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 어느덧 일주일.
대단한 무언가를 하겠다 큰 뜻은 없었다. 그냥 천천히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 보고 싶었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부끄럽게도 크게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 물론 관심 가는 일이 없던 것은 아니었으나 그것에 도전할 만큼의 큰 열정도 부지런함도 없었다는 게 맞을 것이다. 그래서 늘 열정에 가득 차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했고 한편으론 존경했다. 어떤 확고한 결심이 섰을 때 사람이 저렇게 몰두할 수 있을까? 란 생각을 하면서. 불확실한 미래에 나의 모든 것을 던질 수 있는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내 최초의 관심사는 사진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 지금 이 순간을 다 사진으로 기록하겠다는 일념으로 학교에 매일 디지털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며 일상을 찍었다. 그게 습관이 되고 디지털카메라에서 스마트폰 카메라로 바뀌고 더 좋고 간편한 카메라들로 변화하며 일상을 담았다. 워낙 어렸을 때부터 찍었다 보니 전문적인 사진 지식은 없어도 순간적으로 어떤 각도, 어떤 구도가 좋은지 알았던 거 같다. 물론 정답은 없겠지만 나름의 만족이 있었다. 물론 주위에서 잘한다는 칭찬도 함께. 그래서 이왕 이렇게 된 거 사진으로 돈을 벌어보면 어떨까 싶었다. 마침 요즘에는 개인이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이 워낙에 많으니 크지 않더라도 적당히 활용해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렵지 않은 일에는 빠르게 실천하는 편이라 플랫폼을 이용해 스냅촬영에 도전했는데 그때 또 하나 알게 되었다. 취미와 업은 다르다는 걸. 취미로 할 때는 내 만족이 가장 우선이고 내가 좋아하는 걸 하면 됐지만 업이 되는 순간 내 만족은 두 번째 (어쩌면 세 번째일 수도)로 내려앉고 고객의 니즈가 가장 중요한 첫 번째가 된다는 걸.
하지만 여기서 내가 또 하나 간과한 것은 사진은 기본적으로 보정을 제공한다는 점이 그랬다. 나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건데 보정을 하려고 하니 스스로 부족한 실력을 알고 더더욱 위축되고 자신이 없었다. 좋아하던 사진마저 부담스러워졌던 것. 가볍게 부업 어딘가쯤으로 생각하고 시작했던 게 본업보다 더 큰 스트레스로 작용될 수도 있단 생각이 들 때쯤 멈추기로 했다. 그때 깨달은 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기회가 왔어도 큰 빛을 못 본다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였다. 단순히 주위에서 잘한다고 했던 것도 업이 되어 버리면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 번 경험해보니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너무 본격적으로 하기보다는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으로 시작해 보면 좋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다. 물론 그날 이후로 아직까지 꾸준하게 실천을 하고 있진 않다. 늘 그렇듯 본업이 있을 때 다른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이번에 퇴사할 때도 큰 계획을 두진 않았다. 퇴사하고 이 것도 해보고 저 것도 해봐야지와 같은 생각보다는 충분히 쉬면서 앞으로 내가 진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처음에 말했듯이 나는 인생을 살면서 무언가에 미쳐있던 적도 누군가를 미치게 좋아해 본 적도 없다. 적지 않은 나이지만 항상 그게 아쉬웠다. 모든 게 갖춰진 삶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만족하고 있고 어떤 일이든 주어진 일에 대한 것은 남에게 피해 주지 않으며 해내 오면서 스스로의 대한 자신감도 얻었지만 단 하나, 백 프로 무언가가 너무 좋아서 그 일에 대한 열정이 불 타올라 올인해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늘 있었다. 그래서 직업 관련 책도 찾아보고 타인의 삶도 들여다보면서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일단 첫 번째,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일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그냥 순수하게 평소 생활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보았다. 사진, 여행, 옷, 보는 것(영화, 드라마, 소설, 만화 등등) 이런 것들이 있었다. 다음은 구체적으로 어떤 게 재밌는지 생각해 봤다. 사진 찍는 거, 여행하는 것, 옷 고르고 코디에 보는 것, 보는 건 그냥 다 재밌었다. 그럼 다음으로 이 것과 관련한 직업으로 삼을 수 있는 게 있는가? 였는데 여기서 막혔다. 딱 보면 내가 원하는 것들은 다 예체능 쪽이다. 예체능은 능력도 능력이지만 분야가 확실하다 보니 내가 손쉽게 도전해 보자 라는 생각이 잘 들지 않았던 분야였다. 그래서 늘 취미나 생각들만 머리에 모셔둔 채 시간을 보냈는데 쉬면서 천천히 하나씩 해 보고 싶다. 사진도 계속 찍어 보고, 내가 평소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도 계속 보고, 평소 보고 싶었던 영화, 드라마, 소설, 웹툰도 미련 없이 보면서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계속해 고민해 보고 싶다.
삶에 정해진 것은 없으나 그동안 지내왔던 시간이 있기 때문에 한 번에 큰 변화를 주려면 큰 계기나 결심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을 단 번에 해낼 필욘 없다고 생각한다. 조금씩 내가 생각하는 것에 변화를 주며 스며들게 만들고 싶다. 그러면서 내 퇴사 후 삶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 누군가에게는 보잘것없는 시간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용기가 될 수도 있을 테니까. 혹은 나도 내가 그동안 발견하지 못했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이 될 테니까.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지금 이 시간에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하루의 일상이 쌓여 한 달이 되고, 1년이 되는 것처럼. 그 시간들을 모아서 10년 후 나에게 선물하는 것처럼. 그렇게 조금은 무책임한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