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unjin Aug 28. 2024

퇴사 후 삶, 신입이란 이름표의 추억

완벽한 행복은 없다

    - 오늘부터 내 인생, 내가 결정합니다 中 -



나는 책을 읽을 때 와닿는 문구는 밑줄을 치거나 따로 메모를 해 놓는 편이다. 앞 뒤 내용 때문에 그 문구가 더 와닿을 수도 있겠으나 가끔은 그냥 그 한 마디, 한 구절이 마음을 울릴 때가 있다. 완벽한 행복은 없다는 한 마디를 읽으며 행복에 대해 생각해 봤다. 100만 원이 있어서 행복할까? 100만원 밖에 없어 불행할까. 누군가에게 100만원은 목숨과도 같은 돈일지 몰라도 누군가에게 100만원은 그냥 푼돈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없으면 그런가? 싶지만 그렇다고 당장 죽을 만큼은 아닌, 혹은 없어도 티 하나 안 날 것 같은 그런 금액. 쉽게 돈을 예로 들었지만 우리 삶에서 행복의 기준은 정말 천차만별이다. 


짧지 앉은 사회생활을 해오면서 내가 직장생활을 이야기할 때 절대 빠지지 않고 이야기하는 직장이 있다. 바로 첫 직장. 나에게 있어 첫 직장은 정말 수많은 감정을 교차하게 만드는 곳이다. 직장을 다닐 때는 끝없는 좌절과 허망함을 안겨 줬던 곳이고 퇴사 후에 멀리서 돌이켜 봤을 때는 그래도 사람, 리더에 대해 많은 걸 알려준 회사였다는 생각이 든다. 학창 시절까지 가면 너무 오래된 이야기라 나도 기억이 안 나지만 첫 직장만큼은 퇴사한 지 10년이 얼추 다 되어 가지만 또렷이 남아 있다. 오늘은 그런 나의 첫 퇴사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내 첫 직장은 사교육 회사였다. 내 전공은 사회복지사로 전공과는 정말 아무런 상관도 없는 직종이었다. 25살. 어리디 어린 나이에 도전했던 아직은 열정이 남아 있던,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순수한 도전 정신이 남아 있던 어리디 어렸던 나. 첫 사회생활이라는 건 참 만감이 교차하는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짧게는 1~2년, 길게는 4~6년의 마지막 학생 신분을 던지고 사회로 내딛는 첫 시작.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으며 어른 흉내를 냈던 대학교 마지막 시간을 지나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신입이라는 직함을 받아 든 생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 같고 시작할 수 있을 거 같지만 막상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는 그 어정쩡한 이름표 신입. 나도 남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시작이었다. 의욕은 있지만 막상 뭘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무작정 부딪쳤던 시작. 


처음 1년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지나갔다. 신입사원 교육을 받고 직접 현장에 투입되어 일을 배우고 일에 적응하며 성과를 내기 시작했던 1년. 1년은 내가 무언갈 생각하고 판단할 틈도 없이 지나갔다. 교육의 교자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내가 의도치 않게 입사하게 되어 1년을 보냈을 때는 그래도 아직 열정이 있었던 거 같다. 뭔가 내가 여기서 나의 잠재력을 끄집어내 한 획을 그어 보겠다는 각오? 지금 생각하면 귀엽기도 하고 웃기기도 한데 그때 당시에는 나름 진지했었던 거 같다. 하지만 그 1년이 지나고 다시 1년이 지났을 때 나는 이름 모를 감정의 벽 앞에 서있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울증 전 단계 같은 심리상태이지 않을까 싶은데 당시에는 나도 내 상태를 가늠할 수 없었다.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 일을 하고 실적을 채우고 회사 동료들과 웃고 떠들고 집에 와서는 우두커니 하얀 벽만 보고 앉아 멍하니 있던 내 모습이 지금도 가끔 떠오른다.


당시 내가 하던 일은 교육 컨설팅으로 일종의 프리랜서 같은 일이었다. 하루종일 사람들을 만나 상담하고 교육하고 설득하고 다시 상담하고 집에 들어오면 밤 10시에서 늦으면 새벽 1시. 그렇게 다음날 일 나가기 전까지 집에 와서 멍하니 있다 핸드폰을 뒤적이다 새벽에 겨우 잠이 들고 다시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하지만 스스로의 대한 의심과 불신은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자신감을 떨어트리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던 일들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느껴지는 자기 혐오감을 고스란히 떠안으며 나는 이 일을 해서는 뭐를 해도 안될 거야, 이 일이 내 앞으로의 커리어의 도움이 될까? 경력이 될까? 란 끊임얿는 의심을 되풀이하며 그렇게 스스로를 갉아먹어 가고 있었던 거 같다. 해소되지 않은 문제점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보내다 더 이상은 안될 거 같아서 결국에는 퇴사를 결심했던 어린 날의 나.


내가 퇴사를 결심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2년 8개월. 첫 사회생활을 했던 나는 그만 둘 용기마저 없어 그렇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스스로를 갉아먹은 뒤 더 이상 갉아먹을게 남아 있지 않을 때 그만둘 수 있었다. 그때 일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정말 거짓말처럼 모든 문제가 괜찮아졌음을 느꼈었다. 그리고 시간이 좀 더 지나고 알게 되었다. 내가 얼마나 여유가 없었는지, 단순히 돈이 많다고, 돈을 잘 번다고 사람이 다 만족을 느끼는 게 아니라는 것을 생각보다 어린 나이에 깨달았던 거 같다. 퇴사를 하기 위해서도 용기가 필요하고,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없으며 돈에는 대가가 따른 다는 것을. 그리고 그때 생각했다. 사람이 행복을 느끼는 최소한의 충족 조건이 마음의 여유이지 않을까라는 것을. 아무리 돈이 많고 주변의 사람이 많아도 스스로 마음의 여유가 없다면 그 모든 것을 돌아볼 수가 없다. 


혹독한 첫 직장생활을 겪고 인생의 하나의 이정표를 세운 것이 오늘 최선을 다하자. 무슨 일을 했던 오늘 행복했다면 된 것이다.라는 것이다. 타인은 내 인생을 대신 살아 주지 않고, 나 또한 타인의 인생을 대신 살아 줄 수 없듯이 타인의 시선, 말에 좌지우지되지 말고 나만의 기준을 가지고 살자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남들과 비교하고 타인을 신경 쓰기 시작한다면 내가 아무리 잘하고 성과를 이루어내도 결코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만족할 수 없다면 스스로 조급해질 것이고, 조급해지다 보면 반드시 실수를 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 실수로 인해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좌절할 필요는 없는데 그 순간이 오면 그게 맘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요즘에는 욜로라는 말이 원래의 뜻에서 좀 벗어났다고 생각한 것이 어느 순간 욜로 하면 한탕주의 인생을 떠올리게 된 것 같다. 하지만 욜로란 원래 현재의 최선을 다하자라는 것이다. 미래를 위해 현재의 나를 불행하고 몰아붙인다면 과연 내가 10년 후, 20년 후 온전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한탕주의 인생을 살자는 게 아니다. 그냥 오늘 하루 최선을 하다고 스스로 만족하는 인생을 살자는 것이다. 나는 누구보다 그렇게 살고 싶다. 나의 미래도 과거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지금 아닐까? 나는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나의 오늘을 희생하거나 불행하게 살고 싶지 않다. 미래 계획도 즐겁게, 오늘의 내가 행복하게 미래를 생각할 수 있게끔 그렇게 살고 싶다.


시간이 오래 흐른 지금 상처뿐인 줄 알았던 내 첫 직장생활이 지금 생각해 보면 인생의 많은 것을 깨닫게 만들어 주는 계기였던 거 같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아무런 커리어도 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때 배우고 했던 것들이 내가 살아가면서 어디선가 툭툭 튀어나올 때가 있다. 그래서 또 하나 배웠다. 세상에 쓸모없는 경험이란 건 없다는 것을. 지금 당장은 이게 내 인생의 무슨 도움이 될까 싶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경험을 통해 반드시 배우는 것이 있고 그게 살아가다 보면 어딘가에서 툭 튀어나올 때가 있을 것이다. 지금은 좀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 일과 함께 내가 성장했다고 느끼는 순간이 반드시 올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한 가지 더 이야기하고 싶은 건 스스로를 극한까지 몰아가며 버틸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개인에게 다 맞는 옷과 신발이 있듯이 그 자리가 나에게 맞지 않는 자리일 수도 있다. 나 또한 그 일을 그만두고 퇴사를 했기에 그때를 되돌아보며 배운 것이 있노라 이야기하는 것이지 아직 내가 그 자리에서 버티고 있었다면 절대 이런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 상황을 알아채고 멈춰야 할 때임을 스스로 알고 내려놓는 것 또한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내 인생은 내 것이고 다른 사람의 눈높이에 나를 꾸역꾸역 맞출 필요 없다. 다만 그러기 위해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스스로 만족하는 마음 또한 필요하다. 나의 첫 퇴사는 나에게 많은 생채기를 남겼다고 생각했지만 생채기 위해 굳은살이 생기고 곧 더 단단한 새살이 돋아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쉼 없이 지나온 시간 속에 지금 현재에 이르러 다시 한번 퇴사 후 삶을 이어나가고 있을 때 그때의 그 마음이 나에게 큰 위로가 된 것처럼. 그 시간도 버텨 냈던 나인 것을, 지금 이 시간 또한 내 인생에서 큰 전환점이 되는 순간일 뿐이라고. 

작가의 이전글 퇴사 후 삶, 일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