써 모른척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패키지에서 만났던 일행 중에 대가족으로 함께 온 가족이 있었다. 같이 온 할머니가 했던 이야기가 아직도 종종 생각난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함께 좋은 것을 보고 먹고 하니 금방 서로의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었다. 여행 마지막날쯤 동남아 비행기는 보통 새벽 비행기기 때문에 밤늦게까지 일정을 하고 있을 때 할머님께 힘드시지 않냐고 넌지시 물었었다. 그때 할머니께서 하신 말씀은 나를 많이 반성하게 만들었다. "내가 여기서 힘들다고 하면 다신 나 안 데리고 다닐까 봐 힘들다고 하면 안 돼" 참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한 마디였다.


물론 할머니의 아드님은 정말 가정적이고 다정다감한 성격으로 보았을 때 절대 그럴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할머님은 어린 자식의 눈치를 보고 계신 거였다. 누가 눈치를 줘서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여기서 솔직히 말하면 나의 가족들이 나 때문에 힘들어하고 어려워할 까봐 애써 숨기시는 것이다. 가족분들과 함께 여행하는 그 시간이 즐겁고 행복할수록. 할머님이 가족분들을 배려하고 생각하는 마음이 크기에 티를 안내는 거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냥 그 한 마디가 어딘가 먹먹했다. 그리고 우리 부모님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생각 없이 투덜대면 던진 한마디가 우리 부모님을 눈치 보게 만든 건 아닌지.


부모도 자식도 처음이기에 서로에게 어떤 말이 정답이라고 할 순 없겠지만 그렇기에 한 번이라도 더 다정한 말, 다정한 행동을 해야 되는 건 아닐까 싶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나도 실제로 하는 게 쉽지 않다. 생각하고 다짐해도 막상 실제 상황에 놓이게 되면 어찌나 정반대로 하는지. 청개구리란 동화가 괜히 나온 게 아닌 철저한 현실 고증 동화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청개구리처럼 되지 않으려고 그래도 한 번 더 노력해 본다.


그 여행을 다녀오고 부모님은 아직도 종종 이야기하신다. 우리 가족이 다 함께 떠났던 그 첫 해외여행을. 그 여행을 다녀오고 나에게도 작은 목표가 생겼다. 매년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다니기로. 조금 더 여유가 된다면 내 첫 배낭여행지였던 뉴질랜드를 언젠간 꼭 엄마 아빠와 오고 싶다고. 마침 올해 뜻하지 않은 시간이 나에게 생긴 만큼 뉴질랜드는 아니라도 가까운 곳이라도 부모님과 여행을 다녀와야겠다. 함께 보내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추억할 수 있도록. 지금 이 시간에 그동안 못했던 것들을 하나씩 해 보는 것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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