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지 않은 나이. 정해지지 않은 미래.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퇴사 후의 삶에 대해 뭔가 거창한 계획 같은걸 하지 않았지만 그냥 그 순간 지금은 쉬어 가야 될 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퇴사를 결심하고 퇴사를 몇일 남겨두지 않은 그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지금 내 나이에 이렇게 아무런 계획 없이 그만두는게 맞는 걸까? 잘한 선택인걸까? 답 없는 질문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지만 겉으로는 애써 잘한 일이라며, 나를 위한 인터미션 구간이라며 되내었다.
처음 사회 생활을 시작했을 때 퇴사를 결심하기까지 약 3년이란 시간을 보냈었다. 당시 상황이 너무 힘들고 지쳐서 그만 두고 싶지만 퇴사할 용기마저 없어 그냥 질질 시간만 끌며 나를 갉아먹었던 첫 직장 생활. 그때와 지금 다른점은 내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알았단 것 정도? 첫 직장생활을 할 때는 전공에 관련된 일도 아니고 잘하는 분야인지 아닌지 헷갈리게 만들었던 그 일들이 나를 작고 못난 사람으로 만들었었는데 막상 그 일을 거쳐 다른 직종의 일들을 해내고 인정 받으면서 아, 그래도 나는 어떤 일이든 할 수 있겠구나 알게 해줬다는 점. 하지만 그마저도 막상 현실의 퇴사를 앞두고는 막연한 생각처럼 느껴졌다.
주위에서 하는 나를 위한다는 소리들, 지금 니 나이에 그만 두고 앞으로 어떻게 살 거냐,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 줄 아냐. 나라고 그걸 몰라서 퇴사를 하는게 아닌데 사람들은 단편의 사실만을 보고 나에게 걱정을 빙자한 비난을 퍼 부은다. 처음엔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마자, 나도 이제 나이가 있으니 안정적인 곳에 취업해 안정적이게 정착이란 걸 해봐야겠다. 하지만 사람의 삶이란 계획되로만 되는게 아니고 내 삶은 늘 그렇게 위태위태한 걸음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위태로웠음에도 정말로 발을 헛디딘 적은 없었으니까, 이번에도 내 결정을 스스로 믿고 나아가는 것이다.
인생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하루하루의 연속이다. 앞으로 3~40년 동안 일을 해야 한다면 지금 내가 여력이 있을 때 쉬어 두는 것도 미래의 나를 위한 원동력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너무 오래 멈춰 있지만 않는다면, 나아갈 길이 있다면 나를 위한 쉼을 선물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라는 생각을 해 본다. 누군가에게는 이 모든게 그럴듯한 변명처럼 보일지 모른다. 나 조차도 그렇게 생각이 들 때가 있으니까. 지금 현재의 결정이 맞다는 걸 스스로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스스로가 만들어낸 그럴듯한 합리화인건 아닐까? 하지만 또 한편으론 그렇게 생각하는게 뭐가 나빠? 라는 생각을 한다. 그냥 쉬고 싶어 쉬는 거고 한 템포 쉬었다가 다시 걸어 가는게 더 오래 멀리 갈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일지도 모르지 않겠는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드디어 퇴사날이 되었다. 평소처럼 출근해 평소처럼 일을 하고 못다한 인수인계도 하고, 그렇게 퇴근 시간이 되어 일상처럼 퇴근 하는 그런 퇴삿날. 마치 내일 다시 이 생활을 반복할 것만 같은 그런 마지막 출근을 하고 눈을 뜬 오늘. 세상은 내가 생각했던 것 처럼 그렇게 변하지도 않았고 불안을 강조하지도 않았으며 그냥 푹 자고 일어난 상쾌한 아침이었다. 조급해할 필요도 없고 불안할 필요도 없는. 그냥 그 동안 열심히 산 나를 보상해 주는 그런 날. 앞으로의 시간을 어떻게 만들어 갈 지 조금은 생각하게 되는 그런 날. 조금은 멍하기도 하고 조금은 여유로움도 느꼈졌던 그런 날. 이 시간 이 순간을 통해 내가 또 어떤 길을 선택하게 될 지 막연히 기대되는 그런 날. 퇴사 첫날은 그렇게 조금은 열린 결말 같은 드라마라를 보는 기분이었다.